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가족에 변신로봇 끼얹기 -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
2017-05-01
글 : 송경원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 감독 이달, 고동우 / 제작연도 2017년 / 상영시간 80분 / 개봉 4월 27일

어른들이 봐도 재미있다. 흔히 잘 만든 애니메이션을 칭찬할 때 자주 붙는 수식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이다. 여기엔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응당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주요 관객을 누구로 생각하는지가 그외 다른 관객을 외면해도 좋다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들이 ‘아동’이라는 관객층을 앞세워 기본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하는 애니메이션은 있어도, 아이들‘만’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같은 건 없다. 탄탄한 이야기, 거슬리지 않게 녹아든 메시지, 눈이 즐거운 볼거리 등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는 기본적인 즐거움이 애니메이션에도 있어야 한다. 그럼 점에서 레트로봇의 <또봇>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이다.

<또봇>의 비결은 특별한 데 있지 않다. 단지 특별한 걸 당연하게 담아낼 줄 알 뿐이다. 제작사 레트로봇은 2009년 10월 영실업과 공동제작으로 변신자동차물 <또봇>을 세상에 선보였다. 겉보기엔 실제 한국 자동차를 모델로 했다는 것 외엔 여느 변신자동차물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또봇>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내 친구가 아닌 선택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대신 동시대 한국 사회를 꼼꼼히 반영한 내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저 내 옆에 있는 모습 그대로를 관찰하고 보여주는 것, 사실 그 단순한 작업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또봇>은 그걸 해낸다. 주인공 하나와 두리의 아빠이자 또봇의 아버지 도운 박사는 다리가 불편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두 아들의 하굣길을 마중 나가는 아빠의 모습은 파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느 로봇애니메이션이라면 밝고 긍정적이고 화사한 모습만을 보여주고자 하겠지만 <또봇>은 그런 금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정확히는 그걸 금기 또는 특별한 상황이라 여기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 비극적인 운명 같은 것도 없고 장애나 입양 같은 상황을 극적인 장치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변에 늘 함께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법을 아는 영리한 애니메이션은 아동부터 어른까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아마도 이 당연함의 배경에는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무릇 좋은 캐릭터란 결핍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결핍을 구경거리로 소모해서는 안 된다. 아빠가 휠체어를 타는 것도, 주인공 세모가 입양아인 것도 그저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일 따름이다. 기본적으로 <또봇>은 완구로봇애니메이션의 외형을 따르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한국 자동차가 변신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음식, 간판, 골목길, 뉴스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을 배경으로 녹여냈다. 그래서 당연히 친근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야기에 대한 접근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레트로봇의 이달 감독은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목표 아래 제작할 때는 한국적인 색을 낼 수 있는 디테일들을 빼고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이것저것 제약이 많으니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여지도 적었다. 국내 시장을 목표로 한 <또봇>은 다행히 그런 제약이 없어 내가 주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건 대상을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우겨넣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있는 그대로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그곳에서 출발시켜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보며 감동할 수 있는 <또봇>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주는 가족의 이야기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살아 있는 냄새가 난다. 함께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중요한 건 그걸 강변하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화술이다. 무관심한 시선으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경시하는 사이 <또봇>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 세상을 넓혀가는 중이다.

물론 변신로봇물의 기반은 완구산업과의 파트너십이다. 필요에 따라 새로운 완구를 끊임없이 등장시켜 캐릭터를 늘려나가야 하고 어느 순간엔 캐릭터가 이야기를 압도하는 임계점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극장판 또봇: 로봇군단의 습격>(이하 <극장판 또봇>)은 이미 19기까지 나왔음에도 9기와 10기 사이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선택했다. 이 선택만 봐도 레트로봇의 진심과 균형감각을 읽을 수 있다. <극장판 또봇>은 80분 안에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동시에 TV시리즈에서 미처 못다 한 설정들을 설명(10기 이후 또봇의 기지가 갑자기 커진 것은 이번 극장판에 등장하는 재단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한다. 극장판답게 로봇군단과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구현해 충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또봇이 애초에 지향했던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초심으로 돌아간다. 단독 작품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완결성 있는 이야기는 <극장판 또봇>의 최대 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장판 또봇>에는 일에 바쁜 아빠들이 등장한다. 실로 한국적이다. 아버지 도운은 제주도에 놀러와서까지 아이들에게 소홀히 했다는 친구 리모의 뼈아픈 지적에 “팽개치다니! 내가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데. 나로선 이게 아이들을 위한 거였다고”라고 항변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에 매여 사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면서도 쓸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은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 중 하나다. 또한 게으른 인간은 기계의 부품이 되는 편이 낫다며 폭주하는 모리 박사의 모습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 2위를 다투는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를 연상시킨다. 도운과 리모, 심지어 악역인 모리 박사까지 어찌 보면 성과를 압박하는 사회의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극장판 또봇>은 그런 아빠를 이해하라고 변명해주는 대신 아이들과 어른들, 아들과 아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마련해준다.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에게 남는 건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어찌 보면 로봇들의 격투, 변신, 화려한 스펙터클은 이런 공감 가는 드라마의 감동을 더하는 적절한 양념에 가깝다. <극장판 또봇>은 <또봇>의 세계관을 압축한 정수라 할 만하다. 우리의 현재를 온전히 반영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 후 거기에 변신로봇물의 틀을 적절히 녹여낸, 실로 한국적인 변신로봇애니메이션이자 좋은 가족영화다. 다시 말하지만 잘 만든 영화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가 봐도 재미있는 법이다.

웰 컴 투 <또봇> 유니버스!

2009년 10월 첫 방영을 시작한 <또봇>은 어느새 19기까지 진행됐다. 현재 TV시리즈는 <애슬론 또봇> 3기를 마지막으로 완구회사의 투자가 중단되면서 멈춘 상황이다. 저작권이 양도되어 있는 만큼 다른 투자처를 섣불리 찾을 수도 없는 상황. <극장판 또봇>이 레트로봇의 향후 행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트로봇의 ‘또봇 유니버스’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기부터 19기까지 또봇이 걸어온 길을 간단히 정리한다.

1. <변신자동차 또봇> 1~16기

‘변신자동차’의 타이틀을 달고 진행된 <또봇>. 또봇X, Y, Z를 메인으로 또봇W, D, C, R, 또봇 쿼트란, 또봇 델타트론까지 등장시켰다.

2. <또봇탐험대> 17~19기

‘또봇탐험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행된 <또봇>. 극장판에 나오는 새로운 파일럿 국수호와 또봇K가 등장했다.

3. <바이클론즈> 1~5기

레트로봇의 두 번째 시리즈인 변신 바이크로봇물. <또봇>과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진 않지만 일정 부분 겹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4. <애슬론 또봇> 1~3기

새로운 주인공과 또봇을 등장시킨 시리즈. 로봇 레이스를 배경으로 애슬론 알파, 베타, 세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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