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로얄 테넌바움>과 웨스 앤더슨 [3] - 웨스 앤더슨 비디오 영화들
2002-03-22
글 : 김혜리

<바틀 로켓>


웨스 앤더슨의 데뷔작 <바틀 로켓>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답 없는 대화를 나누는 ‘워킹 앤 토킹’ 스타일의 1990년대 중반 X세대 영화와 비슷한 외관을 갖고 있다. 멀쩡하게 퇴원하는 친구가 탈출한다고 믿고 흥분해 있는 몽상가 디그난과, 친구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부러 창문에서 시트를 타고 퇴원하는 다정다감한 청년 안소니가 <바틀 로켓>의 두 주인공. 인생에 강렬한 드라이브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디그난은 안소니에게 ‘행복과 부를 위한 7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두 친구는 도둑질에 나선다.

연습 삼아 안소니의 집을 털고, 범죄조직 두목인 헨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서점을 터는 두 사람. 주인공들은 <애리조나 유괴사건>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럽고 소소한 범행을 저지르지만 그것은 고속도로에서 디그난이 피워올리는 병 불꽃처럼 짧은 젊은 날의 섬광이며 이어지는 대화의 소재가 될 뿐 악이나 액션으로서는 거의 무의미하다. 마크 마터스보의 스코어와 1960년대 팝음악이 쓰였고 제임스 칸이 이들이 동경하는 사깃꾼 헨리로 출연한다.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원제의 ‘러시모어’는 인생에서 몰두해야 할 무엇을 빗대는 말이다. 대학입시준비 사립학교 2학년의 맥스 피셔에게 삶의 희망봉은 곧 그가 다니는 러시모어 고교다. 천재적 재능으로 뭇 사람을 감동시키는 백일몽에 젖어사는 맥스는 과욕 덩어리. 육상팀부터 성가대 지휘, 양봉반 대표 등 여남은개 클럽에 가입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새로운 클럽을 창시하는 일도 밥 먹듯 한다. 그런 맥스가 맹목적 사랑에 빠졌을 경우의 야단스런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아름다운 여선생님을 사모하게 된 맥스는 그의 의욕에 마음이 끌려 친구이자 후원자가 된 재단이사 블룸을 자신의 구애를 돕는 큐피드로 삼지만 예기치 않게도 블룸은 스스로 사랑에 빠진다. 인생의 반이 비어버린 남자와 인생의 반만 찬 소년이 만난 지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연대감과 페이소스가 앤더슨의 영화 중 가장 큰 정서적 호소력을 발휘한다. 숙명적인 실망과 서글픔을 잘 짜여진 소극의 표면 아래 감춰둔 솜씨가 미국의 청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자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틀 로켓>의 방만한 구조를 버리고 <로얄 테넌바움>에서 과시한 캐릭터와 아트디렉션에 대한 과잉통제 취향이 발동한 작품. 이 영화를 분절하는 벨벳 커튼은 <로얄 테넌바움>에 가면 책의 장(章)으로 변화한다. 오디션을 통해 맥스 역에 발탁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조카 슈워츠만은 교복뿐 아니라 직접 만든 스쿨 패치까지 달고 와서 ‘맥스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비틀즈 시대 팝과 마더스보의 하프시코드 연주곡이 어울린 사운드트랙이 그 해 최고라는 평판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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