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포인트1. #OscarsNotSoWhite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이하 AMPAS)는 매년 시상식 이전에 후보자들이 한데 모이는 런천 파티를 연다. 지난해 런천 파티의 기념사진은 (부정적인 의미로) 압권이었다. 지나치게 하얬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감독상과 작품상, 그리고 남우·여우 주·조연상 부문에 유색인종 후보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오점이었다. <크리드>의 마이클 B. 조던이나 <헤이트풀 8>의 새뮤얼 L. 잭슨 등 양질의 선택지가 있었기에 실망감은 더했다. 영예로운 런천 파티의 기념사진 밑에 대중은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를 붙이기 시작했고, 영미권 언론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보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분위기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위기의 AMPAS는 즉각적으로 변화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셰릴 분 아이작스 회장은 “2020년까지 AMPAS 회원을 선정하는 데 있어 여성과 소수인종의 비율을 두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AMPAS의 신규 회원으로 위촉된 686명은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 영화인(한국의 이창동,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한국계 미국 감독 김소영 포함) 등 다양성을 고려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노력의 산물일까. 1년 만에 아카데미는 해시태그를 바꿔 달게 됐다. #OscarsNotSoWhite가 그것이다. 특히 흑인 영화인들의 선전이 놀랍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펜스>의 덴젤 워싱턴과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목된 <러빙>의 루스 네가를 필두로 남우조연상 부문의 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 여우조연상 부문의 비올라 데이비스(<펜스>)와 나오미 해리스(<문라이트>),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스>) 등 여섯명의 흑인 배우들이 주·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2017년은 89년의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 흑인 배우가 최다 지명된 한해로 기억될 듯하다. 감독상 후보에 오른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과 촬영상 부문의 흔치 않은 흑인 후보인 브래드퍼드 영(<컨택트>)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하지만 올해 주목할 만한 부문에 지명된 라틴계 후보로는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모아나>의 린마누엘 미란다 정도가 유일하다.
관전 포인트2. <라라랜드>의 독주
<라라랜드>는 2월26일 저녁, 할리우드의 ‘Stars of City’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라라랜드>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여우주연상과 각본상, 촬영상 등 주요 부문을 포함한 1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의 지난 89년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이 정도로 많은 부문에 지명된 작품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1997)과 조셉 맹키위츠 감독의 1950년작 <이브의 모든 것> 정도다. 장편 데뷔작 <위플래쉬>로 아카데미에서 3관왕(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을 차지하며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데이미언 셔젤은 두 번째 장편영화 <라라랜드>를 통해 오스카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우려 한다. 이미 골든글로브에서 역대 최다인 7관왕,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5관왕을 차지하는 등 각종 시상식을 섭렵하고 있는 이 영화의 돌풍을 아카데미 또한 막을 수 없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궁금한 건 아카데미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라라랜드>에 트로피를 안겨줄 것인가의 문제다.
관전 포인트3. 감독들의 세대 교체
<라라랜드>를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의 나이는 올해 32살이다. 만약 그가 감독상을 차지한다면, 데이미언 셔젤은 아카데미 역사상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팟캐스트로 들으며 언젠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랐던 청년이 아카데미 시상식 1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직까지 미국은, 그리고 할리우드는 기회의 땅이 맞긴 한가보다. 그런데 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다 젊고 활력 있는 잔치로 느끼게 하는 건 비단 데이미언 셔젤의 존재뿐만은 아니다. 올해의 감독상 부문에는 처음으로 이 카테고리에 진입한 감독들이 상당하다.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와 <컨택트>의 드니 빌뇌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네스 로너건이 그들이다. 이들은 아카데미의 단골 손님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와 <사일런스>의 마틴 스코시즈를 제치고 감독상 후보로 안착했다. 확실히 올해의 감독상 후보군을 보자면 거장의 익숙한 유려함보다 신성의 낯선 재능에 보다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경향이 엿보인다(그렇다고 해서 후보작들이 기존의 아카데미 정서와 동떨어진 영화들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떤 감독이 오스카 트로피를 갖게 되든, 아카데미 시상식의 세대 교체는 이미 예견된 현실이다.
관전 포인트4. 스트리밍 플랫폼의 약진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향을 소개하며 넷플릭스, 아마존 등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은 아직 오스카의 높은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전했다. 1년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다. 아마존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말미암아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는 처음으로 배급하는 작품의 이름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리게 됐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지만 주요 부문에 지명되지 못했던 사례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연배우 케이시 애플렉은 이제 극장과 디지털 플랫폼 사이의 논쟁은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대중은 수없이 다양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찾고 있다”는 말로 아마존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 소감을 전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투자와 배급에 참여하는 작품들이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으로 일컬어지는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올해 개봉예정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 또한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관전 포인트5. 아카데미여 다시 한번!
이제 쓴소리를 할 차례다. 올해의 아카데미는 확실히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다양성 이슈에 관해 많은 것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오스카는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다. #OscarsSoMale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한 것도 그래서다. 우선 올해의 감독상 후보에는 여성 연출자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에바 두버네이의 <13번째>가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극영화 부문에서는 단 한명의 여성감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해 네명의 여성작가가 이름을 올렸던 각본·각색 부문도 올해는 남성 영화인들 천지다. 여성 영화인은 <히든 피겨스>로 각색상 부문에 오른 앨리슨 슈뢰더가 유일하다. 이제까지 아카데미 역사상 단 네명의 여성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 중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만이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 유일한 여성감독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폭행 사건 등으로 구설과 윤리적 논란에 시달렸던 멜 깁슨이 <핵소 고지>로 다시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 영화 현장에서 여성 스탭들을 성적으로 희롱한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는 케이시 애플렉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토록 바라는 게 많은 이유는, 지난 1년간 오스카를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와 성찰의 목소리를 할리우드에 불러일으켰는지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카데미여 다시 한번, 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