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2016년에 여러분이 기대하셔도 좋을 영화들은요…”
2016-01-04
진행 : 주성철
진행 : 김현수
진행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씨네21> 신년 대담 -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나홍진
김지운, 최동훈, 박찬욱, 류승완, 나홍진 감독(왼쪽부터).

2015년의 천만 영화 <암살>과 <베테랑>의 최동훈, 류승완 감독, 그리고 2016년의 기대작 <아가씨>의 박찬욱, <밀정>의 김지운,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만났다. 장르영화의 화법과 스타일로 가장 높은 흥행의 자리에 오른 <암살>과 <베테랑>은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 2015년의 가장 의미심장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 송년호에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 류승완은 곧장 신작 <군함도> 계획도 발표했다. 또한 일찌감치 촬영을 끝낸 <곡성>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작품’이라는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고, 현재 후반작업 중인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계급과 속죄의 테마가 어떻게 확장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이제 막 상하이 촬영을 끝내고 국내 촬영에 돌입하는 <밀정>은 송강호와 김지운의 재결합을 넘어 언제나 장르의 여정을 즐겨온 김지운 감독이 ‘콜드 누아르’라는 접근법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혹을 자아낸다. 툭탁툭탁 치고받는 가벼운 농담부터 필모그래피 전체를 아우르는 예리한 시선까지, 2016년 신년호 커버를 장식해준 다섯 감독의 내밀한 이야기, 그리고 지난해를 결산하고 새해의 전망을 가늠하는 이들의 대화에 당신을 초대한다.

<암살>과 <베테랑>의 2015년을 돌아보며

<씨네21>_신년 좌담에 나와주신 다섯 감독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먼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2015년 영화계의 중심에 섰던 <암살>의 최동훈,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지난 1년의 소회를 풀어주시면 어떨까 싶다. 두 영화가 한창 질주 중일 때 함께 대담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모시게 됐다.

류승완_막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 최동훈 감독님을 만난 적 있는데, 그때 해주셨던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 욕먹는 사람 된 거예요.” (웃음) 어떤 얘기인지 바로 알아차리겠더라. 천만이라는 그 숫자가 블랙홀처럼 다른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쉽게 말해, 이젠 어디 가서 죽는 소리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실제로 그런 얘기 어디서 몇번 하다가 맞을 뻔했다. (웃음) 숫자가 주는 피로감이 상당했다. <베테랑>은 여름에 개봉하려던 영화도 아니었고, 흥행 예측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계획했던 대로 간 영화가 아니었다. 여러모로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기념할 만한 해이고 기분 좋고 감사한 결과지만, 어쨌건 지금은 빨리 보내려 하고 있다. 오직 다음 작품 <군함도> 생각만 하고 있다.

최동훈_나도 쉽게 투덜댈 수 없더라. <도둑들>(2012)에 이어 <암살>까지, 천만이란 숫자가 나 또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결과지만, 뭐랄까 그 천만이라는 숫자만 둥둥 떠다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영화 자체를 초월해서 존재한다고나 할까. <암살>은 제작 초기부터 영화가 너무 어두워서,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둘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암실’이라고 불렀다. (웃음) 나중에는 ‘엄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더라. 아무튼 <도둑들>에 비해 큰 흥행을 점치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대규모 시사회도 열지 않았다. 흥행의 속성이 그러하듯 영화 자체와 시대적 분위기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빨리 다음 영화로 나아가고 싶다. 동시에 뭔가 개인적인 변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씨네21>_<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날이 묘하게도 70주년 광복절이었다. 그러면서 사회 각계각층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독해하는 텍스트가 됐다. <베테랑> 또한 여러 현실의 상황과 겹쳐지며 더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됐다.

최동훈_8월15일에 <암살>도 <도둑들>도 천만을 넘었다. 내가 전생에 8월15일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다. 그런데 뭐 날짜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결혼기념일은 또 9월11일이다. (웃음)

류승완_영화를 공격하는 댓글들 중 흥미로운 것은 ‘이게 천만이나 볼 영화냐’ 하고 시작하는 글들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얘기보다 일단 숫자를 깔고 시작한다. 해외영화제 소개글에서도 박스오피스 얘기 자체가 그냥 리뷰가 되어버린다. 서사와 캐릭터, 혹은 구체적인 장면들에 대한 것들이 그저 숫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류승완이 만든 영화라는 것보다 한국에서 천만이 본 영화라는 게 더 중요해져버리는 거다.

최동훈_나는 시대적 배경을 떠나 <암살>이 ‘고독’에 관한 영화라고 줄곧 얘기해왔는데,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더라. (웃음) 어쨌거나 지금은 다음 영화를 고민하는 시간이다. 류승완 감독님이 <군함도>를 고민하듯이 나 또한 다섯개의 서로 다른 프로젝트 중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 중이다.

류승완

<씨네21>_혹시 다른 세 감독님들은 <암살>과 <베테랑>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나?

김지운_천만 든 영화에 대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나. (일동 웃음)

최동훈 • 류승완_거 봐, 이렇게 된다니까. (웃음)

김지운_다만 <암살>과 <베테랑>은 그냥 천만 영화가 아니라 어떤 깊은 지지의 시선을 동반한 천만 영화들이라는 거다. ‘천만 영화=욕먹는 영화’라는 식으로, 이른바 상업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천만 영화라는 개념이 어떤 부정적인 시선을 안고 있는 거라면, 이 두 영화는 그 성질이 달랐던 것 같다. 대중과의 행복한 합의의 결과라고 할까, 그래서 응원해주고 싶은 결과다.

박찬욱_나도 뭐 부러울 따름이다. (웃음) <베테랑>은 시나리오 읽고서 류 감독에게 ‘이 영화, 돈 벌겠다’고 이야기해준 기억이 있다.

최동훈_반면 <암살>은 박 감독님이 초고를 보시고는 좀 별로라고 하셔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술 마시면서 속이 타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웃음)

류승완_나도 끝까지 좋다는 얘기는 안 해주셨고, 그냥 돈 벌겠다는 얘기만 해주셨다. (웃음)

박찬욱_그런데 완성된 <암살>은 초고와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최동훈_그때 해주신 말씀이 큰 자극이 됐다. 나로서는 초고로부터 거의 완전히 새로 쓰다시피 한 경우는 <암살>이 처음이었다.

류승완_그 시대 의열단 이야기는 박 감독님이 많이 아신다. 결국에는 유영식 감독님에 의해 만들어진 <아나키스트>(2000)를 그전부터 오랫동안 준비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박찬욱_아, 제발 옛날 얘기는 그만하자. (일동 웃음)

나홍진_<베테랑>은 류 감독님의 노력을 진짜 인정한다. 나 또한 그런 형사 세계를 많이 취재한 사람인데, 내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여러 말과 요소들이 고스란히 시나리오에 녹아 있었다. 나로서는 그처럼 완벽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크랭크인 직전까지 계속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더라. 심지어 현장에서도 들여다보고 있었다.

류승완_그때 콘티를 잃어버려서 대신 시나리오를 들고 있었나. (일동 웃음)

나홍진_다른 감독님들도 어떤지 궁금하다.

최동훈_나는 콘티를 안 본다. 현장에도 아예 콘티를 안 가지고 간다.

김지운_나도 안 가지고 간다. 현장에 가면 연출부가 준다. (일동 웃음)

나홍진_최동훈 감독님은 완벽하게 콘티를 보며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최동훈_전혀 그렇지 않다. 현장 상황에 맞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홍진_그러면 촬영감독이 힘들어하는 것 아닌가.

최동훈_그래서 <도둑들> 때까지 쭉 함께 작업한 최영환 촬영감독이 <베테랑>을 잘 찍은 건가? <도둑들> 때보다 촬영이 좋더라고. (웃음)

류승완_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왜 이간질을. (웃음)

최동훈_사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류승완 감독을 알았던 사이라, <베테랑>을 안 하면 욕먹을 것 같다고 하기에 미련 없이 보내준 경우였다. (웃음) 그래서 <암살>은 김우형 촬영감독과 하게 됐다.

류승완_김우형 촬영감독도 콘티 없이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거짓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과거 장선우 감독님과 많은 작품을 해서 그럴 것이다.

최동훈_일단 굉장히 빨랐다. 시간 개념이 정확하고 치밀하다. 무엇보다 김우형 촬영감독팀은 어떤 순간에도 포커스가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들이 대단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포커스 문제로 쓰지 못하는 컷이 생기기 마련인데, 절대 그런 게 없었다. 나와 아주 잘 맞았다.

나홍진_보채서 그런 것 아닌가? (웃음) 나 또한 <곡성>을 촬영하면서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새벽에 촬영부들과 흙투성이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시는 일도 있었다. ‘어디 다녀오시는 거예요?’ 하고 물으면 ‘혹시 인서트로 쓸지 몰라 산에 가서 뭐 좀 찍고 왔다’고 하시는 거다. (일동 감탄)

김지운_그러고 보니 지금 거론된 모든 촬영감독과 다 작업해봤다.

감독 일동_?

김지운_단편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김우형 촬영감독과 함께했다. 다들 안 봤어? 촬영이 깊고 좋아.

류승완_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남산 계단에서 연인이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하는 지운사마표 멜로드라마다. (웃음)

박찬욱

“2016년은 <곡성>의 해가 될 거라고…”

<씨네21>_2016년의 기대작으로 넘어가보자. <곡성>은 원래 2015년 개봉예정이었다가 계속 후반작업을 더 하는 중이고, <아가씨>는 크랭크업을 하고서 현재 편집 중이며, <밀정>은 중국 상하이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 이제 곧 한국 촬영을 시작하게 된다.

류승완_<곡성>은 영화계에 시나리오가 돌아다닐 때부터 영화인들의 깊은 관심을 받아왔다. 1차 편집본을 본 임필성 감독은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고, 봉준호 감독은 급체를 했다고 했다. (웃음) 다른 여러 감독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곡성>이 어떤 영화일지 나 또한 너무 궁금하다.

나홍진_정말 다들 괜히 그러시는 거다. 임필성 감독님이야 원래 겁이 많고 봉준호 감독님은 실제로 다리를 다쳐서 아픈 상태로 오셨다. (웃음)

최동훈_다른 감독들이 슬슬 하는 이야기가 있다. 2016년은 <곡성>의 해가 될 거라고. 그런데 4, 5월쯤 상반기 개봉예정이면 가족의 달에 개봉하는 건가? (웃음)

나홍진_맞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곡성>은 가족영화다. (일동 웃음)

김지운_나는 나홍진 감독이 건네준 시나리오만 읽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가끔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걸 하면 모든 행사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가 슬쩍 내게 다가와서, 자기가 몇 십년 동안 쓴 시나리오라며 꼭 좀 읽어달라고 노란 봉투에 시나리오를 담아 건네시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있다. 왠지 시나리오에 한자도 많을 것 같고 꼬불꼬불 붓글씨로 썼을 것 같은 그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웃음)

류승완_맞다, 시나리오에 진짜 한자가 많았다. (일동 웃음)

김지운_읽다보니 ‘와, 이건 미친 이야기다’ 싶은 거다. 감탄하면서 계속 읽었던 시나리오다.

최동훈_요즘 들어 ‘강한’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2007)나 <황해>(2010)와 비교하면 어떨까 너무 궁금하다.

나홍진_다들 너무 부담스러운 말씀들이다. 아직 개봉하기도 전에 그러시면, 썩 좋지 않다. (웃음) 무엇보다 <추격자>와 <황해>의 연장선에서 <곡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을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앞선 두 영화를 함께한 김윤석, 하정우가 아닌 다른 배우들과 함께한 것도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다.

류승완_나는 <부당거래> <베테랑>에 이어 <군함도>까지 황정민 배우와 세 작품을 하게 되는 셈인데, 그사이에 찍은 <곡성>의 황정민이 어떨지 진정 궁금하다. 게다가 그가 무속인으로 출연하는 것 아닌가.

나홍진_<곡성>에 무속인들이 많이 나오는데, 황정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 무속인들을 캐스팅했다. 그런데 다들 황정민 선배의 연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실제 무속인들이 보기에 어색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진짜 대단하다고 말이다. 언제 그런 준비를 하셨는지,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최동훈_홍경표 촬영감독님과의 작업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나홍진_뭐랄까, 음 그분은 정말 비스트다. 야수. (웃음) 나도 좀 이상한 놈이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인데, 정말이지 그분은 나를 한없이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더라. (일동 웃음) 현장의 그를 보고 있으면 무슨 <아포칼립토>(2006)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야말로 원주민, 원시인이다. 그렇게 되면 감독과 촬영감독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누군가가 무엇을 요구하고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를 넘어서게 된다. 일단 ‘촉’이 너무 좋다. 한번은, 시나리오 몇번 읽으셨냐고 물었더니 딱 한번 읽었다고 하시더라. (웃음) 그래서 걱정이 돼서 ‘지금 무슨 장면 찍는지 아시죠?’ 하고 물었더니 그저 ‘알아, 봤어’ 그러셨다. (일동 웃음) 아까도 따로 인서트 찍어오셨다는 얘기를 했는데, 헌팅을 함께 다녔던 공간에 대해서 자기만의 의지나 시선을 담은 무언가를 꼭 하나 만들어주신다. 좋은 경험이었다. 로케이션 대부분이 시골이다 보니 딱히 희한하게 생긴 산이나 높은 건물도 없는, 그냥 스카이라인 자체가 지평선과 다를 게 없는 뷰가 많다. 그래서 부감으로 찍지 않는 이상 화면에 하늘이 담기는 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구름이 가득한 해 없는 날, 비 오는 날에 대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실제로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오기를 기다려 카메라를 펼치는 순간이 중요했다. 실제로 모레 비가 온다고 하면 홍 감독님이 그때부터 신이 나 계셨다. 비 맞고 산 뛰어다니고 너무 재미있었다.

김지운_내가 아는 홍경표는 산에서 버섯 따먹으며 야생으로 찍었을 것 같다. (일동 웃음)

류승완_아까 박 감독님이 <암살>과 <베테랑> 시나리오를 읽고 조언해준 얘기를 했는데, 나홍진 감독 사무실에 가면 익숙한 글씨체의 메모가 떡하니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 있다. 박 감독님이 <곡성> 시나리오 모니터를 해주면서 적어준 메모더라. 그걸 액자로 만든 거다. 나는 한번도 그런 메모를 못 받아봤다. (웃음)

박찬욱_나홍진이 무서워서 대충 모니터하면 뭐라고 할까봐 성의껏 리뷰를 해준 거다. (일동 웃음) 그래도 도움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나홍진_박 감독님이 시나리오 리뷰를 해주시면서 한 캐릭터와 한 신에 대해서 이건 안 좋은 것 같다고 한마디 써놓으신 게 있었다. 재미있으려고 넣은 것 같은데 안 좋다는 의미였다. 어쨌건 찍긴 했는데 편집실에서 막상 그 장면을 보니까 감독님의 말이 가슴에 와닿더라.

류승완_그래서 부적처럼 액자에 걸어놓은 것 같다.

최동훈_영화에 실제로 부적이 많이 나오지 않나?

나홍진_영화에 나오는 모든 세팅은 실제 무속인들의 도움을 얻어서 그대로 한 거다. 부적도 실제로 쓰는 부적과 똑같은 것들이다.

최동훈_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전우치>(2009) 때 부적이 나오는 장면이 좀 있었다. 날리면서 찍는 장면도 있었고. 아무튼 내가 건네준 <부적대백과사전>을 바탕으로 미술팀에서 만든 부적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고가 막 나는 거다. 길흉화복과 관계없이 그냥 멋진 디자인 위주로 부적들을 만들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가 싶을 정도였다. 가령 이 장비 차는 무거우니까 이동하다가 미끄러지면 큰일나겠는데, 라고 말하면 정말로 미끄러지는 사고가 나고 그랬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그땐 정말 무서웠다.

류승완_감독들이라면 느끼게 되는 ‘현장의 기운’이라는 게 있다. <곡성> 촬영장을 두번 찾아갔는데 정말 그 기운이 남달랐다. 집 구경 한번 해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너무 으스스하고 진짜 무서운 것 있잖나, 이 공간이 어떻게 카메라에 담기게 될까 궁금하고. 일단 배우들이 이제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부스스한 날것 그대로의 표정이 살아 있었다. 천우희 배우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이거 참. (웃음) 일본 배우 구니무라 준의 연기도 궁금하다.

김지운_크랭크업하던 순간 구니무라 준이 ‘나홍진!’ 하고 외쳤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떤 마음으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류승완_왜 그랬는지 나는 알 것 같은데? (웃음) 아무튼 나홍진 감독 진짜 무섭다. 전에 나와 임필성, 나홍진 감독이 함께 시체스영화제를 간 적 있다. 임필성 감독이 그때 극장에서 <황해>를 보다가 몸을 살짝 뒤척였다. 그랬더니 나홍진 감독한테 바로 문자가 왔다더라. “졸지 마세요.” (일동 웃음) 엄청 무서웠을 거다.

<씨네21>_촬영이 끝난 지도 꽤 됐는데 <곡성>은 아직 알려진 정보가 너무 적다. 흥미로운 단서를 더 줄 것이 없나?

나홍진_아직 후반작업 중이라서 말을 아끼고 있다. 영화에서 비가 한 7분 정도 내리는 신이 있는데 비가 그치면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동일한 빗소리도 아니고 아마도 그런 경험을 처음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찬욱_비 멀미 같은 건가? (웃음) 정말 궁금하다. 러닝타임은 어떻게 되나?

나홍진_고민 중이다. 지금 충무로의 많은 배급 담당자들이 <암살>(139분)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작업하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게 극장 회차 때문인 것 같다.

박찬욱_난 큰일났다. 현재 상태의 <아가씨>는 2시간28분 정도 되는 것 같다.

김지운_다른 감독들이 <암살> 때문에 러닝타임 문제에 있어 좀 편해진 게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 2시간 안으로 맞추라고들 했는데, 2시간 넘는 영화도 천만 관객이 드니까 인식이 달라진 것 같다. 특히 <밀정>은 <암살>과 여러모로 비슷한 계열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확실히 득을 보는 측면이 있다.

최동훈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의 시간에 끌린다

<씨네21>_이제 <아가씨>와 <밀정>으로 이야기를 옮겨가자면, <암살>도 그랬고 류승완 감독이 준비하는 <군함도>도 그렇고, 동시대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그 시대의 이야기로 끌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찬욱_제목 좋다. ‘아가씨와 밀정’이라는 영화가 원래 있는 것 같다. (웃음) 세라 워터스의 원작 <핑거스미스>를 한국으로 옮기려면 그 시대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인, 하녀, 귀족이 나와야 하니까. 물론 조선시대도 가능하겠지만 동성애를 다루고 계급의 격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다루려면 그 시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류승완_동성애와 계급의 문제를 다룬 한국영화는 일찌감치 있었다. <사방지>(1988)라고. (일동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때 만난 이혜영 선배는 그 영화 출연하시며 칸국제영화제에 갈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아무튼 <군함도> 얘기를 하자면 일단 <베테랑> 들어가기 전부터 준비했던 영화다. 뭐랄까, 예전부터 그 시대를 다루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언젠가 영화로 꼭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바로 김성종 작가의 <여명의 눈동자>다. TV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이전 스포츠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좋아했었다. 송지나 작가가 드라마로 잘 각색했는데,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최재성이 연기한 최대치가 거의 악마처럼 등장한다. 나는 해방 전, 한국전쟁 전,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 그렇게 삼부작으로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정진우 감독님이 최윤석씨를 주인공으로 <여명의 눈동자>를 찍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최동훈_이야기를 듣고 보니 원작이 읽고 싶다. 나도 <암살>을 하면서 영화에는 에필로그처럼 등장하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 나 또한 동세대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그 시대에 끌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나, 다들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이템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류승완_확실히 뭔가 파고들고 싶게 하는 시기다. 해방 후는 질서가 완전히 잡히지 않았는데 계급도 있는 이상한 시기였다.

최동훈_그 흥미로움에 반해 영화로나 TV드라마로나 너무 안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조사해보니 위조지폐도 찍어내고 하여간 이상하게 혼란스런 시기였다.

박찬욱_오승욱 감독도 <무뢰한> 다음 작품으로 미 군정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더라.

김지운_현재 실제 촬영을 하면서 느끼는 건, 감독으로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은 시기라는 점이다. 이야기의 디테일부터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아마도 그런 점들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밀정>을 하게 된 것은, 할리우드에서 준비하던 작품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게 되면서 검토하던 시나리오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의열단 이야기는 꼭 한번 영화화하고 싶은 소재였다.

박찬욱_혹시 <암살>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 김원봉이 등장하나?

김지운_김원봉의 느낌을 가진 다른 캐릭터가 나온다.

류승완_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갔을 때 사진을 봤는데, 김원봉은 실제로 정말 잘생겼더라.

김지운_의열단원들 모두가 멋쟁이들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 <밀정>을 하게 된 데는 시대적 배경을 떠나 내가 좋아하는 스파이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컸다. 그런 이유로 전에 상하이로 촬영을 떠나기 전 <씨네21>과 인터뷰하면서 ‘콜드 누아르’ 어쩌고 얘기를 꺼냈는데, 막상 상하이에 갔더니 너무 더운 거다. 그래서 콜드 누아르 그런 얘기는 이제 안 하려고. (웃음)

박찬욱_그럼 사우나 누아르는 어떤가. (일동 웃음) 뭔가 끈적끈적한 느낌도 좋을 것 같다.

류승완_<밀정>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를 봤는데 콧수염 기른 모습이 너무 멋졌다. 우리가 흔히 ‘친일파 나카무라’라고 연상하는 그 이미지, 그런데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김지운_뭐랄까, 송강호가 너무 송강호 같다. 그 이상 다른 설명을 하지 못하겠다. (웃음)

<씨네21>_굳이 오늘의 다섯 감독을 나이순으로 박찬욱과 김지운, 최동훈과 류승완과 나홍진, 이렇게 양쪽으로 나눈다면 전자는 송강호, 후자는 하정우라는 배우가 보다 깊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가씨>의 하정우에 대한 특별한 호기심이 생긴다.

최동훈_송강호 선배는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 중 하나다.

류승완_얘기한 것처럼 보자면 묘하게 그렇게 나누게 되는데, 사실 충무로에서 송강호가 섭외 1순위가 아닌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들 기본적으로 송강호 선배와 작업하고 싶어 한다.

최동훈_난 꼭 할 거야. (일동 웃음)

류승완_나도 그러고 싶지만 영화의 배역과 맞아야 하니까. 송강호 선배에게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의 류승범 역할을 부탁드릴 순 없지 않나. (웃음)

김지운_다시 송강호와 만나 영화를 찍으면서 느끼는 건, 이 배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이다. 송강호는 호흡하는 것도 연기의 일부다. 이건 배우 칭찬이지 내 영화 칭찬이 아니다.

류승완_한동안 자화자찬 잘 안 하시더니 또 나오네. (웃음) 할리우드 갔다 온 뒤 좀 방황하시는 것 같더니 확실히 옛날 감을 찾으신 것 같다.

박찬욱_그러게, 이젠 보다 세련되고 조심스럽게 나오는데? (일동 웃음)

류승완_어떤 배우든 예상 가능한 패턴이 있는데, 송강호 선배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한계가 없는 배우다. <밀정> 현장에서 느낀 건, 원래 대사 연기를 잘하는 사람인 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가방을 들고 걸어가다가 슥 빠져나온 장면을 보는데, 몸짓이 너무 좋더라. 맞아, 몸 연기가 좋은 사람이었지, 새삼 깨닫게 됐다. 그 장면을 전후한 이야기도 모르고 딱 그 장면만 본 건데도, 그렇게 걷는 모습으로도 다 표현이 되더라.

김지운_보통 배우들이 한 문장을 연기할 때, 어떤 호흡으로 처리해야겠다는 의도를 갖고 한다. 그런데 송강호는 한 문장에서 호흡을 매번 바꿔서 연기하는 게 가능하다. 짧은 대사 한줄에도 엄청난 번민과 센스가 담겨 있다.

류승완_연기기능 장인이다. 연기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면 단연 1급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김지운 감독님의 예전보다 세련되고 깊어진 자기자랑을 들어보는 느낌도 좋았다. (웃음)

나홍진_<곡성>의 황정민도 좀 그런 느낌을 주는 배우다. 패턴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송강호 선배는 함께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봐도 그런 걸 느끼게 해준다.

나홍진

중국에서 영화 찍기에 대해

<씨네21>_서사의 시대가 겹치는 것으로 인해 서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류승완_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세트다. <암살> 세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는 게 가장 안타깝다. <암살>은 미술적으로 정말 완성도 높은 세트였다.

김지운_맞다, 나는 진짜 절실했다.

박찬욱_나도 당연히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도 <암살> 세트를 쓰고 싶어 했더라.

최동훈_나도 너무 안타깝다. 남겨두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지자체와 협의가 잘 안 됐다. 비어 있는 동안에도 계속 비용 문제가 발생했고 기존 제작비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류승완_그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군함도>에 당시 경성 장면이 필요해서 일본쪽을 알아봤는데 거긴 더 심각하더라. 일본도 그 시대의 세트가 마땅한 데가 없어서 오히려 경남 합천세트장에 가서 촬영한다고 했다. 이누도 잇신의 <제로 포커스>(2009)도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세트에 와서 촬영하지 않았나.

최동훈_중국 가서 촬영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실제로 중국에서 촬영하는 게 홍콩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 <도둑들> 때 마카오와 홍콩에서 촬영하고 <암살> 때 중국 상하이 처둔세트장 등지에서 촬영했는데 결코 중국 촬영이 비용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암살>도 <군함도>처럼 경성 장면이 필요해서 처둔세트장에서 찍은 것이긴 하다. 진덕삼 감독의 <8인: 최후의 결사단>(2009)을 찍은 곳인데 여러모로 중국 분위기가 나는 건물들이 많아서 애를 먹었다.

김지운_<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7)에 이어 중국에서 또 촬영하게 된 건데 싼 건 음식밖에 없는 것 같다.

최동훈_한 세트장에서 제작되는 편수가 많으니까 무지 바쁘고 장비는 부족하고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화면에 잡히는 거리 장면을 찍을 때도 우리가 길 장면을 찍고 있을 때 옆 건물에서 다른 영화를 찍는 경우도 있었다. (웃음)

김지운_그럴 때 좋은 점도 있다. 옆에서 다른 영화팀이 세팅해놓은 조명을 빌려 쓸 수도 있다. 멀리서나마 빛이 닿는다. (웃음)

류승완_지운사마가 원래 이런 분이 아니었는데. 자존심 강한 분이었는데 어쩌다가. (일동 웃음)

김지운_왜냐하면 그 세트장의 다른 중국 영화팀들은 대부분 동시녹음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다. 그들이 촬영할 때 우리는 쉬면서 떠들어도 상관없다.

최동훈_맞다. 촬영장에서 왜 조용히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문제는 <암살>은 동시녹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웃음) 옆의 중국 촬영팀에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처둔세트장에 처음 갔을 때 그 길이 너무 넓어서 놀랐다.

류승완_도로 폭이 넓으니까 전차 두대가 왔다 갔다 할 정도다.

박찬욱_그 오픈 세트는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가봤을 거다. <아나키스트> 준비할 때 막 지은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드디어 여기서 촬영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들떴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세트가 나오는 영화만 보면 화딱지가 난다. (일동 웃음)

<아가씨>와 <밀정>

<씨네21>_<아가씨>는 원작에 비춰보건대 줄곧 박찬욱 감독이 천착해왔던 계급과 죄의식의 문제가 더 강화된 것 같다.

박찬욱_<아가씨>는 원작 <핑거스미스>와 비교해서 전반부만 비슷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다르다. 여성들 사이의 사랑과 ‘거짓말’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남을 속이는 데 따르는 죄의식의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상대를 속여야 자기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가 있다. 하정우까지 포함해서 세 주인공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누가 누구와 연대하는가, 그 연대를 통해 누구를 속이나, 그 속이는 게임이 복잡해진다. 이쪽으로 붙었다 저쪽으로 붙었다 하기도 하고.

최동훈_하정우와의 작업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암살>로 만난 그는 연기자로서 잘 훈련되고 동물적인 본능이 잘 혼재된 배우였다.

박찬욱_사실 하정우는 가까운 감독들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고, 또 많이 보기도 해서 그런지 새로운 배우와 일한다는 느낌이 덜했다. 또 감독으로서 연출 경험이 있는 배우와 소통하니까 여러모로 편한 것도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긴 설명을 안 해도 자기가 알아서 척척 해냈다. 영리한 사람이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선을 잘 찾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특유의 유머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호감을 주는 타입이다. 영화에서 사실 사기꾼이나 다름없는데, 아주 나쁜 짓도 살짝 귀엽게 보이도록 하는 귀염성이 있다. 관객이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미워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김민희, 김태리의 경우는 두 사람의 대비가 재밌다. 노련한 배우와 참신한 배우의 대비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김태리는 활발하다면 김민희는 섬세하다. 조진웅은 나이 든 역할인데 그럴듯하게 잘한다. 계획에 없던 걸 시키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금방금방 해내는 순발력이 좋더라. 연기하는 것 자체를 되게 즐기는 배우다. 여집사 역의 김해숙씨는 워낙 오랫동안 좋은 호흡을 맞춰온 배우이고 처음 작업해보는 이모 역의 배우 문소리도 정말 좋았다.

김지운_혹시 하정우의 ‘먹방’도 있나?

박찬욱_있다. 복숭아 먹방이 있다. (일동 웃음) 영화에서 그가 복숭아를 먹을 때 콱 터져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냥 씹으니까 잘 안 되더라. 그러자 하정우가 복숭아를 조용히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 될 거 같아요” 그러고 콱 씹는데 카메라 렌즈에까지 복숭아즙이 튈 정도였다. 와, 역시 하정우구나 했지. (웃음)

나홍진_원래 <황해>에도 먹는 장면이 더 있었다. 만두 먹는 장면을 뺐는데 나중에 그가 직접 연출한 <허삼관>(2014)을 보니 거기에 만두 먹는 장면이 있더라. (웃음)

김지운

<씨네21>_<아가씨>는 여성 퀴어영화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원작을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박찬욱_물론 여성 퀴어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원작을 접하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경우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결정한 순간 원작과 초반부를 빼고는 완전히 방향성이 달라졌다.

<씨네21>_<밀정>에 대한 호기심은 오히려 공유라는 배우에게서 생겨나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2003)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김혜수 같은 뭔가 익숙한 완성체 같은 배우들과 작업해왔다. 기존의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그것을 비트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공유와의 호흡이 어떨까 궁금하다.

김지운_아직 촬영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영화에서 자금을 만들어 의열단 본부인 상하이로 보내고, 또 송강호와 친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공유는 무척 사려 깊고 상황에 대한 안배를 잘해주는 성격인데, 그게 역할과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서적인 측면을 많이 고양시켜주는 역할인데, 특히 후반부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사실 공유가 중요하게 출연하는 부분은 이제부터 막 촬영할 예정이다. (웃음) 그와의 작업에 대한 기대가 컸고 아직까지는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상황이라 나 또한 궁금하다. 본래의 고운 심성과 성격이 담기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또 다른 배우인 신성록과 더불어 그 탁월한 기럭지의 간지가 진짜 좋다. (웃음) 다들 옷태가 장난이 아니다. 신성록은 그야말로 뱀 같은 연기를 하고, 한지민은 연기의 안정감이 장르영화의 클리셰와 부딪히며 묘한 케미를 만들어낸다. 또 엄태구는 억누르다 순간적으로 분출시키는 에너지가 좋은 배우다. 그처럼 연기, 촬영, 미술 등 현장 분위기가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조금 더 흥을 가지고 분발하면 그런 것들을 다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웃음)

나홍진_요즘 상하이 날씨가 안 좋은 것 같은데, 비가 계속 왔었나?

박찬욱_나홍진은 역시 비 얘기다. (일동 웃음)

김지운_비가 자주 왔다. 안개도 자주 끼고 추울 땐 아주 으슬으슬했다. 사실 날씨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처음 갔던 한달은 ‘콜드 누아르’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더웠고(웃음), 이후로는 계속 비가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원래 따뜻한 곳이라 난방기구 시설이 잘돼 있지 않아서 계속 냉랭했다. 주택이 난방에 적합한 구조들이 아니어서 제작진의 노고가 컸다.

최동훈_해외 촬영을 하다보면 한국 온돌의 위대함만 깨닫게 된다. (일동 웃음)

나홍진_<암살>은 화면 안에 앰버(보조광선)가 많았다. <밀정>은 어떤가?

최동훈_<암살>은 의도적으로 앰버를 많이 살린 경우다. 그래서 나도 <밀정>이 궁금하다.

김지운_<밀정>은 거의 뺐다고 보면 된다. <암살>과 <밀정>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마 그런 차이들이 있지 싶다. 콜드 누아르라는 컨셉을 잡으면서 전체적으로 차갑게 가고 싶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목재로 된 공간이 많아서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의식적으로 화면 안에서 온기를 빼는 쪽으로 갔다. 시선의 차가움 등도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런 온기가 생겨나는 경우에는 혼란이 왔다. 스타일로서 누아르라는 장르에 접근하기보다는 인간의 비상과 추락, 내면의 어떤 변화 같은 것 위주로 드라마를 강화해 찍어가는 과정에 있다. 거기서 빚어지는 관계의 교란 같은 것들이랄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배우가 많이 보이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 연기가 많아서 처음부터 배우들에게 스몰 액팅을 주문했다. 아마도 스타일로서의 장르보다 인물의 드라마가 더 도드라지지 않을까 싶다.

박찬욱_그런 필모그래피의 변화로 보자면, <아가씨>의 특징은 여태까지의 내 영화 중 대사가 제일 많다.

김지운_그러고 보니 <밀정>도 그렇다. (웃음)

박찬욱_게다가 원작에서 가져오지 않은 대사가 대부분이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중요하고 큰 차이다.

김지운_나도 가끔 <밀정>이 내 영화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주로 배우들이 대사를 많이 할 때다. 자신을 감추고 쇼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 떠벌리는 연기를 많이 주문한다. 여태까지 한번도 그런 떠벌리는 캐릭터를 한 적이 없어서 생소하더라.

박찬욱_비슷하다. <아가씨>에서도 상대를 속여야 하니까 그런 순간들이 꽤 있다.

최동훈_반대로 난 그런 캐릭터들이 즐비한 영화들을 찍어왔기에 <암살>이 어색했다. (일동 웃음) <암살>은 전체적으로 조용조용하니까 내 영화 같지 않더라. 그처럼 대사 많은 영화를 하니까 즐겁지 않았나?

박찬욱_나는 이번에 대사 많은 영화를 하니까 확실히 즐거웠다. (웃음) 나홍진 감독은 어땠나?

나홍진_<곡성>도 분명한 장르영화다. 그러면서 어떤 장르영화가 되어야 할까에 대해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 나의 이전 영화들과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해보고 싶어 하던 것을 한 것인가, 도대체 뭐가 새로운 것일까, 찾고 싶다. 아까 박 감독님을 보자마자 던졌던 질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가씨>와 <밀정>에 비하면 훨씬 더 일찍 촬영을 끝낸 영화인데, 아직도 어떤 영화가 될 것 같다고 정리해서 드릴 말씀이 없다. 단지 날씨를 원하는 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도 없이 그렇게 얘기하면 너무 불친절하려나. (웃음) <곡성>은 캐릭터의 대사나 그런 것보다 자연적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됐으면 했다. 아무튼 나도 여전히 대화 신을 찍기가 너무 어렵다. 최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어떻게 그리 탁탁탁탁 잘 찍는지 부럽다.

최동훈_확실히 <도둑들> 때의 욕망은 액션 신보다 대화 신을 잘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지운_이른바 명감독들의 영화는 정말 대화 신이 좋다고 느낀다. 이번에 보다 인물들에 집중하면서 느낀 건 대화 신을 지루하게 찍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거였다. 이거 너무 뒤늦은 고민인가. (웃음)

최동훈_어쨌건 나는 2015년을 끝내고 류 감독님처럼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여기 다른 감독님들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다들 기대되는 영화들이다.

김지운_대사와 대화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아가씨>의 퇴폐미와 데카당스가 너무 기다려진다. (웃음)

최동훈_지난 몇년간 진짜 멋진 퇴폐적인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아가씨>가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웃음)

박찬욱_허허, <아가씨>는 퇴폐적인 장면이 일부 포함된 건전한 영화다. 자신 있게 말하는데, 내 영화 중에 제일 건전하다. (일동 웃음) 그리고 조진웅까지 포함하면 네 주연 모두 처음 일하는 배우들인데, 하나같이 다들 ‘샤이’한 편이다. 내 영화 중에 제일 대사가 많았던 반면 한편으로 제일 조용한 현장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 주변에 모여 웃고 떠드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각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고민하는 거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무지 어려웠는데 나중엔 그 고요한 평화가 좋더라. 얼마 전에는 편집실에서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도대체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에 오달수가 없는 거다. (일동 웃음) 오달수 없이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과거에 매일의 촬영이 끝나면 송강호와 오달수와 나, 그렇게 셋이 마신 술이 얼마였는지.

김지운_나는 원래 그런 고용한 평화를 사랑했다. (웃음) 나도 송강호를 제외하고는 공유, 한지민, 신성록 셋 다 처음 작업하는 배우들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스스로 ‘흥’을 찾지 못해서 고민 중이다.

박찬욱_오랜만에 송강호를 만났는데도 흥이 나지 않는단 말인가?

김지운_그것과는 별개의 개인적인 문제다. <악마를 보았다>에 빠져 있으며 보냈던 힘든 시간들, <라스트 스탠드>로 미국 생활을 하며 보냈던 외로운 시간들 이후, <밀정>은 또 계속 차갑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 흥을 끄집어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류승완_그러고 보니 우리 중 유일한 총각이다.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김지운_현장편집을 맡은 친구가 지나치게 의욕적이다. 딱히 시킨 일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때 일하고 싶다고 해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감독인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웃음)

‘영화란 무엇인가’ 고민은 계속된다

<씨네21>_내년 봄 촬영에 들어가게 될 <군함도>와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특히 류승완 감독은 언제나 시대와 밀착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서 오는 에너지의 쾌감이 컸기에 <군함도>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류승완_<군함도>는 내 영화 중 처음으로 과거로 가고, 또한 다루지 않았던 다른 세계를 다루는 첫 번째 영화다. 지난 몇년간 만든 영화들은 로케이션 촬영을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찍은 것이었다면, <군함도>는 세트 분량이 엄청난 영화가 될 것 같다. 이제 시나리오 수정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여러 고민을 붙들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세기를 넘어 20세기의 이야기다. 그게 나에겐 특별하다. ‘시대’를 다루어야 한다는 고민이 가장 크다. 군함도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서 어떤 사람들이 흘러오게 된 건지, 너무 궁금했다. 축구장 2개 정도 되는 크기에 많을 때는 5천명 정도가 모여 살았다. 땅은 좁은데 사람들을 몰아넣어야 하니까 건물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 감옥도 아니고 전쟁포로들도 아닌데 사생활은 전혀 없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고 삶의 방식도 다 달랐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미드 중 나치의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호간의 영웅들>이라는 작품을 좋아했는데, 그게 떠오르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런 여러 요소들을 어떻게 흥미롭게 묘사하느냐가 핵심이다.

박찬욱_군함도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탈출하려고 하면 얼마나 차갑고 괴로웠을까.

나홍진_아니다, 11월의 바다는 따뜻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류승완_정확하다. 오히려 여름이 아니라 11월에 그냥 둥둥 떠다닐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더라. 역시 <황해>를 만든 사람이라 모르는 게 없다. (웃음) 그리고 군함도의 로맨스도 그려볼 생각이다. 2017년 여름 개봉이 목표다.

김지운_이제 여름 개봉에 재미붙였구나. (일동 웃음)

최동훈_그때 개봉이면 <아바타2>랑 붙는 것 아닌가? (류승완 감독 순간 얼음) 난 이미 <전우치>로 <아바타>와 붙어본 경험이 있는데, 한번쯤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웃음)

류승완_난 싫다. 난 누구랑 붙으면 안 된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5년 4월1일 만우절 <주먹이 운다>가 김지운 감독님의 <달콤한 인생>(2005)이랑 붙어서 잘 안 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군함도>는 여름이 배경이라 여름에 찍고 후반작업이 길 테니 역순으로 해보면 2017년 여름이 거의 확실하다. 이거 긴급회의를 열어야겠다(<아바타2>는 2017년 크리스마스 개봉예정이다.-편집자).

최동훈_나는 여전히 아이템 단계라 얘기하기가 좀 민망하다. 나는 취재를 거듭하면서 설계를 구체화하는 스타일인데, 아직 취재도 시작하지 못한 단계다. 5개의 프로젝트가 비슷한 강도로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그 5개를 다 합치면 정말 멋진 영화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시대보다 스파이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밀정>을 시작하셨다는 김지운 감독님처럼 정통 첩보 스릴러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꿈만 꾸던, 원래 좋아하던 영화를 언젠가는 꼭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해온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열망만 살아 있다.

박찬욱_이전과 다르다면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영화? (웃음)

최동훈_아니, 역시 인물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그건 진짜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웃음) 보통 인물들이 많으면 그중에서 몇몇은 분량이 좀 적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배우한테 미안해서 그런지 계속 뭘 더 써서 분량을 늘리게 된다. 아무튼 요즘 이런저런 고민들이 있었는데 오늘 다른 감독님 얘기 들으면서 기운이 나는 것 같다. 1월1일부터 열심히 또 써나가야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겠다, 흔히 얘기하는 기준이나 모델 같은 것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두편의 천만 영화를 만들었다며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볼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서 정작 나는 갈수록 흥행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대체 ‘영화란 무엇인가’ 계속 고민하게 된다. 매 순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만들어야 하는 게 근본적으로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조만간 무엇으로 결정하게 될지 모를 그 5개의 프로젝트 앞에서 요즘 계속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감독 일동_정말 좋은 말이다. 우리 다 같이 힘내도록 하자!

<군함도>

<군함도>

대중에게는 영화 <007 스카이폴>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촬영지로 알려진 하시마섬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 류승완 감독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곳 군함도로 징용됐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스티븐 매퀸 주연의 영화 <대탈주> 같은 일종의 탈옥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다. 시대 배경은 어림잡아 1944년 1월부터 8월 사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중심인물은 4명 정도로 구상 중이며, 간단한 그들의 신분은 경성 재즈악단장과 그의 딸, 경성 깡패, 미쓰비시가 탄광 내에서 운영하던 유곽에서 일하던 여성, 정부에서 비공식 승인한 구출작전에 투입되는 OSS 특수훈련을 받은 조선인 등이다. 이들이 뒤엉켜 섬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만 들여다봐도 벌써부터 울컥하는 마음이 생긴다. 류승완 감독의 진지한 시대극이라는 점도 영화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아가씨>

<아가씨>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가 원작인 <아가씨>는 1930년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고용되어 아가씨의 하녀가 되는 소녀(김태리) 이 세 사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거짓말’에 관한 비교적 ‘건전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계급과 죄의식의 테마는 더욱 확장된 느낌이다. 주연배우 외에 아가씨 이모부 역의 조진웅, 여집사장 역의 김해숙, 이모 역의 문소리 등이 출연해 진검 연기 승부를 보여줄 것 같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신인배우답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김태리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곡성>

<곡성>

평온한 시골 마을에 의문의 연쇄 사건이 발생한다. 거기에 언젠가부터 나타난 이방인의 존재가 겹치면서 마을의 일상이 깨지고 만다. 그러고는 소문이 마을을 집어삼키게 된다. 황정민, 곽도원, 천우희, 조한철, 장소연 등이 출연하는 영화로, 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시무시한 영화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나홍진 감독에 의하면, “<곡성>은 장르영화이자 가족영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장르영화가 되어야 할까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후반작업 중이라서 “지금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그가 현장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은 “날씨를 원하는 대로 담아내는 것”이었다고. 여전히 매혹적인 호기심으로 둘러싸인 영화다.

<밀정>

<밀정>

김지운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오랜만에 재회하는 영화 <밀정>은 워너브러더스에서 제작비 100억원 전액을 투자했다. 1920년대 경성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경성으로 폭탄을 반입하려는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과 그를 막아내려는 조선인 일본 경부 이정출(송강호) 두 사람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교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지운 감독은 지난 <씨네21>과의 인터뷰(1023호)에서 “민족에 대한 젊은이들의 희생, 그 비장함과 숭고함”을 담아내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하지 못한 것을 <밀정>에 가져올 생각”이었다는 김지운 감독의 눈에 비친 경성과 상하이, 그러니까 경성과 상하이에서 펼쳐지는 그만의 누아르는 이번에 또 어떤 기운을 뿜어내게 될까. 송강호의 “한계를 모르는 존재감”은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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