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Review] 고스포드 파크
2002-04-09
시사실/고스포드 파크

■ Story

1932년 11월 잉글랜드. 산업자본가로 성공해 부를 축적하고 결혼으로 작위를 얻은 백만장자 윌리엄 매코들 경(마이클 갬본)과 냉담한 그의 부인 실비아(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전원 저택 고스포드 파크에서 주말사냥 파티를 열고 친지들과 다음 영화 리서치를 위해 영국에 온 할리우드 제작자(밥 발라반), 스타 배우 아이보 노벨로(제레미 노담)를 초대한다. 트랜섬 백작부인(매기 스미스)과 앳된 시중꾼 메리(켈리 맥도널드)를 필두로 당도한 손님과 그 하인들은 집사 제닝스(앨런 베이츠)와 가정부 윌슨 부인(헬렌 미렌)이 이끄는 하인들의 마중을 받는다. 위층 손님들이 이익을 교환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경멸과 허세를 교환하는 동안 아래층의 하인들은 주인들의 복잡하게 얽힌 진실을 속닥거린다. 그러나 고스포드장의 파티는 사냥이 끝난 둘쨋날 밤 매코들 경이 살해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혼란 속에서 메리는 진실의 윤곽을 더듬어나가기 시작한다.

■ Review 가능하다면 이런 파티에는 초대받고 싶지 않다, 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파티의 주최자는 시야에 들어오는 젊은 여자마다 집적대고 안주인 또한 비슷한 행실로 응수한다. 어떤 남편은 돈에 혹해 결혼했다가 돈이 바닥나자 아내를 냉대하고, 어떤 친척은 집주인이 용돈과 투자를 끊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한다. 반짝이는 은식기에 담긴 정찬과 더불어 고스포드 저택의 식탁 그득 서빙되는 ‘요리’는, 경멸과 면박과 아부와 협박, 그리고 연애인지 착취인지 아리송한 성적인 접촉들이다. 게다가 집안 곳곳에는 독약 든 병들이 마치 식초라도 되는 양 태연자약하게 널려있다. 증오와 살인 동기는 모두에게 있고 무대 장치는 완벽하다. 저택 어딘가의 서재에서 “복수는 그들의 것”이라고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가 펜을 놀리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 거북한 잔치의 숨은 호스트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 몇해 전 마틴 스코시즈가 <순수의 시대>에서 머천트 아이보리표 시대극 세트를 깜짝 방문하더니, 이번에는 알트먼 차례다. 그러나 <순수의 시대>가 장미와 레이스로 위장한 감정의 갱스터였듯, 로버트 알트먼도 1930년대 잉글랜드의 장원에서 세상 누구보다 그가 규칙에 밝은 게임을 벌인다. 보통 영화 예닐곱편은 너끈히 찍을 만한 머릿수의 인물, 많은 서브 플롯을 거느리고 굴러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스토리, 그리고 극중인물에게 도통 다정한 시선을 주지 않는 감독의 냉랭한 매너까지 <고스포드 파크>는 <플레이어> <패션쇼> <숏 컷>의 도도한 영국계 사촌이다.

미스터리 구조는, 자칫 방만해지기 쉬운 앙상블 드라마의 줄거리에 리듬을 불어넣기 위해 알트먼이 즐겨 사용해온 도구다. 추리물이자 코스튬드라마이고 매너코미디이자 풍자드라마인 <고스포드 파크>에서 알트먼은 한채의 저택으로 극적 공간을 고립시킴으로써 이야기와 스타일의 매무새를 한결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귀족 주인을 위층에, 그들을 시중하는 하인을 아래층에 분리 수용한 고스포드 저택의 실내공간은 20세기 초 영국 계급 시스템의 다이어그램이다. 자기들의 비밀스런 회동을 하인이 목격해도 “아무도 아니야”(It’s Nobody)라며 안심하는 귀족들은 하인을 귀가 없는 가구나 비품처럼 취급하고, 하녀들의 우두머리 윌슨 부인은 “난 완벽한 하인이야. 그러니까 내 삶은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고스포드 파크>를 건사하는 것은 아래층 사람들이다. 관객은 위층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허세부리는 ‘가면무도’를 통해 인물들의 관계와 감춰진 사연의 초기 단서를 잡은 다음, 아래층의 현명한 하인들의 대화를 듣고서야 비로소 결론을 얻는다. 안락한 자리의 임자는 귀족들이지만 알트먼 감독은 하인 중 누군가가 곁에 있지 않는 한 그들에게 카메라를 비추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더 많이 아는 자가 미스터리의 권력자라면 <고스포드 파크>의 실세는 단연, 항상 고개를 정중히 숙인 채 만사를 보는 아래층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스포드 파크>의 시나리오 작가 줄리언 펠로스와 알트먼 감독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악한 속물과 선한 현자로 나누기에는 좀더 노련하다. 이 영화에서 계급은 경제적인 지위일 뿐 아니라 삶의 조건과 태도의 집합이며, 계급 갈등은 억압과 희생보다 훨씬 복합적인 알력이다. 영화에서 가장 명석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하녀 엘시는 멸시와 연민이 뒤섞인 태도로 주인 가족을 바라보고, 오만한 트랜섬 백작부인은 하인들의 가십에 귀를 세운다. 불안한 것은 위층 사람들이다. 그들의 세계는 바야흐로 흔들리고 있고 미국에서 온 할리우드 제작자와 배우는 곧 도래할 시대의 위협을 대변한다. 영화배우가 노래할 때 귀족들은 무관심을 가장하지만 하인들은 문간에서 그 황홀함을 즐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구경하는 계급과 문화의 섬세한 마찰은 <고스포드 파크>가 주는 부정할 수 없는 재미다. 닫힌 공간에 모인 다수의 인물이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는 설정부터, 숨겨진 과거사와 혈연이 단서로 동원된다는 다소 맥빠지는 추리과정까지 <고스포드 파크>는 <열개의 인디언 인형>을 비롯한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을 직접 연상시킨다. 그러나 80분이나 지나서야 시체가 나오는 이 영화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진범의 정체와 반전의 충격, 명탐정의 묘기가 아니라 불발로 그친 수많은 혐의의 넝쿨에 끌려나온 인간들의 드라마다. 그런 면에서 <고스포드 파크>는, 사냥 파티에 모인 표리부동한 인물들의 회동을 그린 장 르누아르 감독의 <게임의 규칙>에 다가선다. 어슬렁거리며 인물과 환경을 유려하고도 역동적으로 맺어주는 알트먼 특유의 카메라가 시대극의 풍성한 미장센과 결합해 낳는 그림도 바로 <게임의 규칙>의 그것이다.

알트먼 감독과 제작자 겸 배우인 밥 발라반의 아이디어를 영국 상류층 문화에 정통한 줄리언 펠로스가 매만진 각본은 “그게 어떤 목적에 봉사할 수 있지?”라고 되묻는 윌슨 부인의 대사처럼 한줌의 낭비도 없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돈 몇 실링의 행방까지 정산하는 꼼꼼함으로 감탄을 샀다면 <고스포드 파크>는 주인 잃은 강아지의 운명까지 챙긴다. 치밀한 각본과 정밀한 연기로 무장한 영화가 흔히 그렇듯 두번째 감상이 2배 이상 만족스러운 <고스포드 파크>는 <플레이어> <숏 컷>과 더불어 알트먼의 후기 걸작으로 손색이 없다. 촬영 당시 76살이었던 알트먼 감독은 보험사의 요구에 따라 유사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는다는 약속 아래 일했다지만, 그가 지닌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과 인류학자의 눈은 여전히 강건하다. ‘히치코키안’이라는 단어를 만든 앨프리드 히치콕 경처럼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해도, 로버트 알트먼은 작위 대신 이름을 딴 형용사 하나쯤 수여받을 때가 됐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로버트 알트먼 감독 인터뷰

“영화는 스토리보다, 벽화다”

<고스포드 파크> 같은 대규모 앙상블은 ‘실내악’급의 작은 영화보다 만들기 어려울 텐데.

더 쉽다. 만약 하나가 삐끗하면 도망갈 다른 곳이 있으니까. 두세 캐릭터가 이끄는 영화는 그 인물만 갖고 관객의 주의를 내내 붙잡아야 하니 힘들다. 나는 (영화를) 소설이나 스토리보다 벽화로 생각한다. 캐스팅만 제대로 하면 85%는 한 셈이다.

누구부터 캐스팅했나.

메리 역의 켈리 맥도널드가 처음이었고 매기 스미스,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앨런 베이츠, 데렉 자코비 등이 일찌감치 정해졌다. 인물을 관객이 혼동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키 큰 남자가 있으면 작은 남자, 빨간 머리가 캐스팅되면 다음에는 금발을 찾았다. 긴 캐스팅이 끝나자 영화에서 내가 해야 할 창의적 작업은 거의 끝났다.

<고스포드 파크>는 당신의 영화세계의 어디쯤에 자리하나.

톱이다. 추구해온 영화를 완성했다. 이번 연기 앙상블은 아침마다 꿈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꼬집어볼 정도였다. 영화 인생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

리허설을 많이 하나.

세트에서는 촬영 직전에 한다. 그 밖에 <고스포드 파크>는 두번의 모임을 가졌다. 위층 인물끼리, 아래층 인물끼리 따로 회식을 했다. 그들은 각각 하나의 재미있는 캠프를 이뤘다.

새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성공과 실패의 감이 있나.

무작정 이건 천재적 작품이 될 거다, 모두가 이 영화를 사랑할 거다라고 가정한다. 내 속은 거품투성이다. 그러나 영화가 뚜껑을 열면 거품이 사그라지고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장르 비틀기를 즐긴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선택한 장르를 버리고 싶은 시점이 오나.

물론. 나는 관객이 한 장르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를 다 사용한다. 그러고나서 적정한 기대치에서 몇치 비껴나게 만든다. “자, 이건 그 장르 맞는데 이런 식으로는 전에 본 적이 없죠?” 하는 식으로.

늘 메이저 스튜디오 밖에서 일해왔다.

스튜디오와 나는 다른 업종에 종사한다. 그들은 구두를 팔고 나는 장갑을 만든다. 구두 가게 구석에 작은 코너를 차지하고, 여기 장갑도 있다고 외칠 수 있다면 행운이지만 가게 정문 간판에는 “들어와서 구두 사세요”라고 써 있다.

<고스포드 파크>를 스튜디오와 만들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영화는 만드는 도중에 크게 변한다. 이번에도 6주 반이나 찍은 다음 극중인물 둘을 자매로 만들었다. 그런 결정을 누구에게 인가받는 시스템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들은 아마 “우린 대본을 원해!”라고 말했을 거다.

당신은 언제나 정치적인 감독이었다. 혹시 조지 W. 부시 정권하의 미국에 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나.

난 부시와 그 일파를 너무 경멸해서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런 주제를 다루면서는 절대 유머를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선거 당시 촬영 때문에 영국에 있던 나는 유럽인의 눈으로 선거 경과를 지켜봤는데 일어난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들은 어떻게 믿나 모르겠다.

이제 76살이다. 좀 슬슬 할 생각은 없나.

(웃음). 2002년 늦봄쯤 뉴욕에서 영화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죽을 것이다.

이상의 인터뷰는 방송홍보용 테이프와 <인디와이어> <BBC>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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