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시대다. 플레이리스트는 시시각각 변하고 큐레이팅 시스템의 힘을 빌려 취향에 맞는 곡을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음악의 수명은 짧아졌고, 향유하는 음악의 폭은 더욱 좁아졌으며, 음악에 개인의 내밀하고 특별한 사연이 담길 기회는 줄어들었다. 뮤지션 김정범의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는 장르와 국적의 경계를 허물고 100여곡의 명곡을 소개하며, 인생의 한 대목을 상기시키는 음악, 그 본연의 힘을 되새긴다. 이 책은 읽는 행위만으론 부족하다.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꼭지마다 등장하는 앨범을 검색해서 따라 들으며 눈과 귀로 고루 즐길 때 책의 참맛이 살아난다. 마치 라디오에서 운 좋게 좋은 곡들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이 이 책에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어진다.
저자 김정범은 ‘푸디토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재즈 뮤지션이자 영화 <멋진 하루> <러브 토크> <롤러코스터> 등에서 음악을 담당한 영화음악 작곡가다. 심야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DJ로 활동하기도 했고, 현재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다채로운 행보는 <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에 고루 녹아 있다. 첫장 ‘음악이 나에게’에서는 헤비메탈에 열광하던 유년 시절, 극장과 음반 가게에서 살다시피하던 청년 시절, 도시 곳곳의 재즈 클럽에서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던 유학 시절 등이 당시의 감성과 함께 펼쳐진다. 두 번째 장 ‘내가 음악에게’에선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하며 영감을 주고받은 음악인과 공연을 짚는다. 재즈 밴드 ‘푸딩’의 앨범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도 쏠쏠히 녹아 있다, 마지막 장 ‘음악으로 당신에게’에선 보다 확장된 시선으로 다양한 범주의 음악을 소개하고 가장 최근 작업을 소개하며 푸디토리움의 음악적 비전을 밝힌다. 책에 담긴 칼럼은 2012년부터 저자가 <부산일보>에 6년째 연재해온 것들로 현재도 매주 업데이트 중이다.
이토록 친절한 음악공부
사실 앤디 밀네는 뉴욕 대학교 재학 시절 저를 지도해준 피아노 레슨 교수 중 한 사람입니다. 당시 ‘푸디토리움’ 첫 앨범을 녹음하던 저는 앤디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며 녹음 중인 곡들을 들려주었는데요. 앤디 선생님은 솔직한 감상과 함께 “음악이 너무 상업적이다. 너의 음악적 비전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과제곡을 연주하던 제게 “연주는 틀리지 않았지만, 너는 이 곡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라며 질책하기도 했지요. 저 역시 그의 주장을 마음껏 반박했고요. 열변을 토하며 아웅다웅하던 모습을 돌이켜보면 학생과 선생님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법합니다. 곡에 대한 집중과 열정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납니다. “곡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곡에 대한 생각을 하다 지하철을 놓치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중에도 아이디어가 떠올라 데이트를 망치기도 하는 거야.”(88쪽)
21세기의 팝 음악이 진화하는 과정은 사실, 라디오헤드의 음악에서 그 근본이 시작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르를 떠나 그것이 어떤 음악이든,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음악이 어떻게 나아가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왜 그 음악들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이지요. 이것이 제가 ‘라디오헤드’로 올해를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벽에 부딪히고 힘들 때마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뜨겁게 새로운 작업을 해나가겠습니다.(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