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감독은 ‘노빠’가 아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정책에 반대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노무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다큐멘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이하 민주당) 국민경선에 참여해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영화의 배경이다. 전작 <목숨>(2014)에서 생의 마지막을 화면에 꾹꾹 눌러 담았던 그가 박근혜 정권에서 거의 금기에 가까웠던 ‘노무현’에 도전하게 된 사연을 전한다.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인가.
=2009년 5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그의 추모식에 갔다. 추모식 프로그램이 한순간도 사람들에게 우는 시간을 주지 않더라. 날이 더워서 땀은 흐르는데 눈물은 안 나오고, 감정이 억눌리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쯤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고,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슨 취지로 만들려는지 잘 알겠는데 분위기 파악해라.’ ‘돈이 필요하면 몇 백만원 그냥 빌려줄게.’ (웃음) <목숨>이 끝난 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다시 생각났다. 4년 전 ‘노무현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한 친구가 어떻게 마음이 통했는지 전화를 해와 투자를 하겠다더라. 당장 만나 술 마시자 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돼 제작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노무현입니다> 촬영이 거의 끝나갈 때쯤, 프로듀서인 최낙용 백두대간 부사장님의 지인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생 중에서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을 다룬 이유가 뭔가.
=당시 경선이 3월에 시작해 4월 말, 5월 초까지 진행됐다.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경선이자 국민이 참여한 최초의 경선이었다. 그해 봄이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었다.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신 2009년 5월 23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봉하의 봄’이다. 당시 미디어의 ‘말’들이 자연인 노무현이 내린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그건 이야기의 후반부에 배치하고, 국민경선을 중점적으로 그리는 데 할애했다.
-국민경선 영상 자료를 확보하는 게 우선 과제였을 것 같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경선에 참여하기 전 그의 당내 지지율은 1, 2%도 안 됐다. 그는 2000년 총선 때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동서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버리고 험지 부산에서 출마하지 않았나. 그곳에서 낙선한 탓에 돈도, 조직도 없는 후보였다. 그가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노무현을 다룬 책이 많이 출간됐지만 영화는 시중에 나온 책들보다 훨씬 신선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아서인지 경선 초기에는 신문에 기사 한줄도 나지 않았고, 방송사도 그를 제대로 촬영하지 않았다. 방송사 자료도, 민주당 자료도 대부분 사라졌고, 연설 장면은 거의 없었는 데다 가까스로 확보한 연설 클립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후반작업에서 과거 영상 자료를 복원하고, 색보정하는 데만 한달 넘게 걸렸다.
-국민경선이 이야기의 한축이라면 당시 노무현 캠프 동료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 회원들의 인터뷰가 또 다른 축인데.
=처음에 명계남 선배를 만나 ‘노무현 프로젝트’를 만들겠다고 말씀드리니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밥 먹고 담배 피우면서 “만명은 볼 수 있을까. <JTBC 뉴스룸>에 나올 수 있겠나” 그러시더라. 명계남 선배를 시작으로, 한분씩 차례로 설득하는 데 몇 개월 걸렸다. 노사모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열정과 광기가 대단했더라. 그들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과 시간을 ‘올인’했다. 노무현과 노사모에게 당시 국민경선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충남도지사, 유시민 작가, 조기숙 전 참여정부 홍보수석비서관 등 노무현 캠프의 동지들은 인터뷰에 선뜻 응하던가.
=그렇다. 저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놓으셨는데… 조기숙 전 비서관은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우셨다.
-음악이 장중하고 박진감이 넘치더라. 장영규 음악감독이 맡았는데.
=당시의 열정과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매드맥스> 음악처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웃음) 당시 장영규 음악감독이 다른 상업영화도 많이 작업하고 있었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을 만들어주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바뀐 점도 있나.
=원래는 노무현의 (거짓말, 도덕) 결벽증을 다룰 생각도 했었다. 그 결벽증이 정치인 노무현을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알아갈수록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었다. 승리가 확실한 자신의 지역구(종로)를 버리고 무모한 도전(부산 출마)을 시도하고, 지지율 꼴찌에서 대통령이 된 정치인 노무현의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걸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다.
-5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나. (웃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이 끝난 뒤 열린 뒤풀이 자리에서 명계남 선배가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대단한 작품이 나왔다”고 찬사를 보내주셨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인터뷰이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차기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가 될 것 같다. 그동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다.
<노무현입니다>는 어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당내 지지율이 1, 2%에 불과했던 노무현이 집권 여당(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광기와 열정으로 뭉친 ‘노무현 태풍’이 불었던 국민경선이 이야기의 한축이라면, 당시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또 다른 축이다. 노무현 변호사를 정찰했던 이화춘 국가안전기획부 요원, 변호사 시절부터의 운전사 노수현씨 같은 주변 인물, 명계남 전 노사모 회장을 포함한 노사모 회원들,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유시민 작가 등 캠프 동지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해 노무현을 회상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맑게 웃는 장면조차 보는 순간 울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