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어떻게 찍었나 - 백선희 프로듀서, 최상호 촬영감독, 임재영 조명감독과 판각 자문을 담당한 목우 조정훈 각수가 말하다
2016-09-05
글 : 송경원
글 : 윤혜지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전국 팔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에만 9개월을 쏟아부었다. 고산자 김정호의 고된 여정에 동행한 백선희 프로듀서, 최상호 촬영감독, 임재영 조명감독과 판각 자문을 담당한 목우 조정훈 각수(刻手)에게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대장정에 관해 물었다.

대동여지도를 스크린에 옮긴다고 하면 으레 기대하게 되는 게 있다. 백선희 프로듀서는 “5시간 이동해서 10분 촬영하고 6시간 이동해서 30분 촬영하는 식”이었지만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린 걸 제외하곤 도리어 그렇게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한다. 차로 달린 거리만 10만km가 넘는 로케이션은 고된 행군이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워낙에 콘티를 꼼꼼히 짜서 쓸데없는 화면을 찍지 않았다.” 전국을 답사하며 발로 지도를 그렸다는 김정호의 행보를 따라가다 결국 도착한 백두산. 최상호 촬영감독은 “백두산 촬영을 두번 갔다. 긴장을 많이 해서 첫 촬영을 망쳤는데 감독님이 흔쾌히 이번엔 배우들도 함께 다시 가자고 하셨다”. 허락한 이에게만 비경을 보여준다는 백두산 천지 촬영날,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아서 CG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을 담을 수 있었다.

박일현 미술감독의 추천으로 양주 가래비 빙벽에 설치한 목판 작업장과 김정호 집이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가장 주요한 세트였다. 미술팀, 소품팀은 조정훈 각수의 작업장에 5t 트럭을 끌고 가 소품으로 쓸 판각 작품들과 도구, 장비들을 대량으로 빌려와서 각수들이 실제로 사용해도 손색없을 만한 세트를 완성시켰다. 그늘진 빙벽 아래에 자리한 김정호 집을 촬영하는 동안 최상호 촬영감독은 “집과 김정호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이길 원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김정호의 감정을 따라 집도 황량하고 시적인 느낌으로 촬영하려 애썼다”는 후문을 전했다. 무채색 무명 옷감으로 만들어진 의상들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지도꾼 김정호의 캐릭터에도 마침맞았다.

“김정호 선생이 도와주시나보다.” 백선희 프로듀서가 촬영현장마다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추가, 보충 촬영을 포함해 60회차에 알뜰하게 촬영을 마친 비결은 상황에 맞춘 듯한 날씨 덕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본 촬영 때 날씨가 좋지 않으면 허사인데 한번도 날씨 때문에 헛걸음을 한 적이 없었다는 후문. 한겨울 얼어붙은 북한강을 찍을 땐 마침 필요한 만큼 얼음이 두껍게 얼어주어서 강설기를 동원한 것 이외에는 딱히 다른 효과를 더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임재영 조명감독은 “상황에 따라 김정호의 얼굴을 다르게 보여주려 명암대비를 뚜렷하게 했다”며 풍광과 한몸이 된 김정호를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을 전했다. 울진 왕피천, 합천 황매산, 마라도, 북한강 등 전국을 돌아다니는 김정호의 얼굴엔 지역의 풍광뿐 아니라 계절까지 녹아 있다.

사실적인 판각 장면은 실제로 1994년, 소실되었던 대동여지도 목각판 58판, 136면을 4년간 복원해낸 판각 전문가 목우 조정훈 각수의 자문 덕에 성공적으로 재현됐다. 조정훈 각수는 “촬영용 목판 5장을 별도로 제작했다. 영화에 쓰인 목판은 북한 지형 부분인데 판각이 워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최대한 덜 복잡한 지형을 골랐다”고 한다. 제작하는 데에 단순한 지형은 일주일, 서울 시내처럼 복잡한 지형은 20일가량이 소요됐다고. 목판 모형의 제작 단계에 따라 촬영팀은 시시때때로 조정훈 각수의 작업장을 찾아 목판을 촬영해오기도 했다.

배우들이 조정훈 각수의 작업장을 직접 찾아 판각을 배웠다. “차승원은 두번, 김인권은 대여섯번을 찾아왔다. 둘 다 손재주가 남달라서 금세 배우더라. (웃음) 산맥같이 쉬운 지형은 직접 파보기도 했다. 도구 쓰는 모양과 자세, 판각을 위해 망치 두들기는 법 등을 따로 가르쳤고 목판 작업장 세트에서 촬영을 할 때는 나도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자세를 교정해줬다.”

본 촬영은 지난해 12월에 끝났지만 사계절을 담으려면 촬영은 계속돼야 했다. 그중 봄의 풍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낙점된 곳이 철쭉 만발한 경남 합천의 황매산이다. 백선희 프로듀서는 “철쭉이 예쁘게 피었는지 확인하려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산에 오르길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작가나 관광객이 워낙 많이 찾은 곳이기에 사람이 없는 틈을 노리는 게 관건이었다. 새벽녘 해 뜨자마자 30분 만에 후다닥 찍고 내려왔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전국의 아름다운 곳을 찍어나갈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 누군가 이미 밟았을 법한 곳은 최대한 피해볼 생각이었다. 스탭들 모두 아무도 가지 않았을 법한 거칠고 험한 현장이라면 무조건 달려갈 의지가 탱천이었다. 울진 왕피천도 그중 하나다. 산세가 워낙 험한 곳이라 차가 진입할 수조차 없는 상황. 백선희 프로듀서는 “물살이 거칠어 차승원 배우가 몸에 와이어를 메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고 전한다.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 3~4시부터 바닷가에서 세팅을 시작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아름다운 화면을 확인하는 순간이면 다들 안도하며 감사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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