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⑤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를 알아가다 - 선호빈 감독
2017-05-1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이렇게까지 반응이 갈릴 줄은 몰랐다.” 선호빈 감독에 따르면 <B급 며느리>를 본 관객의 반응은 정확히 ‘4사분면’으로 나뉜다고 한다. 미혼 여성, 기혼 여성. 그리고 미혼 남성과 기혼 남성.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가장 높은 관객층은 기혼 여성이다. 시어머니의 심정도, 며느리의 심정도 백분 이해된다며 울먹이는 분들이 많았다. 가장 공감대가 낮은 분들? 미혼 남성이다. 도대체 부부가 왜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논쟁작이었던 선호빈 감독의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부 갈등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영화다(감독의 집에서 일어나는 실제 사건을 찍었으므로 이보다 더 적나라할 수는 없다). 아내의 요청으로 고부 갈등을 촬영하기 시작한 선호빈 감독은 이 작품이 “한때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과거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여자를 잘 모르는 남자”가 바라본, 또는 이해하려고 애썼던, 복잡하고도 미묘한 여자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계기로 고부 갈등에 관한 영화를 찍기 시작했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 집에 늘 카메라가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내의 불만 중 하나가 자주 말을 바꾸신다는 거였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증거를 남겨야 한다며 아내가 나에게 어머니를 찍을 것을 요구하더라. 그렇게 두 사람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고, 촬영 소스를 동료 영화인들에게 보여줬더니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며 “이거 꼭 영화로 만들라”고 했다.

-아내와 부모님의 사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이 이야기로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진영이(선호빈 감독의 아내이자 <B급 며느리>의 주인공)는 상관없다고 했다. 나도 이전까지 다큐멘터리를 찍어왔지만 이렇게까지 카메라에 거부감이 없는 캐릭터는 처음 봤다. 가족이 아니라 감독의 피사체로만 놓고 봤을 때에는 거의 이데아에 가까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웃음)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에는 1년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가방에 구멍을 뚫어서 몰래카메라로 어머니를 촬영했다. 그 과정이 내가 보기에도 폭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내가 찍고 있다는 걸 어머니가 알게 됐다. 이걸 영화로 만들면 한강에 뛰어내린다고 하시더라. 왜 영화에도 나오잖나. 며느리가 시댁에 안 오는 걸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민 갔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체면이 중요한 분인데, 가정불화로 영화를 만든다니 오죽했겠나. 사정사정해서 찍었다.

-고부 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면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나.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한 건 진영이가 더이상 시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였다. 그러니 실제로도 만날 일이 없었다. 고부 갈등을 다루면서, 만나서 갈등을 겪는 장면은 거의 없다는 점이 나 역시 걱정되기도 했지만 갈등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갈등의 표출 수위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도 고민의 지점이었겠다.

=맞다. 프로듀서와 편집기사님이 합류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혼자 찍고 혼자 편집할 때까지는 영화의 수위가 훨씬 셌다. 어머니가 졸도하시는 장면이나 내가 진영이와 거의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격하게 싸우는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편집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하는 윤리적인 고민이 생겼다. 촬영 수위가 100이라면 지금의 영화에는 30 정도의 수위를 담았다. 그러면서 영화의 노선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가부장제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냉소적인 느낌의 영화로 기획했다. 결국은 조금 개성 있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로 노선을 정했다.

-영화를 보면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에 머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보면 내가 방관자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다. 하지만 개입이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게, 이 모든 갈등이 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싸울 일이 있었겠나. 나 역시 이 고부 갈등의 당사자다. 그런데 내가 두 사람을 중재하려면 할수록 점점 더 관계가 엉망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진영이가 이러더라. “오빠, 이건 어머니와 나의 문제니 오빠는 빠져”라고. 그 뒤로 두 사람을 중재하려는 생각을 많이 접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노력은 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만들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법하다.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정말 X 같더라. 그리고 가족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친척들이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진영이가 시댁에 가지 않는 기간이 1년이 넘어가면서 갑자기 나를 대하는 시선도 싸늘해지더라. ‘나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대하던, 그 사람들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런 구조 속에서 남자, 손자, 아들로 편하게 살아왔다.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불편함의 감정을 기혼 여성들은 결혼 즉시 경험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내레이션을 썼다가 편집 과정에서 뺀 건데, 이런 뉘앙스의 말을 넣었었다. 그동안 연애도 해보고 결혼도 하며 ‘내가 여자에 대해 알만큼 알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 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점점 더 모르겠는 게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학교와 출교생들간의 갈등을 담은 전작 <레즈>(2011)는 이번 영화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레즈>를 찍을 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감독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다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당시 교내 영화동아리에서 극영화를 찍다가(선호빈 감독은 고려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총학생회 투표권을 둘러싼 교내 갈등에 관심이 생겼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다큐를 만들게 됐다. 앞으로도 다큐‘만’ 만들 생각은 없다. 다큐와 픽션 구분 없이, 내가 감독으로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는 형식을 취할 생각이다.

<B급 며느리>는 어떤 영화?

시어머니에게 진영은 ‘B급 며느리’다. 며느리라면 자고로 집안 대소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믿는 시어머니에게, 명절에도 오지 않는 진영은 며느리로서 낙제점이다. 한편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진영에게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강요하는 시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더이상 시댁에 가지 않는 며느리와 그런 며느리가 못마땅한 시어머니의 고부 갈등은 계속되고, 이들의 남편이자 아들 선호빈 감독은 카메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깊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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