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스테이> Short Stay
테드 펜트 / 미국 / 2016년 / 61분 / 국제경쟁
매사에 시큰둥한 마이크는 뉴저지에서 피자 배달로 생계를 꾸려간다. 친구를 대신해 필라델피아에서 도보 여행사 홍보를 맡지만 그의 삶은 그곳에서 더욱 비참해진다. 테드 펜트의 첫 장편영화 <쇼트 스테이>는 단편 작업을 함께해온 배우 마이크 마카로니를 내세워, 한 남자의 적적한 삶을 건조하게 그렸다. 뻣뻣한 걸음과 뚱한 표정의 주인공 마이크는 늘 무뚝뚝한 말투로 사람을 대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지만 대화와 관계는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중단되기 일쑤고, 마이크는 혼자 자기 방으로 돌아와 골똘히 생각에 잠길 따름이다. 건조한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번듯한 잠자리도 없는 그가 대도시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무시는 <쇼트 스테이>의 각박한 공기를 한껏 부풀린다.
<잠자는 소녀> Girl Asleep
로즈메리 마이어스 / 오스트레일리아 / 2015년 / 77분 / 시네마페스트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란 영영 온전하게는 열어볼 수 없는 신비로운 상자인지도 모른다. 새 학교에서 맞이하는 첫날, 그레타는 자신의 적과 친구를 발견한다. 집에서도 별반 다를 건 없다. 꽉 끼는 핫팬츠를 입고 다니는 아빠, 괴팍한 성격의 엄마, 툭하면 그레타를 민망하게 만드는 짓궂은 언니까지 그레타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음이 편치 않다. 소용돌이치는 고민은 그레타의 생일 파티에서 폭발하고 그레타는 꿈속으로 도망친다. 이제 막 성애에 눈을 뜬 소녀의 복잡한 심리는 알록달록한 의상, 과장된 캐릭터, 양식화된 미장센으로 은유된다. 그레타가 바라보는 세계는 조금 혼란스럽지만 고전적이고 어여쁘다. 정교하게 재단된 카메라워킹과 집요한 규칙을 따르는 소품의 배치는 그레타의 혼란의 이면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파티가 끝난 밤, 그레타의 뮤직박스는 다른 소녀의 손에 놓여 있다.
<주눈> Junun
폴 토머스 앤더슨 / 2015 / 54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방 안에 둘러앉은 이들은 차분히 무언가를 기다린다. 이윽고 역동적인 북소리와 함께 음악이 시작된다. 카메라는 둥글게 앉은 이들의 모습을 하나씩 잡아나간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소박하되 충실하다.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와 인도 뮤지션들의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녹음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주눈>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음악임을 잊지 않는다. <데어 윌 비 블러드> <더 마스터> <인히어런트 바이스>까지 명실공히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음악 담당인 조니 그린우드는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의 아티스트들과 교감하며 시와 음악이 뒤섞인 연주들을 쏟아낸다. 매 곡의 녹음 과정을 롱테이크로 담은 영화는 음악에 대한 존경과 경탄을 숨기지 않는다. 조화와 교감 속에 동서양,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감싸는 연주와 인도의 고요한 풍광을 담은 인서트컷이 특히 인상적이다. 영감으로 가득 찬 음악과 영상,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게 없다.
<드 팔마> De Palma
노아 바움백, 제이크 팰트로 / 미국 / 2015년 / 110분 / 시네마톨로지
<프란시스 하>(2012), <위아영>(2014)의 노아 바움백, <영 원스>(2014)의 제이크 팰트로 감독이 공동연출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 감독은 드 팔마의 영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흠모를 드러내기보다, 드 팔마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영화에 관해 회고하는 모습과 그때 언급되는 작품에 관한 클립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무성영화부터 히치콕, 누벨바그, 뉴 아메리칸 시네마 등 수많은 레퍼런스들이 장마처럼 쏟아지는 <드 팔마>는 시네필이라면 누구나 가슴 뛸 만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영화는 히치콕의 열렬한 추종자인 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답게 <현기증>(1958)과 그 영향이 물씬한 흔적들로 문을 연다. 출생과 유년 시절보다 앞서 히치콕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드 팔마>는, 초기 단편들부터 <캐리>(1976), <필사의 추적>(1981), <스카페이스>(1983), <칼리토>(1993) 등을 지나 최신작 <패션, 위험한 열정>(2012)까지 연대기 순으로 드 팔마의 필모그래피를 낱낱이 살피고, 때마다 히치콕의 명작들을 소환한다. 촬영현장의 에피소드, 신 안의 함의, 영화가 공개되던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 등 드 팔마의 육성을 코멘터리 삼아 지난 50여년의 영화사를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국에서 온 모리스> Morris from America
채드 하티건 / 독일, 미국 / 2016년 / 89분 / 야외상영
13살 소년 모리스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미국에서 독일로 건너가 산다. 뉴욕 양키스 로고가 새겨진 스냅백을 쓰고 힙합을 듣는 모리스는 독일 친구들을 사귀거나 독일의 문화에 서둘러 적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두살 연상인 독일 소녀 카트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시멜로를 넣은 핫초코를 먹지만 자칭 ‘갱스터 래퍼’인 모리스는 카트린에게 첫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남자친구가 있는 카트린은 모리스에게 호기심을 표한다. 미국 흑인이 대변하는 힙합, 유럽 백인이 대변하는 일렉트로닉 등 영화는 ‘미국에서 온 13살의 흑인 소년’ 모리스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문화적 차이를 부각시킨다. 거기서 발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전반에 사용되는 힙합 음악이 또한 소년의 성장담을 풍성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