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텍사스를 포위한 산불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1천여채가 넘는 주택이 전소한 가운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집도 화마를 피해갈 수 없었다. 수많은 시나리오와 제작노트들이 한줌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무엇보다 <보이후드>에 대한 몇몇 기록들과 앞으로의 진행에 대한 아이디어가 날아간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을 것이다. 6살 소년이 18살 성인이 될 때까지 12년의 이야기를 매년 15분씩 카메라에 담기로 했던 무모한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우려했던 대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친 것처럼 보였다. 일정 부분 방향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질문에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이런 게 인생이지.”
링클레이터가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
<보이후드>는 얼핏 인생의 불확정성을 담아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12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건 감독의 야심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안정성을 담보로 해야 하는 상업영화에서 12년에 이르는 기간을 계약하고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기존 시스템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도전이다. 무엇보다 전례가 없었다. 물론 긴 시간을 들여 인물들의 실제 시간을 담아낸다는 <보이후드>의 아이디어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 촬영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다만 극영화에서 그것을 실제로 시도해 완성한 사례는 전무하다. “미친 짓인 걸 알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이 프로젝트는 링클레이터의 고집, 배우들의 믿음, 제작자인 IFC필름의 헌신에 힘입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지만 이 기적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역시 ‘시간’ 그 자체다. “영화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걸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차라리 5~6년의 중장기 프로젝트였다면 시간과 맞서 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역사 한축에서는 늘 그래왔다. 영화가 탄생한 이래 시간을 포착하고 조립하고 다시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은 영화라는 움직임의 본질적인 동력에 가깝다. 하지만 7년을 훌쩍 넘는 시간 앞에서는 맞서 싸우기보다는 함께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시간을 어떻게 만질 것인지의 문제는 영화의 존재론과 맞닿아 있는 명제인 만큼 감독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후드>가 링클레이터의 최고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영화세계를 집대성한 노골적인 프로젝트라는 건 분명하다. “시간은 꽤 괜찮은 동업자가 될 수 있다. 적어도 항상 예측 가능한 동업자다”라는 링클레이터의 태도야말로 <보이후드>의 탄생을 가능케 한 동력이자 그의 영화적 세계관이다.
링클레이터에게 선댄스 키드라는 날개를 달아준 장편 데뷔작 <슬래커> 때부터 그의 화두는 이야기와 시간의 상관관계였다. 텍사스주 오스턴시 청춘들의 백일몽을 24시간 동안의 수다로 풀어낸 이 작품에서 출발하여, 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비포’ 시리즈까지 링클레이터의 연출은 오직 관객이 조작된 시간을 어떻게 조작되지 않은 것처럼 느끼도록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상은 정교하게 잘라내고 붙인 영화적 시간이지만 마치 조작되지 않은 것처럼, 일상의 시간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그는 몇 가지 장치를 동원한다. 24시간을 97분에 담아낸 <슬래커>, 14시간을 105분으로 압축한 <비포 선라이즈>, 거의 실시간을 상영시간에 맞춘 <비포 선셋>처럼 영화적 시간과 현실 시간의 감각을 일치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현실과 경험에 기반한 곳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하나의 기법은 시간의 초점이 관습적인 영화와는 살짝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사건 그 자체에 카메라를 가져다놓는 대신 사건의 앞뒤, 여타 영화라면 관객의 상상력이 필요할, 또는 서사적으로 의미 없을 시간을 담는 것이다. 링클레이터는 그렇게 마련된 시간의 빈자리를 사유의 홍수와 수다로 그득 메워버린다. “링클레이터 영화에서는 대화가 곧 플롯”인 셈이다. 지나치게 지적이라는 편견과 유럽영화를 흉내내고 싶어 한다는 오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꼭 그렇게 했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따름이다. 그에게 벌어진 사건이나 그를 둘러싼 풍경보다도 말이다.”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에단 호크도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모니터 뒤에 숨어서 빛이라든지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고개를 약간만 돌리면 조명이 멋지게 떨어질 것 같다는 식의 말을 리처드가 듣는다면 ‘지금 뭐해요? 광고 찍어요? 우리는 지금 이 사람을 찍고 있는 거예요’라며 코웃음칠 거다.” 요컨대 링클레이터의 관심사는 사람이었고 그의 서사방식은 극중 등장인물이 어떻게 지금 내 옆에 함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만들까에 매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링클레이터가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순간들의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갖는 힘
비포 시리즈가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의 집 문을 8년마다 두드리는 일이었다면 <보이후드>는 소년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의 삶 전체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재혼에 따른 잦은 이사, 가족간의 불화, 막연하고 불안한 꿈, 첫사랑과 실연 등 좋은 기억과 끔찍한 시간이 뒤섞이며 고스란히 소년의 삶이 되는 이 영화는 외연적으로는 소년이 성장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간다.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재현, 다시 말해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에 관한 영화인 셈이다. 이 점에서는 차라리 기존 내러티브영화들과 맥을 같이한다. 링클레이터의 전작들이 영화들이 어떤 감정적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현실시간의 감각 안에서 재현하려 했다면 <보이후드>의 구성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겉보기에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는 단선적인 축적의 방식이자 인과의 사슬로 조직된 내러티브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고 나서 체험되는 감각은 이제껏 반복해왔던 링클레이터식의 시간의 장대한 확장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내러티브영화에서 시간이란 고개를 젖혀 뒤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재구성하는 일종의 인과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이야기는 인과의 완결된 세계 안에 갇혀 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된 세계 안에 시간을 가둬왔다. 그러나 일상의 어느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현실감각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과관계란 뒤돌아보는 시점으로부터 결정되는 얇고 가는 실에 불과하다. 그간 링클레이터는 현실시간을 흉내내며 그 순간들을 잡아내왔다면 <보이후드>에서는 영화로부터 한참 떨어진 시간의 바깥에 서서 이 장대한 그림을 펼쳐나간다. 비포 시리즈가 순간이라는 점과 점을 8년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이어붙이고 있다면 <보이후드>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움직임 그 자체를 조망하도록 하는 망원경이다.
순간들이 쌓여 하나의 거대한 콜라주를 이루는 <보이후드>의 구성은 링클레이터의 작가적 야심의 발로이자 그간 추구해왔던 영화세계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순간들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어머니의 이혼, 새아버지들의 폭력과 술주정, 그로 인해 이사 간 동네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소년의 피곤한 일상 같은 굵직하고 뚜렷한 사건 장면이 빠지고 대신 소문이나 후일담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해도 이 영화가 전진하는 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어머니의 두 번째 재혼 실패를 알리는 장면 등 몇몇 지점은 실제로도 그렇다). 반면 메이슨과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아침에 서로 투닥거리는 장면이 없다면, 간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차 안에서 이건 제대로 된 대화가 아니라며 멋쩍은 농담을 억지로 날리는 장면이 없다면, 협조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은 추가과제로 미식축구 경기를 찍어야 하는 메이슨의 카메라가 미식축구 선수가 아니라 그 주변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없다면, <보이후드>는 평범한 성장영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 연결은 영화 안에서 긴밀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영화 바깥으로 유연하게 뻗어 있다. 굳이 시간의 경과를 알릴 필요 없이 배우들의 얼굴만으로도 드러나는 시간의 흐름은 특수효과로 압축된 가상의 체험과는 사뭇 다른 질감으로 우리를 ‘매 순간의 현재’로 데려간다. “시간은 선처럼 매우 1차적이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을 머릿속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담아내는 것이다.” 링클레이터는 <보이후드>를 통해 비로소 시간과 현실, 리얼리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드러낸다. 단순히 카메라가 잡아낸 시간을 넘어 나의 경험과 기억을 거친 후 결국 우리의 것이 되는, 스크린과 ’나’ 사이에 놓인 현재.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삶의 불확정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 설명할 것도 없이 삶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하나 서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혹은 미래의 시점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해석하곤 한다. 때론 너무 많이 아는 게 문제다. 이야기라는 평행세계의 감각을 거꾸로 현실영역까지 가져와버린다. 그 순간 점찍은 사건 사이로 수많은 가능성과 시간들이 빠져나간다. 좋게 말하자면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이 시간들을 링클레이터는 주워담는다. 무의미 해보이는 말의 성찬과 지적 과잉으로 지적받는 의식의 흐름은 그 자체로 서사에 포섭되지 않는 채 감각의 영역에서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비포 시리즈의 제시와 셀린느, <버니>의 버니 티드, <웨이킹 라이프>에서 언급되는 숱한 철학자들은 영화를 보는 그 순간,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옆에서 듣는다. 로베르 브레송,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에릭 로메르와 자주 비교되는 그의 영화적 토양과 스타일이 이같은 작가영화들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리얼리즘, 혹은 리얼리티에 대한 입장은 독자적이라 할 수 있다.
일련의 작가주의 영화들이 조작된 이야기가 주는 환영을 벗겨내고자 장면의 ‘현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해온 부분에 대해선 링클레이터 자신도 동의해왔다. <보이후드>만큼 “그것이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는 명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돌이켜보면 실제로 이 세상에서 바뀐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기술적인 변화들보다 바뀌지 않을 것들이 더 흥미롭다”는 고백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쉽사리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이후드>를 35mm카메라로 찍기로 결정한 것은 톤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12년이 지나도 계속 쉽게 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른 것이었지만 결국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필름 시대의 끝을 붙잡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 됐다. <보이후드>는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필름영화를 넘어 영화 철학의 근본적인 지점에서의 ‘그것이 여기에 있었음’에 대한 증거를 남긴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현존에 대한 철학적 명제보다 영화적 현실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옮길 것인가에 찍혀 있는 듯하다. (확신하건대) 언젠가 이 영화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면 앙드레 바쟁이 말했던 사진적 리얼리즘의 존재론 때문이 아니다. 그다음 걸음까지 내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즉흥적이라곤 하지만 시나리오의 가이드와 지침은 분명하게 서 있고 연극적인 구성을 즐기고 리허설에 충실하다. 극적인 상황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것 역시 시간의 불특정성을 부각시키기 용이하기에 자연스레 배어나온 기법들이다. 예를 들어 비포 시리즈가 특정 순간을 포착했으면 <스쿨 오브 락>이나 <버니> 같은 코미디에서는 연극적인 상황과 말의 성찬으로 그것을 해낸다. <스캐너 다클리>나 <웨이킹 라이프>는 아예 로토스코핑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현실감을 지우고 넘쳐나는 말과 상황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요컨대 그는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의 영화적 목적(또는 야심)은 시간을 붙잡아 ‘현존’의 재현을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보는 이가 각자 자신의 현실을 환기할 수 있는 거대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는 데 있다. <보이후드>의 시간은 서사에 갇히지 않고 영화 바깥에서 관객과 조응한다. 표피적으론 시간의 흐름에 맞춘 누군가의 일기장이지만 접힌 시간의 주름살을 들춰 묶어낸 결정적 순간들이 영화 바깥에서 관객과의 시간을 별도로 쌓아나간다. 마치 1년의 시간을 두고 촬영한 수십편의 비포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복잡계에 속하는 어쩌면 최초의 영화
링클레이터를 두고 혹자는 선댄스 키드가 주류영화로 편승했다고도 말하고 어설프게 유럽 예술영화를 흉내내려 할 뿐이라 호도한다. 하지만 그는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행보를 선보였다. <보이후드>는 분명 범상치 않은 프로젝트지만 어떤 면에서는 링클레이터가 어떠한 형식과 장르, 이야기를 거치든 분명한 목표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새삼 증명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영화 안팎의 시간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누군가의 체험을 나의 체험으로 전환시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구난방 표류하는 영화 리얼리즘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이 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주목받아야 할 작가다. 어쩌면 <보이후드>는 이른바 복잡계에 속하는 최초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메이슨이 대학으로 떠나는 순간 지나간 시간을 두고 회한에 복받친 어머니의 눈물, 영화 마지막 순간 석양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드러내는 메이슨의 표정은 <보이후드>라는 완결된 서사 안쪽에 머물지 않고 필름 바깥을 향할 때 그들의 감정을 넘어 내 감정으로 폭발한다. 12년간 지속된 예측 불가능한 현실과 이미 결정된 내러티브영화 사이에서 다양한 요소들과 연결되어 안팎으로 소통하는 영화. 극장 불이 꺼지는 순간 당신도 그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보이후드>와 링클레이터에 대한 뒷이야기
-<보이후드>의 원래 제목은 <언제나 지금>(Always Now)이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자신의 영화 대부분이 ‘언제나 지금’이라 이름 붙은 영화라는 걸 깨닫고 제목을 바꿨다.
-링클레이터 영화의 절반 이상이 텍사스에서 만들어지거나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다. <비포 선라이즈>의 초고를 보면 주인공의 이름은 제시와 셀린느가 아닌 테리와 크리스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곳 역시 비엔나가 아니라 샌안토니오다.
-에단 호크가 타고 나오는 페라리 GTO는 사실 링클레이터 감독 본인의 차다.
-감독의 딸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웨이킹 라이프>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영화를 시작한 지 몇년이 지난 뒤 시각예술에 관심을 보인 그녀는 영화 속 의상이 너무 입기 싫어 자신의 캐릭터를 죽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링클레이터 감독이 여는 여름캠프가 있다. 많은 아이들이 캠프에 와서 연극을 하는데 엘라 콜트레인은 해마다 이 캠프에 참여해 짧은 단편영화에 출연하거나 영화제작에 대해 배웠다.
-<보이후드>를 만드는 동안 링클레이터는 8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첫 촬영 뒤 바로 <스쿨 오브 락>을 찍었다. 에단 호크가 첫 촬영을 한 것은 <비포 선셋> 촬영을 막 마치고 돌아온 후였다.
-링클레이터는 러시아 문학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왔다. 그는 인물에 대한 톨스토이의 집요한 해석을 사랑한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보이후드>라는 제목 역시 톨스토이의 책 <유년 시절•소년 시절•청년 시절>에서 따왔다.
-영화 속에 애플 제품이 다수 나오지만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줬을 뿐 지원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극중 소설 <해리 포터>에 사인받는 장면은 오스틴의 한 서점에서 찍은 실제 상황이다.
-원래 계획은 매해 10분씩 총 120분으로 완성하는 것이었지만 첫해 촬영이 끝나자마자 제한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배우들 스케줄도 유동적이었는데, 한번은 에단 호크가 다른 촬영으로 올해 촬영이 힘들다고 알려오자 “올해는 에단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고 한다.
-링클레이터에 관한 다큐멘터리 <21년: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11월7일 북미에서 개봉한다. 키아누 리브스, 매튜 매커너헤이, 에단 호크, 잭 블랙, 제이슨 라이트먼 등 그의 친구들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