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해도 아이들 앞에선 내색 한번 하지 않는 엄마, 알코올에 중독돼 항상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새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엄마. <보이후드>의 주인공 메이슨(엘라 콜트레인)과 그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별 탈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도 그들 옆에 항상 씩씩한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올리비아를 연기한 패트리샤 아퀘트의 주름은 아이들이 성장한 만큼 늘었다. <보이후드>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처음 작업한 패트리샤 아퀘트를 지난 2월, 베를린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12년 전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이들은 훌륭했다. ‘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라면 정말 신날 거야’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웃음)”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12년 전이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앞으로 12년 동안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계속 일을 구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그가 12년 동안 매년 한주씩 촬영할 건데 함께해달라고 하더라. 세상에 12년 동안이나! (웃음)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다.
-그때 어떤 역할인지도 들었나.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얘기해주면서 엄마 역할이라고 했다.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다 다시 학교로 가 교육학 석사를 딴다, 그때 만난 남자와 재혼하지만 남편의 알코올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다, 교수가 된 뒤 새 남자와 다시 결혼하지만 그 관계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에단 호크도 출연하기로 했다 등. 이야기의 큰 줄기가 이미 감독의 머릿속에 다 정해져 있었다.
-실제 모습이 올리비아에 얼마나 반영됐나.
=비슷한 면모가 많았다. 나 역시 싱글맘이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동시에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두려움과 불암감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엄마들은 자신의 힘든 모습을 아이들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내 어머니도 내게 그랬고.
-촬영하면서 아들과 딸을 각각 연기한 엘라 콜트레인과 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어땠나.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방청소를 했던 기억, 키를 벽에 대고 쟀던 기억 등. 내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주었지만 너무나 기특하게도 아이들은 변하지 않았고, 순수했던 모습 그대로 성장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했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바뀌었다. 어쨌거나 두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울음이 나올 것 같다. 그들은 정말 훌륭한 아이들이다. 놀랍게 성장했다.
-촬영하는 도중 모니터를 확인한 적 있나.
=처음 5, 6년 동안은 모니터를 봤다. 재미없었다. (웃음) 그 이후로는 편집본을 보지 않았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제작진과 배우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했다.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
=약간 긴장되면서도 흥분됐다. 사실 감독이 내게 영화를 혼자 보고 싶냐고 먼저 물어왔다. 하지만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싶진 않았고,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뭐야, 이 영화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라고 수군거릴까봐 걱정도 됐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매년 일정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보이후드>에 합류하는 건 귀찮거나 피곤하진 않았나.
=전혀! <보이후드>를 찍으러 가는 길이 신났다. 영화를 보면서 ‘저 장면 찍을 때 <고스트 앤 크라임>을 찍으면서 정말 지쳐 있었을 때지’, ‘이때는 내가 이혼했을 때구나’, ‘이때는 로렐라이의 쌍둥이 여동생들이 태어났을 때지’ 같은 온갖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시간을 기다렸고, 오랜만에 만난 스탭, 동료 배우들과 안부부터 나눴던 기억도 난다.
-당신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과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 중 어느 쪽이 더 묘한 기분이 들었나.
=동이 틀 무렵, 장미 꽃봉오리가 열리면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지 않나. 그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 꽃봉오리가 열린 뒤 꽃잎들이 차례로 떨어지는 건 바로 나와 에단 호크의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잎이 다 떨어지진 않는다. 남은 잎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