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의 멜 깁슨은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오르지 못했다. <라라랜드>의 에마 스톤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컨택트>의 에이미 애덤스는 오르지 못했다. 오스카 후보가 발표되자마자 명단에서 누락된 이름들에 대한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오스카가 놓친 능력자들은 누구인지 정리했다.
1. 작품상
슈퍼히어로영화는 오스카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오스카는 장르영화의 무덤이다. 슈퍼히어로영화에 인색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예측들이 있었다. 팀 밀러가 연출한 <데드풀>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들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워싱턴 포스트> <USA 투데이> 등을 통해 흘러나왔다. <데드풀>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미국제작자조합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데드풀을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는 “만약 <데드풀>이 오스카 후보에 지명되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리액션 영상을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 영상은 영영 볼 수 없게 돼버렸다. 물론 <데드풀>이 <문라이트>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보다 훌륭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데드풀>처럼 파격을 시도하는 다양한 장르영화들이 오스카 후보로 지명되는 일은 반길 일이다. 참고로 올해 슈퍼히어로영화 중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분장상,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다.
2. 감독상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시즈가 빠진 오스카
오스카의 단골들이 올해는 주요 부문 후보에 들지 못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미스틱 리버>(2003), <용서받지 못한 자>(1993) 등의 영화로 5차례 작품상 후보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 <휴고>(2011), <에비에이터>(2004), <좋은 친구들>(1990), <분노의 주먹>(1980) 등으로 8번 감독상 후보에 지명된 마틴 스코시즈가 올해는 오스카로부터 외면당했다. 2009년 뉴욕의 비행기 추락사고 당시 탑승객 전원을 구한 파일럿의 실화를 영화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이 시대의 영웅과 휴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수작이었다. 더불어 기장 셀렌버거를 비롯해 그간 미국의 영웅들을 부지런히 연기해온 톰 행크스가 <캐스트 어웨이>(2000) 이후 한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도 의아한 일이다. 스코시즈의 <사일런스> 역시 종교적 믿음에 대해 얘기하는 실화영화라는 점에서 오스카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엔도 슈사쿠의 명작 소설 <침묵>을 각색한 대서사극 <사일런스>는 그러나 촬영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펜스>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덴젤 워싱턴은 감독상 후보로도 손색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레이트 디베이터스>(2007), <앤트원 피셔>(2002)에 이은 덴젤 워싱턴의 세 번째 연출작 <펜스>는 1950년대 미국 흑인 가족의 이야기다. 흑인들의 삶을 꾸준히 영화화한 ‘감독’ 덴젤 워싱턴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3. 배우상
에이미 애덤스는 왜?
왜 <컨택트>의 에이미 애덤스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들지 못했을까. 오스카 최종 후보가 발표됐을 당시 많은 이들이 이것을 오스카의 ‘실수’로 받아들였다. 영화 자체가 오스카의 외면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미술상 등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버라이어티>는 “에이미 애덤스 없이는 <컨택트>도 없다. 아카데미가 영화에 대해선 그토록 칭찬하면서 이 영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을 배제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라며 오스카의 선택에 의구심을 표했다. <컨택트>는 미지의 존재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언어학자 루이스의 생각과 마음까지 담아 보여주는 영화다. <버라이어티>의 지적처럼, 에이미 애덤스의 극도로 섬세한 연기가 없었다면 관객은 영화와 교감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에이미 애덤스는 2016년 <컨택트>와 함께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두편에서 열연했다. <준벅>(2005), <다우트>(2008), <파이터>(2010), <마스터>(2012), <아메리칸 허슬>(2013)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그녀가 <컨택트>로는 오스카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들었어야 마땅한 또 다른 배우로는 <히든 피겨스>의 타라지 P. 헨슨이 있다. 타라지 P. 헨슨은 1960년대 나사의 우주개발 프로젝트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수학자 캐서린 역을 맡아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해가는 한 여성의 꿋꿋함을 멋지게 표현해냈다. 이외에 <데드풀>의 라이언 레이놀즈, <패터슨>의 애덤 드라이버, <녹터널 애니멀스>의 에런 존슨 등이 아쉽게 탈락한 배우들로 거론됐다.
4. 음악상
퍼렐 윌리엄스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지만
<싱 스트리트>와 <히든 피겨스>가 음악상과 주제가상 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원스>(2006), <비긴 어게인>(2013)에 이은 존 카니 감독의 세 번째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 더블린 소년의 성장기를 음악으로 채워넣어 완성한 영화다. 특히 <Drive It Like You Stole It>은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되었어야 마땅한 곡이다. 마찬가지로 <히든 피겨스>에서 퍼렐 윌리엄스는 주제곡 <Surrender>로 영화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스 짐머와 퍼렐 윌리엄스가 협업해 완성한 <히든 피겨스>의 영화음악은 두 아이콘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 이상으로 훌륭한 결과물이다. 참고로 올해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는 <라라랜드>의 <Audition>과 <City of Stars>, <모아나>의 <How Far I’ll Go>, <트롤>의 <Can’t Stop the Feeling>, <짐: 더 제임스 폴리 스토리>의 <The Empty Chair>다.
5. 기타
아쉬움 가득한 <아가씨> 후보 불발
지금까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한국영화가 든 적은 없다. 이번엔 새 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시카고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 보스턴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등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쓸었다. 정정훈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또한 촬영상과 미술상을 다수 수상했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에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한 영화는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이에 <인디와이어>는 <아가씨>가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들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기술 부문 후보에 들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오스카가 이 영화를 외면했다며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의 경우 픽사의 <도리를 찾아서>가 빠진 것이 의외다. 애니메이션 후보 5편 중 2편이 유럽애니메이션 <붉은 거북> <내 이름은 꾸제트>로 채워진 게 이색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