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을 통해 본 한국영화의 경향
2016-04-26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최악의 여자>
<커튼콜>

4년 전 필자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맡았던 건 평자로서의 개인적인 욕심이 컸다. 2000년대 말에 나름 오지랖을 넓힌다고 독립영화 위주로 평을 쓰고 극장에서 감독과의 행사 진행을 많이 했는데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느낌이 공허해서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의가 있었을 때 아예 본격적으로 한국의 젊은 영화를 발굴하는 일에 더 나서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본인 주제를 제쳐둔 과욕이었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는 한데, 영화제에서 직접 장편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까지 3년째 진행 중이지만 내외부에서 변화의 가시적인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고민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신청을 한 120편가량의 영화들을 보면서 자주 좌절했으며 가끔 안심했다. 늘 그렇듯이 출품신청작들 면면은 대학 실습 작품 수준의 의욕 과잉인 영화들로 대다수가 채워지고, 잠재력이 보이거나 야심이 두드러진 영화들로 선정작 목록을 정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특히 극영화들 다수가 완성도와 상관없이 적은 제작 규모로 주류 내러티브영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게 전주국제영화제의 올해 출품 경향인지 독립영화계 전반의 경향인지 속단할 수는 없으나 예전 같으면 충무로에서 소화 가능했을 컨셉의 영화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독립영화가 꼭 마이너리티의 감성과 스타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스타일의 자의식이 옅어진 건 위험한 징후라고 보며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일단 묻어두고 싶다.

완성도가 좋은 극영화들이 있다. 김종관의 <최악의 여자>, 류훈의 <커튼콜>이 대표적인데 이런 영화들이 전주에서 화제를 끌고 극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지난해 경쟁부문 화제작이었던 안국진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의 파장을 끌어낼 만한 준수한 영화들이다. 사회적 외톨이인 어느 공장 노동자의 일상을 다룬 최정민의 <프레스>는 가장 독립영화다운 연출 호흡과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며 인권위원회 마지막 프로젝트인(올해로 정부 지원예산이 끊어졌다고 한다) <시선 사이>도 감독들의 연출 역량이 준수해 꽤 여운이 있는 영화로 완성됐다. 지면 사정으로 다 소개할 수 없는 다른 한국영화들도 모범적인 스토리텔링 강박은 있지만 조금씩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을 품은 영화들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한국영화 두편도 빠트릴 수 없다.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를 장편으로 전환한 이래 세 번째로 시도하는 올해 프로젝트에는 김수현의 <우리 손자 베스트>, 조재민의 <눈발>이 한국영화로 들어 있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이 땅의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청년과 노인의 기묘한 우정을 그리며 따스한 인간 긍정과 블랙코미디의 유머를 조화시킨다. <눈발>은 폭력에 전염된 한 시골 마을에서 소외당한 소녀를 연민으로 대하다 우정을 느끼는 소년의 이야기로 브레송적 야심과 지향을 담은 영화이다.

끝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꽃은 다큐멘터리일 것으로 기대한다. 탈북자 여인의 기구한 삶을 담은 윤재호의 <마담 B>, 해녀들의 삶을 유려하게 담은 고희영의 <물숨>, 펑크 밴드 청년들의 좌충우돌 삶을 다룬 이동우의 <노후대책 없다> 등 경쟁부문 작품 외에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을 다룬 최승호의 <자백>, 해직 언론인들의 삶을 추적한 김진혁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이 시대 지식공동체의 역할을 도시 공간에서 묻는 유자경의 <코뮌 서울>, 베트남에 관한 포토 에세이인 정희도, 이세영의 <벌레의 눈물>,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이면을 담은 이재호의 <백스테이지>, 인디 뮤지션들의 네팔 여행기를 다룬 박정훈의 <비스타리, 히말라야> 등의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건져내지 못하는 이 세상의 면면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