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작가와 무명작가 사이에 ‘유령작가’가 있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로 타인의 미래를 설계하는 ‘유령작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와는 다르다. 타고난 신기로 앞날을 예견하는 무당과도 다르다. 유령작가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디테일을 제시한다. 4년 전, ‘안 쳐주는’ 문학상으로 등단한 김시영은 유명 소설가 이카루스의 대필작가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마약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나락에 떨어진 연예인 차유나가 재기를 도와달라며 그를 찾아온다. 차유나는 김시영에게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는 유령작가들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고스트라이터즈>는 글이 곧 무기가 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시나리오, 방송 극본, 웹 소설 등 장르는 달라도 글로 먹고사는 이들이 등장해 펜으로 서로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판타지적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문단의 생리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메이저 아니면 등단작가로 쳐주지도 않거든.” “그쪽은 그래도 신춘문예니 괜찮지 않으세요?” “나야말로 ‘신춘 고아’지. 등단만 시켜주면 뭐하나? 원고 청탁도 없고.” 작가 본인 혹은 주변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을 문장은 마디마다 힘이 실린다. “내 원고료 당장 내놔. 창작지원금? 내가 습작생이냐? 나 데뷔 작가고 이번달에만 A4로 100장 넘게 써넘겼거든!” 빈 종이와 깜빡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써내지 못할 때의 절망적인 상황, ‘라이터스 블록’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다. “하얀 모니터는 백지에 다름 아니다. 나는 눈싸움하듯 백지를 바라보며 어떻게든 손을 놀려 보려는데…. 수전증 환자의 손인 양 바르르 떨리기만 하고 좀처럼 자판을 누르지 못한다. 뭐라도 쓰자.” 각 장의 처음을 장식하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부여잡을 만한 유명작가들의 글쓰기 잠언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인용되는 것은 아이작 디네슨의 문장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활기차게 벌어지는 사건들만큼이나 매 순간 “곡식을 씹듯 글귀를 곱씹고, 다시 글을 쓰”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과 다짐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유령작가의 세계속으로
흔히 ‘고스트라이터’라 불리는 유령작가는 남의 작품 대신 써주기, 대리번역, 자서전 집필 등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글쓰기에 주력한다. 대가는 물론 원고료다.(중략)
푼돈에 창작력과 주체성을 파는 작업. 그래서 무명도 아니고 유령인 것이다.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강물을 부유하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그렇게 어디 하나 자리하지 못한 채 글을 쓰는 것. 그들에겐 뿌리가 없으므로 작품이란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지금 나는 고스트라이터다.(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