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함께 호흡하며 완성하는 즐거움 - <봉이 김선달> 고창석
2016-06-28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선수가 떴다. 도청 기술자 백문(<찌라시: 위험한 소문>(2013)), 금고 털이에 최적화된 호기로운 바람잡이 구인(<기술자들>(2014))에 이어 고창석, 이번에는 조선 최고 사기패에 투입됐다. <봉이 김선달>에서 그는 위장의 달인인 보원 역으로 스님이 됐다가 사냥꾼이 됐다가 또 다른 누군가가 되길 반복한다. “계속 변장을 하며 촬영하니 여러 편의 영화를 찍고 있는 듯했다. 사기칠 때마다 의상과 분장은 물론이고 말투와 목소리 톤도 달라졌다. 그만큼 나 나름의 준비도 많았다. 보원처럼 변화무쌍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제대로만 해낸다면 관객이 충분히 인정해주실 거라 생각했다. 또 배우가 돼 좋은 게 뭐겠나.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역할들을 해본 다는 즐거움이 아니겠나.” 고창석은 영화에서만큼은 아직까지, 리얼리티가 강한 서사보다 재미난 상상력으로 무장한 세계에서 신명나게 노는 쪽에 끌린다.

최근 고창석은 거대한 사기극을 성공시키려는 패거리에서 주인공의 짝패나 감초 같은 비슷한 포지션을 담당해왔다. “형식적으로는 유사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인물에만 집중해가는 영화가 아닌 이상 거대한 적 앞에 여러 인물이 함께 맞서는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중요한 건 주인공의 감성이다. 내가 호흡 맞출 주인공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내 연기도 확 달라진다.” 그가 영화를 선택할 때마다 시나리오 읽는 재미뿐 아니라 함께 연기할 동료 배우들이 누구냐를 살피는 이유기도 하다. “배우의 집중력이 혼자 연기할 때 더 잘 발휘되는 건 아니다. 특히 수많은 스탭들과 함께하는 영화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럿이 합을 맞추다 혼자 있게 되면 허전할 때가 있다.”

김선달 역의 유승호와의 재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7년 전, 박지원 감독의 <부산>(2009)에서 부자지간이 될 수밖에 없던 사연 많은 사이로 만난 적이 있다.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그땐 승호가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이번에는 영화에서 ‘형님’이라고 해야 해서 둘 다 그게 어색하더라. 그럴 때면 분위기 메이커인 (라)미란이와 넉살 좋은 (시)우민이 큰 역할을 해줬다.” <헬로우 고스트>(2010), <스파이>(2013) 이후 영화에서 제대로 호흡을 맞추게 된 윤보살 역의 라미란에게는 애틋함이 있다. “연출팀이 윤 보살 역에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배우를 모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미란이가 걸어오는 거다. 난 미란이가 다른 역할을 맡은 줄 알았지. (일동 웃음) 극에서 아옹다옹하는데 평소 우리가 그렇다. 그만큼 편하다. 배우로서 걸어온 길이 비슷한 것 같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것 같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후배 유승호, 시우민과 호흡을 맞출 때의 고창석은 어떤 선배일까. “조언 같은 거 안 한다. 선배의 어설픈 조언이 후배의 연기를 망친다고 생각하니까. 나보다는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면 된다. 연기자는 말보다는 서로의 호흡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되는 거다.” 오히려 고창석이 후배들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요즘 집안에서, 동네(성미산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내가 신이다, 신! 승호랑 우민이가 사인도 여러 장 해주고 심지어 엑소 콘서트에 딸아이를 초대해줬다. 앞으로 몇달간은 편히 살 수 있게 됐다. (웃음)”

<마지막 늑대>(2004)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뒤 영화를 하고 싶어 처음으로 오디션을 봐 합격한 작품이 <친절한 금자씨>(2005)다. 물론 1989년 첫 연극 무대에 오른 것까지 거슬러가자면 그의 연기 공력은 만만치 않다. 부침 속에서도 고창석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오직 근성 때문이다. “일본 소설 <대망>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생은 등짐을 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노인과 같다’고 말한다. 버티다보면 조금 나아지고 또 버티다보면 나아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요즘 송민호의 노래 <겁>에 꽂힌 것도 그래서다. “‘억지로 눈을 부릅뜬 건… 겁이 나서 그래’라는 가사가 들어왔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겁이 난다. 그래도, 세월 덕에 견디는 힘은 생겼다. 그게 인생 아니겠나.”

스타일리스트 김혜미·헤어 이다(Wythe138)· 메이크업 김유경(Wythe138)· 의상협찬 아르코발레노, 모리, 스페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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