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로얄 테넌바움>과 웨스 앤더슨 [1]
2002-03-22
글 : 김혜리
장인의 손끝을 지닌 `또라이` 청년, 인생을 가지고 놀다

천재 가족 테넌바움 가에 바치는 엘레지 <로얄 테넌바움>은 어디서 본 듯하지만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영화다. 그러나 이제 세 편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 웨스 앤더슨에게 “지금 죽어도 영화사에 기록될 감독”이라는 칭찬과 “유아적 자기도취”라는 폄하는 <로얄 테넌바움>이 처음이 아니다. 그의 전작 <바틀 로켓>과 <빌 머레이의 맥스 군, 사랑에 빠지다>는 조용하지만 인상적인 파문을 일으키며 그가 할 하틀리와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이룰 미국 인디 영화계의 멤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자아내왔다. 뒤늦게 우리가 스크린에서 처음 만나는, 그러나 앞으로 오랫동안 영화 팬들의 머릿 속에 머무를 듯한 예감을 던지는 새로운 재능 웨스 앤더슨 감독을,<로얄 테넌바움>의 3월29일 개봉에 앞서 소개한다.

‘위대한 테넌바움가의 사람들’을 만나 보시렵니까? 영화 <로얄 테넌바움>의 내레이터 알렉 볼드윈의 세련된 안내를 따라 뉴욕의 아처 애비뉴 모퉁이를 돌면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놀라게 했던 입체그림 같은 붉은 벽돌집이 관객을 맞는다. 이 집의 실내장식가는 여백의 미라곤 모르는 위인이다. 그림 액자가 들어찬 분홍색 벽, <포브스> 묶음부터 그리스 비극까지 가로누운 책들로 빈틈없는 선반, 기계식 넥타이 걸이와 드럼 세트, 쳇바퀴를 돌리는 달마티안 생쥐. 여기가 바로 17년 전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천재 삼남매가 유년의 기억을 밀봉하고 뿔뿔이 흩어져간 테넌바움 저택이다. 그러나 우리를 제일 먼저 사로잡는 궁금증은 전설적인 테넌바움 남매들의 사연이 아니라, 이 기막힌 ‘인형의 집’을 도대체 어떤 아이가 만들었을까하는 질문이다. 문제의 아이는 올해 서른두살이 된 웨스 앤더슨. <로얄 테넌바움>은 1996년의 <바틀 로켓>과 1998년의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에 이은 그의 세번째 영화다.

도서관 대출장면으로 시작해 소설을 한 챕터씩 넘기듯 전개되는 <로얄 테넌바움>은 웬만한 관객이라면 평생 본 가장 이상한 영화 다섯편 안에 들 만한 명물이다. 타블로(tableau: 독립된 평면 위에 완성된 회화 작품)들의 퍼레이드로 일관하는 질리도록 꼼꼼한 미장센 탓만은 아니다. 오언 윌슨과 웨스 앤더슨이 함께 쓴 각본은 도무지 관객이 안심하고 울거나 웃거나 둘 중 하나만 하도록 한순간도 내버려두지 않으며 숏은 잘게 쪼개져 있으나 영화의 호흡은 백수의 콧노래처럼 흐느적거린다. 구성요소들을 뜯어서 설명할수록 영화의 실상에서는 자꾸만 멀어지는 얄궂은 영화가 <로얄 테넌바움>이다. 이같은 난감함은 감독의 데뷔작인 <바틀 로켓>의 제작자 폴리 플랫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손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이미 만들어진 영화의 창백한 모방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나리오는 생전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 독특하고 불균질했으며 총명했다.” 그렇다면 웨스 앤더슨과 그의 단짝 오언 윌슨은 테넌바움가의 또 다른 신동일까?

‘또라이’ 소년, 영화를 사귀다

“처음 봤을 때 열일곱살쯤 됐나 싶었다”고 테넌바움가의 안주인 에슬린으로 분한 안젤리카 휴스턴은 180cm가 넘는 깡마른 몸에 걸친 셔츠를 바지 밖으로 반쯤 빼놓고 다니는 웨스 앤더슨 감독과의 첫만남을 그렇게 회상한다. 앤더슨의 성장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가족관계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결정론을 믿어서가 아니라, 서른두살 앤더슨 감독 안에 우표를 수집하고 BB탄 총을 갖고 노는 소년 웨스가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잘못인가요?” “솔직히 너희 때문에 희생한 면은 있지만 그 때문은 아니다.” 별거를 작정한 아버지 로얄 테넌바움이 삼남매와 마주앉은 영화 속 한 장면은, 웨스 앤더슨의 개인적 기억이기도 하다. 1977년 앤더슨의 부모가 이혼했을 무렵, 그의 담임인 토르다 선생은 마침 명상이니 마사지를 동원한 혁신적인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부모의 이혼을 인생의 재난으로 받아들여 급우들에게 비밀로 하고 거짓말과 난폭한 돌발행위로 학교생활을 유지했던 웨스를 담임선생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겼고 그의 배려 덕에 열살의 웨스는 알라모 전투를 재연한 전쟁극, <인디아나 존스>의 외전, <목없는 기수>(<슬리피 할로우>의 원작) 등등 온갖 희한한 장르의 희곡을 써서 주연까지 겸했다.그리고 원치 않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인을 강제로 나눠주며 만족스런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앤더슨의 모교에서 촬영된 두번째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야심만만한 자칭 천재 맥스 피셔는 앤더슨의 작은 분신이다. <로얄 테넌바움>의 에슬린과 똑같이 고고학자로서 교육열이 남달랐던 앤더슨의 어머니가 아들의 과외활동을 지지한 것은 물론이다.

영화광에서 연극과 문학으로 관심을 돌렸던 웨스 앤더슨은 텍사스대학에 진학할 무렵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가난한 대학생 웨스는 텍사스대학의 방임형 커리큘럼과 인문학 연구소를 십분 활용하며 F. 스콧 피츠제럴드,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흥미로운 인물들을 독학했다. 그러나 앤더슨 인생 최대의 사건은 어느 나른한 시나리오 작법 수업시간에 터지고 말았다. 앤더슨의 모든 영화를 같이 쓰고 연기할 다시 없는 동지 오언 윌슨을 만난 것이다. 수업시간에 발표라곤 하지 않는 서로를 “제 잘난 멋으로 사는 참여의식도 없는 놈”이라고 여기며 한 학기 동안 말도 안 걸었던 두 사람은 곧 그들이, 같은 것을 보고 웃고 같은 것을 보고 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은 이내 룸메이트가 됐고 윌슨의 형제 앤드루와 루크도 패거리에 끼어들었다.

몇 백달러의 돈과 윌슨의 형인 앤드루가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얻은 16mm 필름이 첫영화 <바틀 로켓>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당시 앤더슨은 텍사스 지역 케이블TV를 위해 ‘실없는’ 단편을 만들며 영화제작의 기술적인 측면을 수련한 참이었다. 14분짜리 단편 <바틀 로켓>을 본 제작자 폴리 플랫과 제임스 L. 브룩스는 댈러스까지 앤더슨과 윌슨을 찾아왔다. 선댄스 시나리오 작가 연구소에서 완성된 장편용 각본은 앤더슨이 워드 프로세서의 서체 크기를 잘못 지정하는 바람에 대하서사극 분량을 넘어버렸지만 제작자들은 이 얼떨떨한 젊은이에게서 미더운 무엇을 발견했다.500만달러가 투자된 장편 <바틀 로켓>은 결국 100만달러가 못 되는 돈을 버는 데 그쳤지만 할리우드 내부자 사이에 팬을 확보해 웨스 앤더슨과 윌슨 형제의 영화경력에 물꼬를 텄다. 2년 뒤 디즈니는 1100만달러 예산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제작에 나섰고 <바틀 로켓>에 반한 빌 머레이의 에이전트가 캐스팅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늘어난 예산 대신 개성을 덜어내는 불운을 겪지 않았던 웨스 앤더슨은 케빈 스미스가 그랬듯 친구들의 그룹으로 구성된 <바틀 로켓>의 스탭, 배우- 오언 윌슨과 앤더슨이 시간을 죽였던 커피숍 주인, 앤더슨의 여자친구까지- 를 이어받아 두번째, 세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가 일부 평론가로부터 그해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영화라는 찬사를 따낼 무렵 웨스 앤더슨과 오언 윌슨 콤비는 벌써 할리우드 마을 주민들의 의식 속에서 ‘원더키드’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 커플 옆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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