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지수는 윤주의 미래이고 윤주는 지수의 과거다 - <연애담> 이현주 감독
2016-05-16
글 : 윤혜지
사진 : 최성열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연애 감정에 설레고 있는 윤주(이상희)는 살포시 볼을 붉히며 말한다. 하지만 부푼 마음은 오래지 않아 꺼지고 만다. 이현주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연구과정 8기 졸업작품이자 장편 데뷔작인 <연애담>은 지수(류선영)와 연애를 시작한 윤주가 낯선 상황과 감정에 조금씩 적응해간다는 이야기다. 단편영화 <Distance>(2010)와 <바캉스>(2014)에 이어 세 번째로 여성간의 사랑을 그렸다. <연애담>으로 이현주 감독은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공동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는데 대상까지 수상했다.

=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겨우 만들어 영화제에 초청되고, 관객을 만난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상까지 받게 돼 정말 모두에게 고맙고 기쁘다. “힘드니까 그만해도 된다”고 하시던 부모님도 이번 수상 소식을 듣고 “이제 네가 하는 걸 지지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여러 가지로 힘을 많이 얻었다.

-<Distance>와 <바캉스>, <연애담>이 전부 여성간의 사랑을 소재로 했다.

=<바캉스>는 단편이라 짧은 시간에 관객을 도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상황을 계속 엎어야 했는데 처음엔 백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고향에 내려오는 내용이었다. 쓰다보니 여성 퀴어가 됐고, 가족영화가 됐다. <연애담>을 하면서는 <바캉스> 속의 인물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어떨까 싶었다. 연애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저 안에 내 모습도 있다’고 공감해주신 분이 많아 기쁘다.

-자신이나 주변의 연애 경험도 많이 들어봤겠다.

=누굴 좋아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니까 들을 게 많았다. 나도 예전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배우와 스탭들에게도 여러 가지를 묻고 서로 연애담을 공유했다. 시나리오가 잘 안 풀릴 때면 다들 슬그머니 메일 하나씩 보내오더라. (웃음) 자기 애인이랑 어땠고, 어디를 갔고, 마음이 아팠고…. 그런 경험들이 반영됐다.

<연애담>

-<바캉스> 때 그렇게 다투었다면서 장편 데뷔작까지 이상희와 함께 찍었다.

=2년 전 상희씨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남매>로 독립스타상을 받고) <씨네21>과 했던 인터뷰(985호)에서, 우리가 <바캉스>를 작업하며 엄청 싸웠다고 써서 보는 사람마다 그랬냐고 물어보더라! (웃음) 싸우고 끝이었다면 또 같이 했을 리 있겠나. 나는 나대로 잘하고 싶고, 상희씨도 주관이 있으니까 촉박한 일정 안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선 싸워도 편집실에선 주거니 받거니 말이 잘 통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니 원신 원컷을 많이 써야 했는데 그걸 버텨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상희씨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염려한 건, 상희씨가 두편 연속으로 내 영화에서 레즈비언을 연기하니까 그게 배우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씌우게 될까봐 걱정이 됐다는 정도? 그래도 역시 잘한 선택 같다. 이번 현장에선 안 싸우려고 서로 조심했다. (웃음)

-여성간의 성애를 다뤘지만 정작 방점은 윤주가 앞으로 나아가는 지점들에 찍혀 있다.

=윤주는 이제 막 자기에 대해 ‘요만큼’ 알게 된 아이다. 사실 본인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모른다. 그냥 여자랑 섹스를 했는데 그 경험이 다른 때보다 좋았기에 지수에게 끌린 거겠지. 그렇게 윤주는 스스로를 조금씩 알아갈 거다.

-연애하는 두 사람의 감정적 온도차가 서글프더라.

=이성애자들의 연애는 지속될수록 미래에 대해 예측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부분이 있는데 (커밍아웃하지 않은) 동성애자들의 경우엔 주변에 해야 할 거짓말들이 늘어간다. 지수는 그런 모든 과정을 이미 겪은 사람이고 윤주는 모든 걸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다. 지수는 윤주의 미래이고 윤주는 지수의 과거다. 과거와 미래의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상황들이 벌어지는지 생각했다.

-지수와 지수 아버지의 불편해 보이는 관계도 재미있다. <바캉스>에 이어 김종수가 또 아버지 역을 맡았고, 여러 사람이 식사 자리에 모인다는 설정 때문에 <바캉스>의 이상한 가족이 연상되더라.

=어색한 사람들을 밥상 앞에 두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밖에 나가면 할 말 다 하는 솔직한 애가 집에 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얌전하게 구는데 많은 딸들이 실제로 집에서 그러지 않나.

-공감한다. (웃음) 또 눈에 띄는 건 윤주와 지수가 주변으로부터 느끼는 어려움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사회 안에서 무언가 결과를 내야만 하는 나이대의 여성이기에 그 어려움이 확장된다. 십년을 돌아 이제 막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감독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고등학생 때 학교가 멀었다. 자취를 했는데 집에 교육방송을 보기 위한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다. 외동이고,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해서 그 당시 뭔지도 몰랐던 유럽영화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독립도 하고 ‘저런 것’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공계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하자센터’를 들락거리며 영화 제작을 배웠다. 물론 처음 찍은 단편은 처참했다. (웃음) 건전지 사는 걸 잊어서 촬영을 못하게 되거나 같은 장소를 세번이나 다시 가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렇게까지 해서 찍었는데 본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를 못했다. (웃음) 한편 더 해야겠구나 싶어서 일단 손영성 감독님의 <약탈자들>(2008) 스크립터로 들어가 여러 영화의 현장 스탭으로 몇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원과 한국영화아카데미까지 간 거다.

-다음 영화에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데려올 건가.

=그럴 것 같다. 여전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마음이 가니까. 그렇지만 내 영화에 또 여자들이 나온다고 꼭 러브 스토리가 되진 않을 거다. 두 여자가 강도짓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우정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연령대든 성격이든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해간다는 내용을 써보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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