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지은 이의 바람을 담아낸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 ‘이시다’의 이름에는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라는 표현처럼 남들에게 대접받고 살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성을 떼고 보면 그의 이름은 부하 혹은 아랫사람을 뜻하는 속어에 불과하다. 예상대로 그는 ‘시다씨’로 불린다. 귀한 뜻을 타고 태어나 누군가의 부하 직원으로, 사회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인생. 주인공 이시다뿐 아니라 일인분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모든 ‘혼자’들의 몫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만화가인 김정연이 2015년 말부터 연재한 웹툰 중 200여 가지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이시다와 햄스터 쥐윤발이 동거하는 자취방 한칸이 만화의 주된 무대다. 치열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작가가 마주한 통찰의 순간들을 관통하는 것은 관조의 태도다.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며 살다가 나중에 썩지 않는 방부제 미라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중장비보다 더 긴 노동시간을 절감한다. 치열한 삶에서 느린 깨달음으로 길어낸 통찰과 남다른 내공으로 만들어낸 코미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 1인 가구로서 겪는 위험들에 관한 에피소드도 뼈저리다. 골목에서 치한을 만난 이시다는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만 들려오는 건 ‘거봐’와 ‘원래’로 시작하는 말들, 조심을 당부하는 말들뿐이다. 또래의 동성 친구 해수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덴마크에서 온 남자친구 노아와 길거리를 가던 해수에겐 서양 남자와 교제하는 것에 대한 경멸과 조롱의 말이 쏟아져나온다. 그 사건으로 해수는 노아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겠다는 결심을 접는다. 다만 일련의 사건 후 이시다는 앞으로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보다 세상의 악의를 감당하며 살진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작가의 내공과 공감 이입 능력을 높게 평가받으며 한국만화가협회가 주관하는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혼자인 너에게,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금요일 퇴근 시간은 정말이지 짱입니다. 노동의 반대편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나가는 날이니까요. 여러모로 격려나 응원도 받을 수 있고, 소문난 맛집들도 가볼 수 있으며 못했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죠. 일주일을 완주했습니다.(<프라이데이-모럴리티>, 101쪽)
노스트라다무스가 종말을 예언한 1999년의 여름, 종말 앞에서는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마음을 숨기고 있을 필요도 없어졌죠. 하지만 7월은 조용히 지나갔고, 노스트라다무스는 틀려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도… 언제쯤 다 쓰고, 관두고, 솔직해지면 되는 건지 고민합니다.(<종말하라 1999>,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