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꽃이 만개했다. 저마다 다른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는 다섯편의 소설이 4월의 북엔즈에 함께 꽂혔다. <아몬드>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18살 소년의 뭉클한 성장담이다. 몇몇 대목에서 액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스트라이터즈>는 펜으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령작가들의 대결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은 ‘사드의 적자’로 통하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 소설로 성에 탐닉하는 소년과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운명과 분노>는 아내를 운명으로 여긴 남자와 분노를 품고 살아온 그 아내의 비밀을 풀어내는 소설이다.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 <아몬드>는 공감 불능의 사회에서 감정 또한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임을 말한다. 주인공 소년은 감정 없이 태어난 인간이다. 할머니와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된 그에게 감정을 알려주는 건 같은 반 친구들과 윗집 어른이다. 편견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서로의 구원이 되는 과정을 그리며 우정, 소통, 공감의 가치를 일깨운다.
<고스트라이터즈>는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호연의 세번째 소설로, 저마다의 사정을 껴안고 글을 써나가는 작가들의 생활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몇년째 대필작가로 연명하는 주인공은 자신에게 글로서 타인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고스트라이팅’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곧 자신의 미래를 조종하는 다른 고스트라이터의 존재를 깨달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대결을 펼친다.
<눈 이야기> <하늘의 푸른빛>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 조르주 바타유의 작품이다. 광적으로 성에 탐닉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신화를 깨부순다. 기이한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눈 이야기>는 매독으로 눈이 먼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지내던 아버지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아 써내려간 이야기이고, <하늘의 푸른빛>은 기성에 대한 ‘전복’을 강조하던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녹여낸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로런 그로프의 세 번째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는 남편과 아내, 두 갈래의 시점에서 결혼생활을 그리며 현대의 결혼이 안고 있는 허술한 신화를 전복한다. 제 삶을 이롭게 한 여자를 운명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분노를 머금고 오래도록 침묵해온 여자.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도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온 두 인물의 사연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