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새의 선물>의 작가 은희경이 8년 전부터 올봄까지 쓴 소설 여섯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여섯편의 소설은 술,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 같은 친근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사물들은 그 정수를 간파당하고 통상적인 용도 너머의 쓰임을 통해 인물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표제작 <중국식 룰렛>에서 청년 K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술과 세월을 입어 값비싼 술을 한데 내놓아 손님들이 선택하게끔 한다. 잔의 가격은 모두 같고 술의 종류는 끝까지 비밀에 부쳐진다. ‘술’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운과 불행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는 수단이 된다. <대용품>의 소년은 불의의 사고로 분신 같던 친구를 잃는다. 소년은 나눠 신던 ‘신발’을 통해 자신은 빛나던 친구의 대용품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불연속선>에서는 “삶을 어딘가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집결하는” 공항에서 사진작가 남자의 가방이 낯선 여자의 것과 바뀌는 사고가 벌어진다. 둘은 서로의 ‘가방’들이 “가리키는 쪽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림으로써 서로의 생에서 귀중한 순간을 맞는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선 그리 두드러지지 않을 법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소설이 묘사하는 그들의 정제된 삶의 방식과 철학은 곱씹을 만하다. <별의 동굴>에서 혼자의 삶에 익숙한 남자는 “자기비하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마이너리티를 도덕적 무기로 내세우는 옹졸함도 부리지 않”으며 “남의 입장을 쉽게 이해”한다. 나이와 성격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현실을 수긍하고 자신의 입장과 한계를 정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삶의 동선을 만들고 아는 방식대로 스스로 정한 만큼만 즐”기며 사는 <장미의 왕자> 속 남자도 비슷한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작가는 소설집 끄트머리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어둡고 답답한 실내의 구석에 희미하나마 작고 하얀 빛의 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우리 모두 뒷걸음질 치다가 거기에 빠지기를. 온몸을 감싸 안는 다정한 부력이 기다리고 있기를.” <중국식 룰렛>에는 희미하기에 더 귀기울이게 되는 희망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사물들이 품은 사연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센트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 아닐까요. 그 2퍼센트의 증발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군요.(<중국식 룰렛> 44쪽)
나쁜 뉴스를 보고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남의 행운 역시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역시도 그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큰 행운이 없었으니 0.01퍼센트의 불행 또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 이처럼 비겁한 자기위안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박탈감에 굴복해왔던 것일까. 식은 밥 같은 중간지대의 안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고독뿐이었다.(<별의 동굴>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