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성장의 가속페달은 멈추지 않는다
2015-11-10
글 : 김성훈
새로운 기록을 쏟아내는 2015년 상반기 중국 영화산업의 풍경
<몬스터 헌트>

“파전병 하나에 2.5위안. 원가는 1위안으로, 하루에 800개가량 판다. 한달이면 2만6천위안.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가맹비 5천위안씩 받고 베이징에 점포 100개만 내면 가맹비만으로 매월 50만위안을, 1년에 600만위안을 벌 수 있다. 전국에 점포 5천개를 내면 매년 3억위안씩 벌 수 있겠네.” <로스트 인 타일랜드>(감독 서쟁, 2012)에서 주인공 쉬랑(서쟁)이 파전병 요리사인 보보(왕바오창)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장면이다. 한국에서 ‘먹방’ 열풍이 불고 있듯이 중국 외식 시장도 하루가 멀다 하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맛집으로 소문나면 조 단위의 매출은 기본이고, 식당 소개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높은 데다가 스타 셰프들의 인기는 웬만한 배우 저리 가라다. 최근 전세계를 벌벌 떨게 한 중국발 금융위기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앞의 문장에서 외식 시장을 중국 영화산업으로, 맛집을 중국영화로, 식당 소개 프로그램을 극장으로, 셰프를 중국 감독으로 바꿔도 무방할 정도로 중국 영화산업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10월26일 시작된 제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이하 18기 5중전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이 연간 성장률 목표치를 기존의 7%에서 6.5%대로 내릴 거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중국 경제가 다소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 ‘현재 중국에서 영화와 외식업이 유일한 호황’이라는 말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드래곤 블레이드>

국경절 극장을 찾은 관객 70%, 인터넷 예매

일일천리(一日千里)이자 파죽지세(破竹之勢)다. 올해 상반기 중국 영화시장은 새로운 기록을 연거푸 쏟아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중국영화 상반기 결산 자료에 인용된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중국 전역에서 벌어들인 극장 수익은 총 203억6300만위안이다. 지난해의 137억4300만위안에 비하면 무려 48.17% 증가한 금액이다. 지난 6월30일 기준으로 스크린 수는 2만6천여개가 넘었는데, 3, 4, 5, 6선 지방 도시에 멀티플렉스가 계속 지어지고 있다고 하니 내년에는 스크린 수 3만개 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 같다. 상반기는 아니지만, 춘절 연휴와 함께 중국 영화시장 최대 성수기인 국경절 연휴(10월1일부터 8일까지) 성적을 살펴보면 극장 매출이 18억5천만위안에 달했다. 지난해의 10억8400만위안에 비하면 약 8억위안이 증가한 수치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올해 극장 매출은 400억위안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중국 영화산업이 흥미로운 건 연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통계 수치가 아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산업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고, 그러면서 중국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같은 1선 도시의 극장들을 중심으로 관객을 불러모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장쑤성, 저장성 같은 2선 도시를 포함한 3, 4, 5, 6선 도시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다. 2, 3선 도시의 박스오피스 규모가 부쩍 성장하면서 1선 도시에서 외면받은 영화가 2, 3선 도시에서 흥행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씨네21> 베이징 통신원이자 중국 투자•제작사 뉴클루즈 필름 신아름 프로듀서는 “SF어드벤처영화 <구층요탑>(九層妖塔, 감독 루추안•출연 리천, 조우정, 야오천)은 원작인 웹소설 <귀취등>이 인기가 많았고, 보통 중국영화의 컴퓨터그래픽 기술보다 뛰어났던 덕분에 3, 4선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성풍운2>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최근 1, 2년간 영화 티켓 예매 사이트를 통해 영화표를 구매하는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올해 국경절 때 극장을 찾은 관객의 70%가 인터넷을 통해 티켓을 사전 예매했을 정도다.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www.taobao.com)나 위챗(WeChat) 같은 인터넷 사이트, SNS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면 실제 가격보다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알리바바픽처스 한희주 프로듀서는 “인터넷을 통해 영화표를 예매하면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관객에게 심어준다. 그러면서 보다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오도록 유도한다. 예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영화표를 사전 예매하는 습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극장을 찾는 관객이 늘고, 시장이 커지면서 관객의 트렌드가 재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감독, 제작자 같은 창작자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기회이지만, 영화 한편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분명한 건 <이별계약>(2013)이나 <소시대>(2013) 시리즈 같은 로맨틱 코미디가 강세였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코미디와 스릴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선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춘절 극장가를 주도했던 성룡의 <드래곤 블레이드>와 주윤발의 <도성풍운2>는 각각 액션 시대극과 코미디 액션물이었다. 차이나필름그룹이 중국의 유명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고,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한 <울프 토템>은 문예영화였다. 5억위안을 벌어들인 <꺼져버려! 종양군>은 암으로 죽은 작가가 그린 만화를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우정, 가족, 삶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드라마였다. <팬케이크맨>은 중국의 유명한 만담가가 자신의 사연을 영화로 연출한 코미디영화인데 10억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열일작심>(감독 조보평•출연 덩차오, 왕뤄단, 단혁굉)은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한 범죄물로, 3억위안을 벌어들였다.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평론가나 시네필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던 <세이빙 미스터 우>(감독 딩성•출연 유덕화, 류예, 왕첸웬)는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배우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였다.

<세이빙 미스터 우>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운 애니메이션 <몬스터 헌트>

이중에서 올해 중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몬스터 헌트>다. 이 중국산 애니메이션이 경쟁이 치열한 여름 시장에 개봉해 약 24억위안(4500억원)을 벌어들이며 중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을 전부 갈아치웠다. 유명한 감독이 연출한 것도 아니고, 스타 배우가 출연한 것도 아닌 데다가 인기 웹소설이나 만화가 원작도 아닌 이 애니메이션이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중국 영화인들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이자 “이제는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흥행 요인으로 꼽았다. 신아름 프로듀서는 “가족영화가 전무한 여름 영화시장에서 <몬스터 헌트>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볼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 개봉한 <퇴마전: 마령검의 비밀>(원제: <종규복마>)이나 <화피> 시리즈가 어른 관객을 타깃으로 한 판타지 장르였다면 <몬스터 헌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장르였다”고 말했다. 물론 중국영화 보호기간인 7, 8월에 개봉한 덕분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영화 흥행에 한몫했다(중국에는 중국 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국산 영화만을 상영하는 ‘보호월’이라는 기간이 있는데, 올해는 여름 시장이 보호월로 지정됐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같은 할리우드영화의 개봉이 8월 말 이후로 이뤄졌다.-편집자)

영화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도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령 지금은 인터넷 사전 예매를 통해 영화표를 싸게 구매할 수 있지만, 언젠가 영화표 값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니 가격 차이로 인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울프 토템>처럼 작품성이 좋더라도 원선(한국으로 치면 배급)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영화 흥행이 어려운 것도 중국 영화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어쨌거나 18기 5중전회가 아직 진행되고 있는 까닭에 중국 공산당의 경제 정책이 중국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정부가 ‘제조업에서 인터넷(IT) 및 서비스 산업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만큼 중국 영화산업은 당분간 가속페달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일일천리하고 있는 현재 중국영화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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