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테넌바움>은 <샹하이 눈> <에너미 라인스> 등 ‘뉘앙스’와는 거리가 먼 장르영화의 주인공으로 오웬 윌슨의 얼굴을 익혔던 국내 관객에게 또 다른 재발견의 기회다. 웨스 앤더슨의 단편과 장편에서 작가이자 연기자로서 동반자적 관계를 지속해온 오웬 윌슨의 진면목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텍사스 주립대 시나리오 강의에서 만난 웨스 앤더슨과 오웬 윌슨은 룸메이트로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다. 둘의 동거는 방을 둘러싼 다툼으로 시작됐다. 먼저 입주한 앤더슨이 화장실과 발코니가 딸린 2층을 선점했고 둘은 중간고사가 끝난 뒤 방을 바꾸기로 했으나, 반드시 좋은 학점을 받아야했던 에드가 엘런 포에 관한 윌슨의 과제를 앤더슨이 대신 써줌으로써 윌슨은 1층 작은 방에 만족해야 했다고. 언제나 윌슨이 산만하지만 재능을 감춘 학생이라고 주장했던 담당 교수는 앤더슨의 숙제에 아주 만족해 A+ 학점을 주고 “봤지, 이게 이 친구의 잠재력이야”라고 주변에 자랑했다고 한다.
영화 보는 취향의 궁합이 예나 지금이나 찰떡인 윌슨과 앤더슨은 카사베츠, 페킨파, 스코시즈, 알트만, 맬릭, 휴스턴 감독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곤 했다. 영화와 관련된 둘의 가장 흥미진진한 일화는 가짜 강도 사건. 부서진 창문 자물쇠를 고쳐주지 않는 주인의 소행에 분개한 둘은 강도를 가장해 침입한 뒤 보안 탓이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고용된 사립탐정에게 꼬리가 밟혔다. 그러나 합의를 하러간 앤더슨의 설득력은 상상을 뛰어넘어 다큐멘터리 한편의 제작비까지 집주인에게서 얻어내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고 두 사람은 회상한다. 가까운 사이에도 비밀은 있는 법. <바틀 로켓>의 흥행실패가 던진 충격 속에서 오웬 윌슨은 앤더슨도 모르게 직업군인의 길을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우정은 앤드류, 루크 윌슨 형제와 각자의 친구, 애인을 포함하는 ‘써클’로 지름을 넓혀갔다. 웨스 앤더슨은 언제나 형제들로 북적대고 이벤트가 많은 윌슨 집안의 단골 손님이었지만 앤더슨은 자신의 집에 윌슨을 초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웨스 앤더슨은 <로열 테넌바움>의 엘리가 그랬듯 윌슨 집안에 입양되기를 바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은 할리우드의 유망주로 성장한 지금도 굳건해 보인다. 오웬 윌슨은 “웨스는 자신이 카메라를 움직일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틴 스코시즈의 모든 영화를 본 티를 낸다던가하는 서툰 짓을 하지 않는다. 웨스의 영화는 보기에 가슴이 뛰지만 잰 체하지는 않는다”라고 오랜 친구를 칭찬한다. 그런가하면 웨스 앤더슨은 지금도 오웬 윌슨이 출연한 영화를 볼 때마다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기다리다가 “앗 저기 오웬 나왔다!”라고 말하기 일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