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밀정>은 어떻게 찍었나 - 최정화 프로듀서, 김지용 촬영감독, 조화성 미술감독이 말하다
2016-09-05
글 : 장영엽 (편집장)
글 : 김성훈

해외 로케이션 촬영, 시대극, 밤과 새벽 장면 등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있어도 제작 난이도가 높다. <밀정>은 세 가지 요소 모두 돌파해야 했던 프로젝트다. 최정화 PD, 김지용 촬영감독, 조화성 미술감독으로부터 제작 뒷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경찰이 김장옥(박희순)을 잡기 위해 쫓는 오프닝 시퀀스는 촬영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밤 촬영이고, 카메라가 커버해야 하는 앵글의 범위가 넓은 데다가 김장옥과 수십명의 일본 경찰들이 한옥 지붕 위를 넘어다니는 액션 신이기 때문이다. 촬영은 한옥이 있는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에서 진행됐다. 물론 처음부터 이곳을 생각한 건 아니라고 한다. “인물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설정을 찍을 수 있는 세트가 거의 없다. 문경은 생각지 않고 있다가 한옥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곳으로 가게 됐다”는 게 김지용 촬영감독의 얘기다. 그는 크레인을 이용해 네모난 큐브 조명인 소프트 박스 두세대를 하늘 높이 띄웠다. 그 조명에서 나온 빛이 방향성이 없는 탓에 빛에 방향성을 넣어 칼같이 날카롭게 떨어지게 했다. 덕분에 음산한 심야 추격 신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골목 구석으로 걸어가는 두 남자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다. 그림자로 표현된 두 남자 중에서 누가 의열단원이고, 또 누가 밀정인지 알 길이 없다. <밀정>은 이같은 콘트라스트가 강한 이미지가 많다. 물론 촬영 전에는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면서 레퍼런스가 될 만한 이미지를 찾았지만 모두 <밀정>과 톤이 다른 작품이었다. 특별한 레퍼런스가 없어 찍으면서 영화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분명해진 건 의열단과 밀정은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그림자로 표현하기 적합한 소재라는 사실이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의열단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고, 밀정은 의열단과 일본 경찰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천장에서 빛을 직각으로 인물의 얼굴에 떨어뜨리는 탑조명과 인물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이라이트를 주로 사용한 것도 경계에 선 인물들을 담아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정출(송강호)의 변화무쌍한 얼굴은 <밀정>의 서사이자 미장센이다. 김지용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이정출의 얼굴에 오래 머무는 것도 그래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스파이영화나 스필버그의 <뮌헨>에서 영감을 받아 줌렌즈를 사용해 인물의 얼굴에 확 들어가기도 했다. 앙제뉴 옵티모 줌렌즈 15~40mm, 45~120mm, 28~340mm가 투입됐다(마스터프라임렌즈 16, 25, 32, 40, 65, 85, 135mm와 주로 사용됐다. 카메라는 알렉사). 송강호와 작업한 게 이번이 처음인 김지용 촬영감독은 “이정출의 감정과 <밀정>의 정서는 송강호 선배의 얼굴에서 다 나왔다”고 전했다. 촬영 전만 해도 “송강호의 얼굴에 조명을 비추면 그림자가 확 살아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만족도는 더욱 크다. “이정출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감정에 따라 조명의 위치가 제각각이다. 수심이 깊어 보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확연히 구분될 수 있도록 조명을 세팅했다”는 게 김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아니, 조명 자체가 필요 없었다. 워낙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셔서. (웃음)”

이정출과 김우진(공유)이 상하이에 가기 전과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경성 거리다. 상하이, 기차와 함께 영화의 주요 공간 중 하나이다. <밀정>은 시대극인 까닭에 (오픈) 세트 분량이 거의 95%에 이른다. 이중 상하이 세트와 한국(문경, 합천) 세트가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한옥이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문경에서, 1920, 30년대 풍경은 합천 세트장에서 소화했다. 합천 세트장의 규모가 큰 편이 아니어서 규모가 큰 신을 찍기엔 무리가 있었다. 최정화 프로듀서는 “미술팀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를 경성으로 탈바꿈시켜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조선총독부에 얽힌 비밀도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면 된다지만, 조선총독부 앞 길바닥을 어디서 찍을지는 촬영 중반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최정화 프로듀서는 “흙바닥에서 찍어서 건물을 합성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조선총독부에 어울리는 길바닥이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그때 문득 떠오른 곳이 올림픽공원에 있는 평화의 광장이었다. “그곳 바닥이 대리석이었던 같아 촬영하다가 그곳에 가서 확인해보니 정말 대리석이더라. 이곳이다 싶었다”는 게 최정화 프로듀서의 얘기.

영어와 한자 그리고 일본어가 혼재된 간판의 술집 맞은편 건물 2층에서 이정출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김우진을 내려다본다. 그때 무언가를 보고 일본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밀정>에서 상하이는 이정출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공간이자 의열단의 본거지다. 그것이 <밀정>이 상하이로 건너가 촬영을 해야 했던 이유다. 최정화 프로듀서는 “상하이 세트장은 <밀정>뿐만 아니라 많은 중국영화를 촬영하는 곳”이라며 “촬영 전 미술팀이 이곳을 <밀정>의 톤 앤드 매너에 맞게 드레싱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미술팀과 많은 상의를 해 상하이 이미지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이정출이 있는 여관 앞에 있는 술집 간판을 잘 만들어줘서 옐로 톤이 부각될 수 있었다. 세트가 워낙 훌륭해 비가 오기라도 하면 젖은 바닥에 반사된 빛이 질감을 살려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조화성 미술감독은 비슷한 시기에 조선의 근대화 시기를 다룬 두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밀정>과 <덕혜옹주>다. 같은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느라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그는 영화의 색감이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라고 말했다. <덕혜옹주>가 슬픔이 배어 있지만 조금은 온기가 도는 색감을 기조로 삼았다면, <밀정>은 당시의 뜨거운 역사와 대비되는 차가운 색감을 지향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미술팀은 1920년대 건물의 주요한 소재가 브라운색의 목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차가운 느낌의 블루와 블랙으로 색깔을 칠해 톤을 낮추는 작업을 했다. “어떤 색깔을 기본으로 하든 최대한 블랙에 가까워 보이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반면 의열단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머무는 공간은 다소 톤업된 색감으로 표현해 대비를 주려 했다.

경성으로 달리는, 폭탄을 실은 기차. <밀정>의 기차는 등장인물 각자의 진심과 거짓말이 충돌하는 영화 속 핵심 공간 중 하나다. 김지운 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작업했던 조화성 미술감독은 “당시의 기차 속 공간을 좀더 거칠게 만든 측면이 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발붙이기 힘들 정도의 화려함을 주고 그 속에서 인물들의 혼란스러움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차 세트를 작업했다. <밀정>의 미술팀이 특히 주목했던 건 ‘반사’ 효과였다. 의열단의 여성 독립투사 연계순(한지민)이 타고 있던 일등칸은 짐칸을 마치 자개장처럼 제작해 인물의 표정이 투영되도록 했고, 천장에 설치된 샹들리에도 흔들리는 과정에서 반사가 많이 되도록 신경 썼다고 한다. “감정을 숨기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이 반사되는 것이 극의 서스펜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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