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분단에 대한 혼란, 고민, 질문을 영화에 담았다 - <마담 B> 윤재호 감독
2016-05-16
글 : 이주현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마담 B>는 탈북 여성 마담 B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마담 B는 1년만 돈 벌고 돌아갈 생각으로 중국으로 향하지만 중국 시골의 가난한 남자에게 팔려가 그곳에서 중국 남자와 정 붙이며 살아간다. 그러다 북에 두고 온 두 아들의 탈북과 남한 정착을 돕고자 중국 남편의 동의하에 한국으로 향한다. 윤재호 감독은 충실한 기록자로서 마담 B의 삶에 밀착한다. 동시에 의식 있는 작가로서 분단의 현실을 비춘다. 줄곧 프랑스에서 영화 작업을 해온 감독은 단편 <약속>(2010), 다큐멘터리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단편부문에 초청된 <히치하이커>(2016) 등을 통해 꾸준히 분단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마담 B>의 윤재호 감독을 만났다.

-탈북 여성 관련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려고 중국에 갔다가 탈북자이자 브로커인 마담 B를 만났다. 결국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는데, 마담 B의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나.

=두 남편의 아내이자 두 가족을 둔 여성이라는, 그녀의 사회적 위치가 흥미로웠다. 마담 B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북한과 중국에 두 가족을 둔 상태였다. 그녀의 삶에서, 분단이 분단을 낳고 이별이 또 다른 이별을 낳는 아이러니를 보았다. 마치 남과 북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담 B는 남한에 정착한 두 아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 가족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건너간다. 라오스와 타이 방콕을 거쳐 남한으로 향하는 탈북 여정에 카메라를 들고 동행했다.

=2013년 5월쯤, 마담 B에게서 남한으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가 출발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했는데 얼렁뚱땅 그녀가 탄 차에 나도 타버렸다. 그길로 방콕까지 가게 됐다. (웃음) 마담 B의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생은 말도 못하게 많이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심지어 카메라에 컴퓨터까지 짐도 많았다. 타이, 라오스, 미얀마 국경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를 통과할 때는 밤중에 18시간 동안 산을 타기도 했다. 촬영 10분 만에 녹초가 됐고, 다큐멘터리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미친 듯이 걷기만 했다. 그렇게 타이에 도착했는데 불법 밀입국자 신세가 됐다. 탈북자들은 타이에 도착하면 타이 경찰의 보호를 받게 되는데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불법밀입국자로 처벌받고 추방당했다. 정말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마담 B>

-한국에 온 마담 B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영화는 서울 도심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어린아이의 반공 웅변을 들려준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담 B가 한국에 왔을 때, 마침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다. 혐의가 없어서 결국 풀려났지만 마담 B도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자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 간첩 신고와 반공 포스터가 아무렇지 않게 붙어 있지 않나. 우리에겐 대충 보고 넘길 수 있는 무엇이지만 ‘마담 B들’에겐 대충 넘어갈 무엇이 아닌 거다. 같은 장소에 살고 있지만 그들(탈북자)의 삶과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다르다. 그런 아이러니에서 오는 씁쓸함이 컸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무언가 계속 씁쓸함이 남았다.

-중국에선 그렇게 당당하던 마담 B가 한국에 온 이후 어딘지 약해 보이고 쓸쓸해 보였다.

=방콕에서 헤어지고 8개월 뒤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는데 예전의 에너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북한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그녀가 한국에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어디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펐다. 중국에 있을 때가 더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삶은 원해서 일군 삶이 아니지 않나. 다행히도 지금은 많이 강해졌다. 잡초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 어디에 있든 어떻게든 적응하는 분이라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 남편이 옆에 있는데 중국 남편과 화상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에서도 마담 B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더라.

=그 장면 찍을 때 나도 좀 당황했다. 중국 남편과 통화한다기에 다른 방에 가서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통화하더라. (웃음) 굉장히 깨어 있는, 앞서가는 여성인 것 같다. 탈북자라는 정체성, 정치적 이슈를 걷어내고 보면 결국 이 영화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렇게 제 삶을 만들어가는 마담 B의 모습에서 특별함을 느꼈다.

-프랑스 낭시 보자르, 파리 아르데코, 르프레누아에서 미술, 사진, 영화를 공부했고, 프랑스에서 쭉 영화를 만들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대학을 잠시 다니다가 200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사진도 찍고 실험영화도 만들었다. 여러 가지 매체로 작업을 해봤지만 결국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영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13년 정도 프랑스에서 영화 만들며 생활하다가 2014년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왔다. 2년 전만 해도 한국말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영화 피칭 행사장에서 어떤 분이 조선족이냐고 묻기도 했다. (웃음)

-올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단편부문에 초청된 극영화 <히치하이커> 역시 탈북자 이야기다. 계속해서 탈북자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하다.

=탈북자보다는 분단에 관심이 많다. 분단이란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10년 무렵 <약속>이란 단편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다. <약속>은 파리의 민박집에서 일하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가 9년간 보지 못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인데, 그 영화를 찍으면서 조선족의 뿌리가 궁금해져 역사를 공부했다. 분단 이전의 역사 그리고 분단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사하면서 궁금한 게 많이 생겼다. 분단이라는 결과론적 현상에 의해서 우리 세대-분단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겪는 혼란도 있잖나. 그런 고민과 질문을 영화를 통해 하고 있다. <마담 B>도, <히치하이커>도 그런 질문 중 하나인 거고. 당분간은 그런 질문을 영화로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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