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4월28일 개막, <씨네21> 기자들이 엄선한 추천작 (1)
2016-04-26
글 : 이주현
글 : 송경원
글 : 정지혜 (객원기자)
글 : 윤혜지
글 : 문동명 (객원기자)
글 : 김수빈 (객원기자)
글 : 임슬기

‘봄의 영화도시’ 전주에서 4월28일부터 5월7일까지 10일간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쳇 베이커의 전기영화 <본 투 비 블루>로 문을 열고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문을 닫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총 211편(장편 163편, 단편 48편)의 다양한 영화가 상영된다.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재미와 감동까지 안겨줄 영화들이 그득한 가운데, <씨네21> 기자들이 자신 있게 20여편의 영화를 추천한다. 장병원 프로그래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마련한 영상작가이자 영상이론가인 필립 그랑드리외 감독의 작품세계를 조망해주었다. 나만의 영화를 발견하는 작지만 큰 기쁨을 전주에서 누려보시길. 예매는 이미 시작되었다.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로베르 뷔드로 / 미국, 캐나다, 영국 / 2015년 / 97분 / 개막작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끊임없이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며 완벽에 가까이 다가선 뮤지션이라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트럼페터 쳇 베이커는 끊임없이 트럼펫 음색에 무드를 실어날랐던 뮤지션이다.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어딘지 따뜻한 쳇 베이커의 연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로베르 뷔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를 통과하던 시기의 쳇 베이커의 삶에 집중해, 그의 삶과 음악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쳇 베이커 전기영화다. 약물 중독으로 전성기 시절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1966년, 자신의 전기영화를 찍던 쳇 베이커(에단 호크)는 전 부인 역을 맡은 신인배우 제인(카르멘 에조고)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해 치아가 부러진 쳇은 더이상 트럼펫을 연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때는 재즈의 전설로 불렸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먼저 레코딩을 제안하는 사람조차 없다. 쳇은, 마일스 데이비스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1954년 뉴욕의 재즈클럽 버드랜드에서 가졌던 공연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망가진 삶을 회복하려 한다.

젊은 시절엔 제임스 딘과 비교되기도 했던 쳇 베이커는 나이를 먹으면서 주름지고 앙상한 얼굴로 변해갔다. 에단 호크는 그 주름지고 볼이 움푹 팬 얼굴을 하고서 쳇 베이커처럼 노래를 하고 트럼펫을 연주한다. 오클라호마의 고향집을 방문한 쳇 베이커가 풍경처럼 서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 버드랜드에서 <본 투 비 블루>를 들려주는 장면이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올드 데이즈> Old Days

한선희 / 한국 / 2016 / 110분 /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제가 피부로 느끼는 건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생각이에요.” 자신에게 영화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답이다. 이 대답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올드 데이즈>는 이젠 고전이 된 영화 <올드보이>를 만든 사람들의 증언과 당시 현장을 담은 기록으로 이뤄진 다큐멘터리다. 배우들부터 촬영, 조명, 미술 등 각 분야 스탭들이 등장해 <올드보이>를 만들던 치열하고도 찬란한 ‘올드 데이즈’를 회고한다.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는 13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디졸브되며 공간에 서려 있는 특별한 감흥을 전한다. “그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는 배우 강혜정의 말처럼 현장 기록에 담긴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를 향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빛난다. <올드보이> 특별판 블루레이에 수록하기 위해 기획된 다큐멘터리다.

<해피 아워> Happy Hour

하마구치 류스케 / 일본 / 2015년 / 317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5시간17분의 러닝타임이다. 하지만 거대하고 별난 사건은 없다. 30대 네 명의 여자친구인 준, 사쿠라코, 아카리, 후미의 일상과 그들의 관계도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진득한 영화는 관계 사이에, 혹은 자기 안에 벌어진 작은 틈이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가를 끝내 보여주고야 만다. 네 친구는 ‘당신 내면의 중심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주제의 워크숍에 참가한다. 서로 몸을 맞대고 몸에서 나는 소리도 들어본다. 워크숍 이후, 이혼 소송 중이던 준은 “모든 게 두렵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남은 세 친구는 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의 차를 알게 된다. 각자의 삶은 또 각자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가정주부 사쿠라코의 공허, 동거남과 서먹해진 뒤 후미가 느끼는 초조함, 당차면서도 차가워 보이는 아카리의 불안감 같은 게 스친다. 317분이라는 상영시간에는 인물들의 현재가 과거가 되어가는 과정이 촘촘히 담겼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3•11 동일본 대지진의 참혹함을 다큐멘터리 <더 사운드 오브 웨이브스>(2012)로 만든 바 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외부의 강력한 충격이 <해피 아워>에서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지불식간의 동요로 치환된 셈이다. 지난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국제경쟁 특별언급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슈발리에> Chevalier

아티나 레이첼 탕가리 / 그리스 / 2015 / 99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아티나 레이첼 탕가리의 신작. 호화 요트를 타고 낚시여행을 떠난 6명의 친구는 돌아오는 길에 요트가 고장 나 낭패를 겪는다. 그러나 요트에 갇힌 남자들에겐 왠지 위기감이 없다. 6인의 사내는 시간도 때울 겸 승리의 반지를 상품으로 내걸고 게임을 시작한다. 재미로 시작한 경쟁에 승부욕이 불타고 모두가 승자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사이 게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데뷔 이래 아티나 레이첼 탕가리의 시선은 언제나 그리스의 현재를 꿰뚫어왔다. 단순한 구성과 명료한 인물 구도를 빌려 현대 그리스의 초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데 솜씨를 발휘해온 감독답게 <슈발리에>에서도 승자독식의 경쟁이 가져올 파국의 흔적을 냉혹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휴양지의 화사한 배경과 대조되는 건조한 연출이 섬뜩함을 더하는 현대 그리스에 대한 우화다.

<리브 어게인> When I Live My Life Over Again

로버트 에드워즈 / 미국 / 2015년 / 98분 / 야외상영

오갈 데 없어진 인디음악가 주드는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폴은 과거에 날렸던 가수다. 상성이 맞지 않는 부녀는 별것도 아닌 일로 툭하면 싸워대고 가족들은 그들을 말리거나 혹은 내버려두곤 한다. 최근 들어, 거칠고 어두운 과거를 지녔으나 나이듦에 따라 적당히 조용한 삶을 살게 된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크리스토퍼 워컨이 <리브 어게인>에선 (‘밝은’ 의미로) 여전히 비상을 꿈꾸는 한물간 스타를 연기한다. 부드럽고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크리스토퍼 워컨의 모습도 자못 생경하거니와 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티격태격하는 크리스토퍼 워컨과(주드를 연기한) 앰버 허드의 앙상블 또한 희귀한 볼거리다. 평범한 드라마 배우이기보다 할리우드 간판 영화의 섹시 스타로 더 잘 알려진 앰버 허드의 예술적 야심까지도 짐작해볼 만하다. 각 배우의 연기 변신, 결핍된 개인의 성장담에 주목해볼 수도 있지만 <리브 어게인>은 무엇보다 가족 드라마로서 가장 빛난다. 부녀는 숱한 싸움의 끝에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비빌 언덕임을, 떨어져 지내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더라도 어쨌든 한핏줄로 이어진 가족임을 과히 불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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