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 <목소리의 형태>
2017-05-01
글 : 송경원

<목소리의 형태> 감독 야마다 나오코 / 제작연도 2017년 / 상영시간 129분 / 개봉 5월 9일

제목만 듣고 단번에 끌렸다. 끝까지 감상하곤 또 한번 반했다. 간혹 전하고자 하는 바를 짧은 단어 안에 완전히 응축시킬 줄 아는, 그런 작품이 있다. 언어를 신중히 다듬는 감각이라면 당연히 내용 역시 준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목소리의 형태>는 청각장애인 소녀와 그런 소녀를 왕따시켰던 소년이 긴 시간이 흐른 후 재회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설사 용기내어 말하려 해도 상대에게 닿는 방법이 서툰 마음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목소리의 형태>는 그 마음의 형태, 전달의 형태를 섬세하게 더듬는 작품이다.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했다

<목소리의 형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나는 지난해 일본 개봉 당시 누적 관객수 170만명을 기록하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과 함께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 맑고 여린 그림체 등 장르적으로 다소 겹치는 지점이 아니었다면 좀더 많은 관객을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원작의 힘이다. <너의 이름은.>이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한 신카이 마코토의 오리지널 스토리였다면 <목소리의 형태>는 현재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정석 중 하나인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만화 <목소리의 형태>는 그야말로 신인 만화가가 오를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게 해준 화제작이다. 19회 데즈카 오사무 신생상, 2015년 ‘이 만화가 대단해’ 1위 등 거의 모든 수상을 휩쓴 것은 물론, 누적 판매 300만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돌풍의 시작이 단편만화 한편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원작자 오이마 요시토키는 이 만화로 2008년 주간 <소년매거진>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만화는 청각장애와 왕따라는 민감한 소재 탓에 당시에 어떤 잡지에도 공개되지 못한 채 유령 작품으로 남는다. 이후 오이마 요시토키가 다른 작품을 통해 인지도를 얻게 되면서 그의 데뷔작인 이 작품이 재조명을 받고 2011년 2월에 드디어 세상에 공개됐다. 편집부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결국 2013년, 드디어 정식 연재가 결정되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당시 연재에 앞서 다시 한번 게재된 리메이크 단편이 실린 2013년 2월호는 종전보다 6만부 이상이 더 팔렸으며 주간 <소년매거진> 편집부 역시 “사지 않고 서점에서 읽어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7권의 단행본이 나온 후 <목소리의 형태>의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었을 때 나는 이 단편의 호흡이야말로 극장판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같은 소재,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형태에 담아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단행본의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단편이 압축하고 있던 긴 여운을 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단행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편의 호흡을 잊지 않고 있다. 사실 7권이란 분량은 2시간 남짓한 극장판에 담아내기 녹록한 볼륨이 아니다. 영화는 긴 이야기를 덜어내고 생략하는 방식을 취하는 대신 애초에 자신이 출발이었던 단편의 여운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달라진 거라면 주요 인물인 소년 쇼야와 소녀 쇼코의 흐름을 따라가되 친구 유즈루, 토모히로, 나오카 등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적절히 녹여내어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형태, 분위기, 공기, 마음에 관한 묘사다. 너에게 닿는 목소리란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작업인 셈이다. 이 섬세한 애니메이션은 그 점을 잊지 않는다.

마음을 쓰다듬는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

쇼야는 장난꾸러기다. 관심과 심술을 구분하기 어려운 나이, 전학생 소녀에 대한 호기심은 짓궂은 장난으로 이어진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지만 돌을 던진 자는 그 무게를 알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전학생 쇼코에 대한 왕따를 주도했던 쇼야는 쇼코가 도망치듯 떠난 후 벌을 받듯 그 자리를 대신한다. 왕따 가해자라는 낙인이 새겨진 후에야 자신이 함부로 휘둘렀던 폭력의 무게를 깨달은 쇼야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는다. 그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 그 무게에 눌려 뒤틀린 채 살아가던 쇼야는 조금 더 자란 뒤 다시 쇼코를 만난다. 어느새 수화를 배운 소년은 오랜만에 재회한 소녀에게 수화로 말을 건넨다. 친구가 될 수 없겠냐고. 물론 말 몇 마디에 지난 세월과 상처, 앙금이 한번에 해결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에는 시간이 든다. <목소리의 형태>가 흥미로운 건 갈등을 극적인 사건을 통해 해소하는 대신 그 시간들을 차분히 지켜보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모호한 단어가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관찰한다고 해도 좋겠다.

소년과 소녀가 사랑스러운 건 아마도 유리를 닮아서가 아닐까 싶다. 금방 깨질 듯 여리면서도 속이 투명하게 비친다. 악의도 무심함도 모두 서툰 아이들은 서로를 깨부수지 않고 지낼 만한 거리를 배운다. 우리는 그걸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도망치고 있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면 때론 상처입는 것, 상처입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어갈 필요가 있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잃어가는 그 무모함을 아이들은 가지고 있다. 한편으론 그래서 아이들은 잔인하다. 서로 상처입히고 상처입어가면서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배워나간다. <목소리의 형태>는 뒤늦게 그 과정을 밟아나가는 이야기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향한 마음의 정확한 형태를 알지 못한다. 미안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용서를 받고 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신경이 쓰인다. 그 시절 서로의 마음에 금을 낸 후부터 줄곧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상처를 떠올리게 만드는 서로가 불편하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건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여기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자신의 진짜 모습은 다른 사람과 웃고 즐기고 싸우고 원망하고 용서하는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쇼야와 쇼코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금이 간 유리를 하나씩 붙여나간다. 물론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니다. 이건 금이 가면 금이 간 대로, 상처가 나면 상처가 난 대로 그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투명하고 섬세하게 마음의 형태를 그려나가는 <목소리의 형태>는 오래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러브레터>(1995)가 뒤늦게 개봉하며 안겼던 신선함을 연상시킨다.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함께 청아해지는 기분이다.

<다마코 마켓>

교토 애니메이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의 터치

흔히 ‘쿄애니’라 불리는 교토 애니메이션은 높은 작화 수준과 섬세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는 제작사다. 오리지널 스토리보다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솜씨 좋게 각색하는 걸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다마코 마켓>이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호평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양쪽의 장점을 고루 살려 섬세한 작화와 마음이 정화되는 감각적인 영상을 솜씨 좋게 활용한다. 영화 속 맑은 하늘은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보기에 따라서 한없이 어두운 이야기를 밝고 화사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작화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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