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유일한 여성 프로듀서이자 프로젝트의 가장 최초의 지점에 서 있던 사람이 용필름의 이유정 프로듀서다. 세라 워터스가 쓴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판권 구매를 주도한 사람이 그다. 2012년 8월, 용필름 설립 이전 임승용 대표는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으로 있었고 이 프로듀서는 임 대표 밑에서 일하던 해외사업팀 직원이었다. 당시 마켓을 다니며 외화 수입 일을 하던 이 프로듀서는 2010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포인트 블랭크>(2010)를 보고 임 대표에게 추천했고 임 대표는 이 프로듀서에게 그냥 수입이 아닌 한국어 리메이크 영화로 판권을 사게 했다. “그런 방식의 구매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판권 구입을 추진했다. <핑거스미스>의 판권 구매도, 그때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맡기신 게 아닐까 혼자 짐작하고 있다. (웃음) 2010년 말부터 <핑거스미스> 구입 얘기가 나왔고 계약하기까진 일년쯤 걸렸다. 책도 읽고 <BBC>에서 만든 드라마도 물론 봤다. 원작자를 만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이 작품의 팬인지, 개인적인 사심을 드러내가면서 협상을 시도하는 게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다.”
보통 리메이크 판권을 살 땐 ‘어느 나라’가 아닌, ‘어떤 언어’로 작품을 만들 것인지 명시한다. 그런데 <아가씨>는 언어에 대한 제약 없이 무조건 영화 한편을 제작하는 걸로 계약했다. 어쩌면 그것이 <아가씨>를 위한 신의 한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제약이 없다보니 더 자유롭게 구상을 할 수 있었다. 일본 배경으로 해볼까, 중국은 가능할까. 박찬욱 감독님이 할리우드도 다녀오셨으니 영어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거다. 당시 감독님이 <스토커>(2013)를 준비하실 때라 영화화까지 오래 걸릴 것 같아 판권 확보 기간도 최대한 길게 잡았다.” 임 대표의 신뢰할 만한 이력과 박찬욱 감독이라는 이름, 그리고 이 프로듀서의 적극적인 협상으로 <핑거스미스>의 영화화 판권은 이 프로듀서의 손에 안착할 수 있었다.
판권 구입을 완료한 뒤의 일들은 현장을 맡은 프로듀서들의 몫이었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엔 매번 참여했지만 프로덕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이 프로듀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용필름의 프로젝트로 돌아갔다. 그래서 이 프로듀서의 <아가씨>에 대한 회고도 “정확한 역할 분담으로 모호하게 겹치는 일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용필름 제작 작품에 집중하던 이 프로듀서는 <아가씨>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자 다시 <아가씨>를 맡게 됐다. “현장 일은 윤석찬 PD님과 김종대 PD님이 하셨고, 해외쪽 일은 나와 정원조 PD님이 분담했다. 정 PD님이 감독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던 분이라 감독님 선의 결재와 해외 세일즈 피칭 등을 주로 하셨고, 나는 비즈니스를 할 때 좀더 나서는 편이었다.”
현재 그는 용필름 기획실의 팀장으로 돌아가 다종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살피느라 “별별 공부”를 다 하고 있다. “심지어 요샌 푸에르토리코 세법까지 들여다보고 있다니까. (웃음)” 이제 차례로 그의 손에서 나올 튼튼한 영화들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윤석찬이 꼽는 이유정의 인상적인 순간
“원작 판권 해결! ‘야전’ 출신자로서는 먼 동네 얘기인 것만 같았다. 2년여 시간을 투자해 <핑거스미스> 원작 판권을 따낸 이유정 프로듀서의 무용담은 <아가씨>의 지금을 만든 가장 가치 있는 업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가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만 4개다. 또 용필름 기획실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전방위적 능력 덕에 지난 칸에서도 <아가씨> 팀은 어떤 불편함도 없이 좋은 경험만 할 수 있었다.” 7월부터 윤석찬 프로듀서는 “용필름의 남는 책상 네개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됐다. “굳이 옆자리에 앉아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겠다”며 이 프로듀서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진짜에게 마음을 빼앗겨 가시까지 싹 다 발라 먹을 예정”이란 무시무시한 각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