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더도 덜도 없이 디테일을 살리는 꾸준함 - <봉이 김선달> 라미란
2016-06-28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치타 아줌마야 워낙 알려졌고 얼마 전엔 할아버지들이 ‘군대 갔다온 아줌마 아니야’ 하고 알아봐주시더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부터 예능 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로 어딜 가나 유명세다. “감독님들에게 ‘왜 저는 안 부르세요’가 레퍼토리였는데, 요즘은 ‘스케줄 한번 볼게요’ 하고 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웃음)” ‘몸이 한 7개쯤 되는 것 같다’는 라미란 전성시대. 좋은 마음 한편으로는 도전해야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이제 다른 역할들이 막 들어와서 겁이 난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고 집에 들어가면 걱정에 한없이 쪼그라든다. (웃음)”

이상 엄살을 한번 들어봤다. 라미란은 막상 카메라 앞에서는 모든 걸 꺼내놓는 타입의, 타고난 연기자다. 거리낌 없는 코믹한 몸짓도, ‘대한민국 아줌마 역할은 다 할 거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식해온 중년 여성의 연기도, 눈물까지 쏙 뽑아내는 페이소스 가득한 드라마도 모두 ‘라미란 방식’. 코믹과 드라마가 구분 지을 겨를 없이 꼬리를 물고 온다. 계통 없는 라미란표 연기가 빛을 발한 건 물론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엄마’를 통해서였다. “감독님한테, 난 이제 다 털렸다, 다음 작품에서 다른 역할로 AS해달라고 했다. (웃음)” 대동강 물로 사기를 치려는 <봉이 김선달>의 사기패 윤 보살 역할도 겉으로 보이는 강하고 코믹한 역할에서 비껴간다. 귀신 같은 눈치로 양반집 눈먼 돈 쓸어가는 웃음 연기도 소화하지만, 위장 전문의 보원(고창석)과 연애 감정을 쌓으며, 김선달 사기패의 드라마에 일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웃기려는 의도의 역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캐릭터와 달라서 촬영할 때 연신 나 어떡해, 하면서 했다. 내 연기중 가장 정직한 연기였다고 할까.”

박대민 감독은 이런 라미란에 대해 “늘 의외의 효과가 도출되는 배우다” 라며 현장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배우의 장점을 말한다. 지극히 예상 가능한 수준의 캐릭터에서 라미란은 의외의 지점을 발전시키는 배우다. 공짜 쿠폰 모아 선심 쓰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지질한 동료는, 12시즌에 이른 시리즈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된다. 스스로 웃는 대신 남이 보기에 ‘웃긴’ 모습이 캐릭터를 진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라테일’이라고 하더라. 중국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무심결에 카운터에 놓인 사탕을 가방에 한 움큼 집어넣었는데, 궁상맞은 캐릭터가 설명이 됐나보다. 이런 것까지 봐주시는구나 싶었다.”

라미란은 그 ‘담기지 않을지도 모르는’ 디테일들이 오랜 생활 연극으로 구축된 훈련의 결과라고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앵글 안에서의 연기만 하지만 무대에서는 구석에 있어도 연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 습관이 배어서 자꾸 연기를 하게 된다. 리액션이 좋으면 연출자가 그걸 쓰기도 해 캐릭터가 좀더 다채롭게 보여진 것 같다. 효과가 있었다니 역시 쉬지 않고 계속해야겠어. (웃음)” 그건 한 신에 나오든 열 신에 나오든 라미란이 연기를 대하는 집중도의 다른 말이다. “덜하지도 않지만 재밌게 하려고 더하지도 않는다. 그냥 똑같이 임할 뿐이다. ‘무명생활 끝에 뜬 게 아니라’ 그냥 쭉 연기가 재밌어서 지금까지 해온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2005) 때 이금자(이영애)의 복수를 돕는 교도소 여자로 라미란을 캐스팅한 후 ‘무시무시한 배우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던 평가는 결국 이렇게 적중했다. 출산 후 집에 있던 그때, 라미란은 그렇게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라미란은 박찬욱 감독을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나를 영화계에서 일할 수 있게, 나를 꺼내준 분”이라고 칭한다. “<친절한 금자씨> 때 보여준 시크한 이미지를 고수했으면 스릴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연, 특히 여자 조연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 했고, 짧으니 임팩트 있게 가야 했으며, 그러다보니 코미디가 많았다. 영화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려온 선택의 시간 이후, 라미란은 또 다른 결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8월에는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에서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손예진)를 지키는 전속궁녀 복순으로, 또 촬영을 앞둔 <특별시민>에서는 서울시장 3선 후보(최민식)와 경합하는 양진주 역할이다. <막돼먹은 영애씨> 에서처럼 부디 라미란의 다채로운 ‘연기 쿠폰북’ 많이 뿌려주길!

스타일리스트 장준희·헤어 곽동우(순수 이야기점)·메이크업 이명선(순수 이야기점)·의상협찬 스왈로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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