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를 보고 나서 <웨이킹 라이프>를 다시 봤다. <웨이킹 라이프>는 <보이후드>의 최초의 시작점 2002년으로부터 몇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영화지만 <보이후드>의 엔딩에서 새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웨이킹 라이프>의 회상 신에 <보이후드>의 처음처럼 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반갑게도 주인공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소녀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나온다(로렐라이는 <보이후드>에서 메이슨의 누나로 출연, 12년의 성장사를 같이 보여줬다). 그녀는 영화 시작에서 <웨이킹 라이프>의 주인공과 미래를 점찍는 게임을 하고 주인공 소년에게 “꿈은 운명이다”라는 점괘를 준다. 그리고 소년은 고단한 10대의 성장사를 담은 <보이후드>의 시기를 지나며 수많은 상실을 겪고 <보이후드>의 엔딩이자 <웨이킹 라이프>의 시작점에 선 아름답고 섬세한 스무살의 몽상가가 된다. 그는 한 사건을 계기로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꿈과 현실을 혼돈하게 되고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면서 그들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과 조우한다. 유령처럼 떠돌며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에서 <웨이킹 라이프>의 일부분은 <베를린 천사의 시>를 연상시킨다. 인간들의 생각을 듣고 인간이 되고 싶었던 천사 다니엘이 엿보는 세상이 흑백이었듯, 꿈일지 현실일지 모르는 <웨이킹 라이프>의 주인공이 다니는 공간과 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의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실사에 붙어 있는 원색의 물감들은 고정된 것 없이 화려한 색상과 움직임으로 너울대며, 부유하듯 떠돌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만나는 주인공의 여행을 몽환적으로 표현해낸다. <베를린 천사의 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천사 다니엘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것이고, <웨이킹 라이프>는 수많은 타인들이 주인공에게 사진의 생각을 전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언어체계로 정리한 생각들을 쏟아낸다. 상실로 성장한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와 철학과 그들의 가치를 만나고 들으며, 또 타인들의 살해와 자살을 목격하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듣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깨어나지 못하는 꿈 안에 갇힌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꿈을 스스로 깨지 못하며 혼란에 빠진다. 여행을 끝내지 못하는 그는 꿈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땅에서 발을 뗀다. 말 그대로 땅에서 발이 떨어진 주인공은 멈추지 못하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결국 그는 떠도는 풍선처럼 하늘 끝으로 사라진다. <보이후드>라는 여행의 끝점이 다른 여행이었듯, <웨이킹 라이프>의 끝도 여행이다.
“난 내 인생이 늙은 여인의 과거 속 기억 같아.” 영화 속, 잠에서 깨어난 줄리 델피가 말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두둥실 떠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듯, 여행자의 시점에서, 종종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다. 비엔나, 파리, 베니스처럼 공간의 여행을, 때로는 12년을 스쳐가는 한 소년의 성장사를 다룬 시간여행을, 또 때로는 끝나지 않는 꿈의 여행을, 만나고 헤어지고 기억하고 지나가며 감독 자신이 여행자가 되거나 혹은 여행자의 뒤를 쫓듯. 영화의 중간, 주인공에게 누군가가 말한다. “넌 해답을 찾기 시작했어. 힘들어도 대가는 클 거야. 기쁨, 슬픔, 공허를 느끼고 여행 가방에 기억을 담아. 이곳이 출구야. 영원한 것이 아닌 무한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