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공포도 SF도 명쾌하고 유쾌하게
2016-03-22
글 : 윤혜지
<마션> 드루 고다드
<마션>

드루 고다드는 플롯의 해체와 조립에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장면의 디테일한 묘사보다도 전체적으로 리듬감 있는 플롯 진행을 선호한다. 진정 ‘재밌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센스도 갖췄다. 그의 어떤 작품이든, 관객이 영화를 체감하는 시간을 본래의 러닝타임보다 훨씬 짧게 느낀다는 건 틀림없이 그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 <로보포칼립스>(프리 프로덕션 중) <마션>(2015) <월드워Z>(2013) <캐빈 인 더 우즈>(2012) 연출•각본 <클로버필드>(2008)

TV시리즈 <데어데블>(2015~16) <로스트>(2005~8) <앨리어스>(2005~6) <엔절>(2003~4) <뱀파이어 해결사>(2002~3)

<마션>의 마크 와트니는 가히 지난해 최고의 긍정 아이콘이라고 할 만한 캐릭터다. 물론 원작자 앤디 위어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쓴 드루 고다드가 아니었다면 <마션>은 지금과 같은 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드루 고다드는 유쾌한 사람이다. 비틀기를 즐기지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할리우드 고전 호러영화를 교과서인 양 보고 자라온 그는 재미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인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 그것이 호러영화에 있었기에 드루 고다드는 호러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놀라게 할 만한 무엇과 마주쳤을 때 인간은 적나라한 면모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대개 그런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다.”

오랜 친우 조스 웨던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캐빈 인 더 우즈>는 호러 장르에 대한 드루 고다드의 애정과 취향의 집합체다. 두 작가는 “숙소를 정해 서로 위층과 아래층으로 방을 나눠 쓰면서 3, 4일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 90쪽 분량이 필요했으므로 하루에 15쪽씩 나눠서 썼다”고 한다. 호러영화의 고전적인 클리셰를 몽땅 퍼부어놓은 듯한 오프닝부터가 드루 고다드가 얼마나 이 장르에 익숙한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호러 장르 자체에 대한 나의 경외와 애정, 호러영화의 영원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드루 고다드의 표현대로 <캐빈 인 더 우즈>는 장르 자체를 영화의 소재이자 전개 방식, 시작과 끝으로 삼은 영화다. 서사는 이중구조로 전개된다. 대량생산되는 할리우드의 하이틴 호러영화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축과 그 축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며 영화 자체를 진행시키는 팀을 중심에 둔 축이다. ‘집합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결말로 갈수록 전설적인 호러영화의 캐릭터들이 팝콘처럼 튀어오르기도 한다. 드루 고다드가 “세상에서 가장 큰 장난감 상자”라고 표현했던, 결말부의 ‘그 장면’에서 말이다.

이런 유형의 작가일수록 원작을 각색하는 시나리오가 난감할 만도 한데, 드루 고다드는 철저한 과학적 연구와 흥미가 바탕이 된 앤디 위어의 복잡한 원작 소설을 깔끔하게 각색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감독 리들리 스콧이 “(드루 고다드의)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영화를 만드는 게 쉽게 느껴졌다”고 했을 정도. “그렇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살아서 집에 돌아오게 된다”는, 드루 고다드가 쓴 엔딩의 대사는 리들리 스콧의 휴머니즘과 영화 <마션>의 지향점을 대단히 근사하게 함축한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건 드루 고다드의 명쾌한 스타일의 반영이고, “살아서 집에 돌아오는” 것은 리들리 스콧의 휴머니스트로서의 꾸준한 테마다

아쉽게도 드루 고다드의 차기작은 거푸 두편이나 제작 보류 상태에 처했다. 대니얼 H. 윌슨의 SF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로보포칼립스>와 소니픽처스의 <스파이더맨> 스핀오프작 <시니스터 식스>다. <로보포칼립스>는 작가로 투입될 예정이고 현재로선 제작 보류 중이다. <시니스터 식스>는 각본과 연출을 맡기로 약속되었으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성적이 부진해 잠시 프로젝트 진행이 멈췄다. 일단은 프로듀서로서의 그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시나리오 데뷔작이었던 <클로버필드>의 스핀오프작 <클로버필드 10번지>와 넷플릭스의 TV시리즈 <데어데블> 시즌2가 곧 국내 공개될 예정이다.

조스 웨던과의 콤비플레이

조스 웨던과는 참 쿵짝이 잘 맞는 동지다. 조스 웨던은 <뱀파이어 해결사>를 만들고 싶어 ‘뮤턴트 에너미 프로덕션’이라는 쉽게 잊지 못할 이름의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드루 고다드는 <뱀파이어 해결사>의 스탭 작가로 일을 시작하며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열었다. 어찌나 찰떡같이 잘 쓰는 작가였던지 <뱀파이어 해결사>의 마지막 시즌에 합류했는데도 드루 고다드는 <뱀파이어 해결사>의 가장 거대한 팬덤을 이끌게 됐다. 해체와 조립에 누구보다 특출난 재능을 가진 두 작가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그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가 없어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던 호러영화의 역사를 거침없이 찢어발긴 것도 모자라 원형만큼이나 근사한 조립품을 내놓은 것이다.

아까운 불발 프로젝트

예정대로라면, 드루 고다드의 “장난감 상자”에 하나가 더 추가될 계획이었다. 게임 <레프트4 데드2>의 확장팩에 <캐빈 인 더 우즈> 월드를 추가할 생각이었던 것. 원래 제작을 맡기로 했던 MGM이 파산 신청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운 좋게 바로 라이언스게이트를 만난 덕에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게임 제작은 무산되었다. 드루 고다드는 “나는 영화에 바탕한 모든 비디오게임을 정말, 정말! 혐오하지만 이것만은 다를 거였다. 이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직도 날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자못 심각하게 하소연했다. 아쉬운 사람이 비단 그 혼자만은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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