[스페셜1]
재미와 의리, 함께 잡겠다
2015-09-22
글 : 이예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수상한 그녀> <연가시> 임지영 프로듀서

<조작된 도시>(2016) 공동제작 <수상한 그녀>(2014) 프로듀서 <연가시>(2012) 프로듀서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프로듀서, 기획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2007) 프로듀서, 마케팅부문 <Mr. 로빈 꼬시기>(2006) 프로듀서 <여선생 VS 여제자>(2004) 프로듀서 <밀애>(2002) 제작실장 <고양이를 부탁해>(2001) 제작부 <학교전설>(1999) 마케팅 <자귀모>(1999) 마케팅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마케팅 <넘버.3>(1997) 마케팅 <그들만의 세상>(1996) 마케팅 <지독한 사랑>(1996) 마케팅 <꼬리치는 남자>(1995) 마케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마케팅 <마누라 죽이기>(1994) 마케팅

“스무살 꽃처녀가 된 칠순 할매”, “사람을 자살하게 하는 살인기생충 연가시”. 역설적이거나 자극적이거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설정들이다. 2014년 설 시장을 장악한 <수상한 그녀>와 2012년 여름 시장에서 선전한 <연가시>의 공통점은 한줄 요약만으로도 마케팅하기 쉬운 ‘훅’을 지니고 있다는 것. 컨셉추얼한 두 작품을 프로듀싱한 주인공은 충무로에서 어느덧 20년차인 임지영 프로듀서다.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서사 구조는 안정된 작품을 선호한다. 임팩트 있는 아이템을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으로 풀어내면 관객을 매혹시키되 기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수 있다.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니겠나.”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을 우선시하는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마케터 출신이다. 경영학 전공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대학 선배인 김미희 현 드림캡쳐 대표를 통해 홍보대행사 애드시네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김미희 대표는 “무섭게 가르치는 편인데 울면서도 다 해내더라. 근성이 대단했다”고 회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김미희 대표의 추천으로 강우석 프로덕션에 입사, <마누라 죽이기>(1994)로 마케팅을 시작한 그녀는 이후 기획시대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씨네2000에서 <지독한 사랑> 등의 마케팅을 했다. 출산 후 두달 만에 시네마서비스 마케팅실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넘버.3> <자귀모> 등의 마케팅을 맡았다. <자귀모>의 예고편 시안을 본 그녀는 당시 한국영화 예고편들이 대충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방송 영상편집 스탭과 스토리보다 특수효과를 빠른 템포로 강조한 가편집본을 만들어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감독에게 보여줬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 감독은 흔쾌히 컨펌했다. “예고편이 화제가 됐고, 첫주 스코어도 높게 나왔다. 성과를 낸 건 뿌듯했지만, 영화를 좋게 포장하는 일보다는 영화 자체를 잘 만들고 싶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마케팅은 작품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숨기는 일 아닌가. 본질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자귀모> 예고편을 제작하며 ‘제작의 맛’을 본 그녀는 마케팅실장을 그만두고, 서른살에 <고양이를 부탁해> 제작팀 막내로 들어갔다.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선 바닥부터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의 어린 선배들에게 혹독하게 배웠다.” 고된 막내 시절을 거치자 일은 빠르게 풀렸다. 그녀는 <밀애> 제작실장을 맡았고, <여선생 VS 여제자>로 프로듀서로 입봉했으며 김미희 대표가 싸이더스 픽쳐스에서 차승재 전 대표와 함께하던 시기, <Mr. 로빈 꼬시기>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강우석 프로덕션부터 싸이더스 픽쳐스까지, 이쯤되면 충무로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할 법하다. “첫 인연이자 든든한 친언니 같은” 김미희 대표와 오래 함께한 그녀는 씨네2000에서 함께 일한 안은미 대표가 설립한 폴룩스픽쳐스와 한배를 탔다.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을 프로듀싱했고,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를 기획 및 프로듀싱했다.

첫 기획작 <백야행…>은 그녀에게 많은 교훈을 준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을 탐독한 그녀는 영화화를 결심, <여선생 VS 여제자>부터 함께한 박연선 작가와 당시 신인이었던 박신우 감독을 섭외했다. 마케팅하던 시절부터 알던 예인플러스엔터테인먼트 전재순 대표의 도움으로 배우 손예진 캐스팅까지 했지만, 막상 투자가 안 됐다. 콘티에 녹음 대사까지 입혀 투자사들에 피칭했지만 실패하자, “태산 같은 존재”였던 강우석 감독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강우석 감독은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해 시네마서비스의 투자배급이 결정됐다. 그러나 돌아온 건 100만명에 못 미치는 관객수였다. “믿고 투자해준 분들을 실망시켰다는 게 뼈아팠다. 그전까진 하고 싶은 이야기에 빠져 있었지만 그 후부터 이야기의 타깃인 관객을 더 생각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손해보지 않을 영화를 만들리라 결심”한 그녀는 오죤필름 김상우 대표에게 <연가시> 프로듀서 제안을 받았다. “설정만으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였기에 바로 수락했다.

그녀의 감은 적중했다. <연가시>로 약 4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후엔, 예인플러스엔터테인먼트 전재순 대표가 초고를 보여준 <수상한 그녀>의 프로듀싱에 착수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는 영화는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가시> 흥행으로 우호적 관계이던 CJ 투자1팀에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금요일에 전달했는데 월요일에 팀장부터 대리까지 제작사로 찾아오더라.” CJ의 추천으로 황동혁 감독이 합류하며 제작된 <수상한 그녀>는 약 860만명이라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수상한 그녀>의 성공은 그녀에게 두 가지 선물을 안겨줬다. 첫째는 2014년 여성영화인상 제작프로듀서 부문을 수상한 것. 두 번째는 제작자 전재순 대표가 그녀에게 계약된 바 없는 수익 지분을 챙겨준 것이다. 프로듀서를 맡은 두 작품의 2연타 성공 이후,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던 그녀는 그 수익 지분으로 자신의 제작사 ‘심플렉스’를 설립할 수 있었다.

심플렉스는 콤플렉스의 반대말로,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현재 심플렉스는 <조작된 도시>를 TPS컴퍼니와 공동 제작 중이며, <수상한 그녀>의 신동익 작가와 2012년 신화창조 스토리공모대전 대상 수상작 <반인전>과 <조선공갈패>를 준비 중이다. 인간과 요괴가 섞인 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물 <반인전>은 중국에서 제안을 받아 이야기 중인 단계이고, 조선시대판 언론조작단 이야기인 <조선공갈패>는 쇼박스의 투자배급이 확정된 상태다. 한편 지난 20년간 충무로의 역사를 함께한 그녀는 김미희 대표와 강우석 감독, 전재순 대표 등에게서 무엇보다 의리를 배웠다. 명절이면 사비로 보너스를 챙겨주고 계약서에도 없던 지분을 주던 그들처럼, 그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감독, 작가, 라인 프로듀서까지 지분을 챙겨주기로 약속했고 스탭들에게도 표준근로계약을 통해 올바른 대우를 해줄 계획이다.” 앞으로도 그녀의 영화는 재미와 의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드 <브레이킹 배드>

“미드의 역작이라 불리는 <브레이킹 배드>에 뒤늦게 빠졌다. ‘가족을 위해 마약을 제조하는 화학선생님 이야기’는 정확히 내 취향이다. 흥미롭고 기발하지 않나. 말이 안 되는 설정 같지만, 개인과 가족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말이 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메시지에 접근한다. 내가 만들고자 지향하는 이야기도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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