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도서] 씨네21 추천 도서 <거짓말 규칙>
2017-02-21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거짓말 규칙> 조디 피코 지음 / 엄일녀 옮김 / 포레 펴냄

상담 칼럼니스트 에마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매일을 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첫째 아들 제이컵 때문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특정 주제에 대한 집착, 결벽과 강박을 동반한다. 제이컵의 일상에서 규칙은 필수이며 일상의 변수는 언제든 발작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마와 아이들에겐 다섯 가지 규칙이 있다. 어지른 것은 직접 치울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 하루 두번 이를 닦을 것, 학교에 지각하지 말 것, 형제를 돌볼 것. 한편 형 제이컵 때문에 둘째 테오는 항상 에마의 관심 밖에 있다. 테오에겐 주인이 자리를 비운 집을 몰래 돌아다니며 안락함을 느끼는 괴이한 습성이 생긴다. 어느 날, 어김없이 이웃집에 들어간 테오는 샤워 중인 여자를 발견한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테오는 그가 제이컵의 사회성 교육을 돕는 대학원생 제스란 걸 알게 된다. 테오는 재빨리 집을 뛰쳐 나온다. 그날 제스는 행방불명이 된다. 며칠 후엔 제이컵의 퀼트 이불에 둘러싸인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거짓말 규칙>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청소년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그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려는 형사와 무고를 밝히려는 가족의 법정 공방을 그린다. 주인공의 천재적 면모가 그려지긴 하지만 이 소설에선 인물의 폐쇄된 내면과 그 안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둔다. 동시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장애아 형제자매의 아픔도 생생히 그려진다. 인종 문제, 가정 폭력, 왕따, 총기 난사 등 사회적 이슈들로 소설을 써온 저자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인생의 고비에서 갈등하고 투쟁하고 성찰한다. 저자는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어쩔 땐 가해자가 이길 때도 있는 법이다. 때문에 우리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저자의 한마디는 부조리한 현실에서도 각자의 원칙과 소신으로 살아나가는 주인공들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진실을 찾아서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설명하기가 참 곤란하다. 누가 수술용 메스로 가슴을 가르고 배 속을 휘저으며 심장과 허파와 콩팥을 쥐어짠다고 상상해보라. 그 정도로 파괴적인 침범의 느낌이 바로 내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 느끼는 기분이다. 내가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타인의 머릿속을 마구 뒤지는 것은 예의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눈은 유리창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을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98쪽)

자폐아를 형제자매로 둔 아이들에 대한 책은 많이들 보았을 텐데, 이들은 자신의 형제자매를 꾸준히 돌보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그들이 발작을 일으키면 어른들보다 더 잘 진정시킨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제이컵이 사라지거나 하면 나도 심장이 철렁했지만 그건 제이컵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당시 들었던 생각, 내가 이렇게 끔찍한 동생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제이컵이 영영 사라져버리면 나도 내 인생을 살 수 있을텐데.(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