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의 미친 공상가
2016-03-22
글 : 김현수
<아메리칸 울트라> 맥스 랜디스
<아메리칸 울트라>

평소 트위터를 즐겨하는 등 뭐든지 생각나면 글로 옮긴다. 즐겨 입는 형형색색의 옷차림만큼이나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것 같은데 그걸 버텨낼 연출자를 찾는 게 관건. 그런데 최근 데뷔작을 내놓았다. 자급자족의 열정이 보인다.

영화 <브라이트>(미정) <파워레인저>(2017) <미스터 라이트>(2016) <미 힘 허>(2016) 연출•각본 <빅터 프랑켄슈타인>(2015) <아메리칸 울트라>(2015) <크로니클>(2012)

TV시리즈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2016) <피어 잇셀프>(2009) <마스터즈 오브 호러>(2005)

뮤직비디오 아리아나 그란데 <원 라스트 타임>(2015)

“구름 위를 날아다니면서 풋볼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비행기를 타고 가던 이십대 청년 조시 트랭크와 맥스 랜디스가 창밖을 내다보며 별뜻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두 사람은 그길로 초능력을 얻게 되는 십대들이 주인공인 데뷔작 <크로니클>을 완성했다. 할리우드는 1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벌어들인 입봉 감독과 각본가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채 서른도 안 된 조시 트랭크는 <판타스틱4>와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으로 내정되고, 맥스 랜디스는 진작에 속편 제작이 결정됐던 <크로니클>의 2편 시나리오를 맡게 된다.

조시 크랭크가 1억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판타스틱4>를 <크로니클>의 그늘 아래 놓인 영화로 만들려다 끝끝내 실패한 반면, 랜디스는 <크로니클> 속편이 무산된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일찌감치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그것인즉,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포장하는 것.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괴상한 이야기 <아메리칸 울트라>와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모두 기존의 흔한 장르 클리셰를 모아 색다르게 구성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가 <아메리칸 울트라>를 집필할 당시 떠올린 것은 1950년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스파이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환각 약물을 사용했던 프로젝트다. 랜디스는 이것을 현재 시점으로 끌고 들어와 편의점에서 일하는 가상의 기억상실 스파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국가간 암투가 아니라 CIA와의 내분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바탕으로 꼽추 조수 이고르의 시점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조수 이고르의 관계를 의학적 지식에 능통한 두 천재의 브로맨스처럼 설정한 것은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폴 맥기건 감독 연출의 영향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가 만드는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는 서브 컬처를 배경 요소로 잔뜩 활용한다는 점이다.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코믹스나 고전SF, 판타지영화 등을 어려서부터 접해 왔던 ‘마니아’ 출신인 그는 <크로니클> 작업 전에 저예산 단편영화 <슈퍼맨의 죽음과 부활>을 만든 바 있는데, 이 영화에서 특유의 B급 감성과 테크닉을 진작에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코믹스에서의 ‘슈퍼맨의 죽음과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만화 안에서의 ‘죽음’ 자체를 죽여버림으로써 모든 캐릭터가 리부트될 가능성, 즉 코믹스 시장의 활성화를 열어주게 되는 것”이라며 창작자와 산업이 만나는 배경에 대한 분석을 들려주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시나리오 쓰기란 작가의 열정을 상업적 요구에 맞게 왜곡과 편집, 포맷,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나리오를 계속 고침으로써 비로소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크로니클>은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하는 영화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맥스 랜디스의 상상력도 갑자기 튀어나온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컬트영화의 대부 격인 <애니멀 하우스>(1978)와 <런던의 늑대인간>(1981)의 존 랜디스 감독과 코스튬 디자이너 데버러 나둘먼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8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중 20편을 팔아 치웠다고 하니, 상상력도 유전인가 싶어 부러워지기도 한다. <크로니클> 이전부터 꾸준하게 단편영화 연출을 했던 그는 최근 데뷔작인 <미 힘 허>를 만들었다. “나의 정체성과 세대에 관한 고민이 이상한 방식으로 담긴 영화”라는 설명에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현재까지 공개됐거나 혹은 루머에 휩싸인 차기작 소식이 워낙 많아서 진위 여부를 일일이 수소문해야 할 정도지만, 현재 촬영에 들어간 실사화 프로젝트 <파워레인저>는 맥스 랜디스 특유의 개성이 제대로 묻어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가 사랑한 괴짜들

맥스 랜디스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 사건과 갈등을 야기한다. 혹은 반대로 누군가가 그 힘을 억제하려 들면서 사건이 진행된다. 데뷔작 <크로니클>에서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얻게 되고 그 힘을 어떻게 쓸지 혼돈하는 고등학생들이 딱 그러하다. <아메리칸 울트라>의 주인공 역시 정부의 프로그램에 의해 살인병기로 키워진 인물이니 모두가 현실 불가능한 괴이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기도 한 셈. 그건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생명을 창조해내고자 프로메테우스에 도전하는 인물로 비쳐지고, 이고르 역시 해부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캐릭터. 이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결함이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채로 시스템과 맞부딪친다. 끝내 세상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맞이하는 결말도 비슷하다.

상상력의 원천은 아버지?

<애니멀 하우스> <블루스 브라더스> <런던의 늑대인간> 등 코미디와 패러디, 공포영화 등 다양한 장르영화에 정통한 존 랜디스 감독은 맥스 랜디스가 무려 16살 때부터 옆에서 그가 시나리오를 쓰는 걸 봐줬다. 그리고 맥스 랜디스가 18살 때는 자신이 연출하는 TV시리즈 <마스터즈 오브 호러> 중 한편의 각본을 그와 함께 써서 공동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루는 맥스 랜디스가 ‘시나리오에 쓰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고민하자 아버지가 “뱀파이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음, 심장에 말뚝을 박고…”라고 얼버무렸더니, 이렇게 대답해줬다. “틀렸다. 뱀파이어 죽이는 법은 몰라도 돼. 뱀파이어는 존재하지 않거든.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면 되는 거야.” 맥스 랜디스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왠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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