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론 감독은 TV시리즈부터 두편의 영화까지 15년 동안 한결같이 빼꼼을 책임졌다. 빼꼼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임아론 감독이다. “빼꼼과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다”는 임아론 감독을 만났다.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 2007년에 개봉했으니 10년 만에 두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10년이면 짧은 거 아닌가? (웃음) 애니메이션의 경우 기획하고 투자받고 제작하기까지 5~7년은 잡고 본다. 2007년 멋모를 때 장편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가 (흥행 부진으로) 타격을 받고 잠시 은둔하다가 다시 정신차려서 준비했으니 10년이면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
-5분 내외의 TV시리즈의 경우 캐릭터의 매력만으로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극장용 장편의 경우 흥미로운 스토리가 더해져야 한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뭐였나.
=결국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이다. 시나리오 작업이 스토리 개발이라면,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연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스토리텔링의 과정이다. 감독의 역량이 크게 발휘되는 건 결국 스토리텔링인데, 캐릭터의 특성을 섬세하게 잘 끄집어낼 수 있도록 애니메이터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 신경 썼다.
-스토리텔링 과정에선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게 중요했겠다.
=당연히 그랬다. 주 관객이 어린이들이니까 아이들의 시선으로 접근해서 연출해야 한다. 사소하게는 카메라의 움직임까지도 아이들을 배려했다. 화면이 지나치게 흔들리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카메라를 너무 많이 흔들지 않는 거다. 비록 어른들이 볼 땐 유치할 수 있지만 작품의 타깃층을 고려하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슈퍼 빼꼼: 스파이 대작전>을 장르로 규정하면 첩보영화라 할 수 있다. 특정 장르의 문법을 적극 끌어들인 이유가 있다면.
=<빼꼼> 시리즈는 처음에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선보이면 아이들은 캐릭터 자체를 즐기는데 어른들은 그러지 못하고 장르로 규정하려 한다. 첫 극장용 장편의 경우, 2002년부터 5년간 차근히 구축한 빼꼼 캐릭터를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선보인 건데, 영화를 본 어른들은 ‘이 영화의 장르가 뭐야?’ 그런 반응이었다. 어쨌든 캐릭터가 구축됐으니 그다음부터는 장르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첩보물이나 호러물처럼 명확하게 장르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다. 처음엔 첩보물이 아니라 히어로물로 만들려 했지만 투자 진행이 잘되지 않아 첩보물로 방향을 틀었다.
-<슈퍼 빼꼼: 스파이 대작전>에선 008 요원이 된 빼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007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스파이영화들을 참고했나.
=참고하진 않았다. 완벽한 오리지널 창작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작업 방식 자체가 누군가의 창작물을 참고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애니메이션은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많은 장르이기 때문에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자체적으로 많이 떠올리려 했다. 오히려 내게 영향을 준 건 첩보영화들과는 상관없는 작품들이다. 90년대에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할 때 본 단편이 <게리의 게임>(1997)이라는 픽사의 단편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걸 보고 애니메이션이 예술이란걸 알게 됐다. 그리고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에도 스타일이란 게 있다는 걸 깨달았고,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보면서 순수함을 배웠다. 작품을 만들 때 이런 것들을 담으려고 늘 노력한다.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 슈퍼히어로 빼꼼에게 새롭게 부여하고 싶은 특성은 무엇이었나.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왠지 슈퍼맨이 생각나는데, ‘008 요원’이라는 타이틀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007은 정품이고 008은 짝퉁의 느낌이 있지 않나. 빼꼼한테도 완벽하지 않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캐릭터로서의 모습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 순수함 때문에 결국 문제를 해결하게 되니까.
-10년이 지나면서 빼꼼의 외형 및 성격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나.
=크게 변한 건 아니지만 5번 이상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얼굴 같은 경우 옛날엔 러프하게 입만 벌리고 눈만 깜빡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표정이 다양해졌고 피부의 디테일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성격의 경우 근본은 유지하고 있다. 영화에서의 모습은 TV시리즈에서 보여진 여러 성격들의 종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빼꼼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빼꼼이란 발음을 외국에선 어려워하지 않나.
=영어로 하면 백홈(Back Home)이다. 인간에 의해 고향 북극을 떠난 빼꼼은 인간 세상에 정착해 살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성격적으로는 무언가 ‘빼꼼’하고 쳐다보는 성격이고. 게다가 백곰이고. 그런 다양한 의미를 담아서 지은 이름이었다.
-모팩앤알프레드와 함께 중국의 핑고에서 공동제작을 했다.
=중국에 정식으로 작품이 판매된 적이 없는데 빼꼼 캐릭터가 중국에서 유명하더라. 논버벌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중국에서 통했던 거다. 이번 작품에선 아예 중국쪽 스탭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고 그러면서 일종의 투자가 이루어진 셈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50억원. 3D애니메이션이 보통 100억원씩 하니까 그에 비하면 저예산이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는 우리 돈으로 1400억원 들었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고. (웃음)
-해외에선 특히 어느 나라에서 인기가 좋나.
=유럽 그리고 중국쪽에서 반응이 좋다. 일본과 미국은 워낙 애니메이션 강국들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단편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한국인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상 받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 반응이 기분 나빠서 나도 마치 올림픽에서 1등이라도 한 것처럼 두팔 벌리고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빼꼼> 시리즈 외에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세 작품을 준비 중인데, 하나는 찰스 디킨스의 <예수의 생애>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쉽 프로젝트>라고 양이 주인공인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다. 또 <고양이 프로젝트>도 준비 중인데, 이건 무협 장르가 될 거다. 작품도 사람과 비슷해서 자기 밥그릇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 같다. 투자 진행 상황에 따라 어느 게 먼저 들어갈지 결정될 것 같다.
-어린이날을 맞아 애니메이션이 대거 개봉한다. 그중에서도 <슈퍼 빼꼼: 스파이 대작전>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일단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물론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도 있지만(웃음), 또봇과 빼꼼은 장르가 다르니까. 비슷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보스 베이비>가 있는데 어린이날 미국 작품과 한국 작품이 경쟁하는 게 의미 있다고 본다. 영화의 국적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를 수 있는 여러 옵션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