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③ “내게는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 <초행> 김대환 감독
2017-05-15
글 : 김현수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김대환 감독은 데뷔작 <철원기행>(2014)으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영화계에 등장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초행>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처음 공개됐다. 이번 영화는 ‘가족’이라는 전작의 주제의식을 포괄하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관계에 주목하고, 연출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에 임한 작품이다. 배우와 공간에 대한 남다른 고민을 안고 시작한 프로젝트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에서 감독을 만나 따끈따끈한 첫 소감을 물었다.

-<철원기행>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춘천, 춘천>(2016)의 장우진 감독과 고향 친구인데 춘천의 순우리말을 뜻하는 ‘봄내’ 이름을 따서 ‘봄내필름’이란 영화사를 차렸다. 창립작인 <춘천, 춘천>은 내가 제작으로 참여하고 두 번째 영화 <초행>은 역할을 바꿔서 장우진 감독이 제작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옥자>의 차기작으로 예정된 <기생충> 시나리오를 진행했다. 감독님이 트리트먼트를 쓰고 내가 각본 작업을 했다.

-데뷔작 <철원기행>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의 갈등을 포괄하는 문제에 주목했다면 <초행>은 임신과 결혼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젊은 커플의 사연에 주목한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더라. 그때는 엄두가 안나더라. 왜 이렇게 결혼이 큰 벽으로 다가올까, 고민하던 와중에 <철원기행>을 편집하다가 연출을 결심했다. 두 사람의 경제적 배경, 결혼 준비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작은 파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과 갈등을 담고 싶었다.

-전작보다 제작 규모를 대폭 줄였다고 들었다.

=<철원기행>과 비교하면 규모를 1/3로 줄인 7명 정도의 소규모 스탭으로 15회차 진행했다. 규모를 줄여야 했던 이유는 촬영 중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다음 신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매번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따라가며 질문하고, 그 대답을 연기로 보여주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 김새벽과 조현철의 조합은 신선하고 잘 어울린다.

=새벽씨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와 <줄탁동시>(2011)에서의 연기를 좋게 봤다. 현철씨는 상업영화에서도 보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모습, 예를들면 그가 직접 연출한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2014)을 보고는 팬이 될 정도로 관심이 갔다. 연기자는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사적으로 만났을 때 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영화 역시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길 바랐고, 평상시 모습을 볼 수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씨와 현철씨가 그런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의 즉흥 연기로 이뤄진 듯한 리얼리티가 생생한 영화다.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어떻게 연출할지 궁금해하더라. 이 영화만큼은 시나리오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갈지가 중요했다. 영화를 거의 순서대로 찍었는데 첫 신을 찍을 때 대화의 디테일을 주지 않아도 충분히 배우들이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 의미에서 <초행>은 시나리오에 대사를 쓴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다. 큰 화두만 던져주면 배우들의 자유의지로 장면과 대사를 만들어나갔다.

-어쩌면 배우들 입장에서는 이런 연출 방향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감독이라는 위치가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확신이 강한 상태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오늘 찍고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불안감과 의지하는 마음이 같이 공존했달까. 어떤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시선 정도가 있었을 뿐 배우들은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불안해했다. 그것이 영화에 어울리고 또 필요한 부분이었다.

-두 배우 모두 특유의 연기 스타일을 지녔다. 그들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것 같다.

=현철씨는 얼굴을 긁적이거나 머리를 만지는 등 평소에 하던 행동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담겼다. 연출자로서 어떻게 연기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영화에 잘 담긴 것 같다.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집념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은 결과다.

-<초행>의 특징이라면 결혼에 대한 공포심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임에도 직접적으로 결혼을 언급하거나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결혼을 마음먹은 이후의 현실적인 부분들은 사실 선명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집을 어디서 구할 것이며, 혼수는 누가 준비할까 등의 돈에 관련한 문제는 어렵지만 눈에 보이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새 출발을 앞둔 이들 주변의 보이지 않는 공기, 두려움과 불안, 갈등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현실 문제를 배제했다. 영화에서 눈에 보이는 두 집안의 경제적 차이 같은 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도 공간과 배경이 마치 캐릭터처럼 중요하게 다뤄진다.

=<초행>은 삼척과 인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2년간 살았던 인천과 외가가 있는 삼척에 대한 추억과 의미를 담고 싶었다. 공간 배경을 인천과 삼척으로 정했을 때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 장소의 일출과 일몰을 각각 담는 거였다. 나한테는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생각해낸 것이다.

-<설원기행>의 연극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연출에 이어 <초행>은 원신 원테이크로 진행됐다. 보다 사실적인 정서 전달에 주목하는 김대환식 연출 문법을 다져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3번째 영화에서도 비슷한 연출 방식을 고수할 생각인가.

=내게는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누군가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빠져나오게 되더라. 고유의 연출법을 고민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설득될 수 있는, 진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초행>은 어떤 영화?

동거 6년차 커플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에게 급작스러운 임신과 더불어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의 시기가 찾아온다. 양가 부모님 댁에 인사를 드리기로 한 두 사람은 각각 인천과 삼척 집을 오가면서 서로의 사랑과 처지,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초행’ 길 위에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 묻기 시작한 두 사람의 여정이 보여주는 정서를 가감 없이 전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주연을 맡은 김새벽과 조현철은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은 두 남녀의 일상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실제 연기인지 구분조차 안 될 정도로 평범하기에 더욱 비범한 순간이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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