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① ‘이명박근혜’ 시대의 청년 세대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정윤석 감독
2017-05-15
글 : 김성훈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 애국시민 예매하라!’ ‘김구짱! 김구짱! 김구짱! 이승만 병신!’ 정윤석 감독은 전주에 내려오자마자 친구 전상진 감독과 함께 자신의 영화 홍보 현수막을 직접 매달고 있었다. 배급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발적인 현수막 문구를 보니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려고 한다”는 정 감독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2013)에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며 1990년대에 현미경을 들이댔다면 신작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이명박근혜’ 시대를 관통해온 청년 세대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는데, 영화를 본 밤섬해적단의 반응은 어떤가.

=(장)성건(보컬·베이스)이는 부끄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웃음) ‘아수리언’ 권용만(드럼·작사)은 끝까지 <아수라> 홍보에 집중했고, 회기동 단편선은 새로 발매된 자신의 싱글앨범 <러브송>을 홍보했으며, 사진가 (박)정근이는 자신의 블로그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웃음) 이들 사이에서 감독으로서 진지함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망한 것 같다. 관객이 개봉하면 또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굉장히 사랑스럽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밤섬해적단을 카메라에 처음 담은 건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를 찍기 훨씬 전인 2011년이었다. 당시 밤섬해적단의 어떤 면모가 매력적이었나.

=당시 그들의 공연을 봤는데 노래 가사가 강렬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홍대 두리반 투쟁,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비판하고 풍자한 곡들이었다. 소음에 가까운 그들의 노래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한국 사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근혜’의 10년이 보여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느꼈다. <공산당은 죽지 않아> <김정일 만세> 같은 곡들은 듣는 음악보다 ‘읽는’ 음악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저 친구들의 음악을 영화로 번역해주고 싶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밤섬해적단을 소개하는 데 할애한다.

=전반부에서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일단 성건과 용만, 두 친구의 화학작용을 그려내고 싶었다. 소년처럼 노는 진짜 모습 말이다. 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의 투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당시 밤섬해적단과 함께 제주도에 내려가 해군기지 건설을 풍자하는 공연을 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은 것도 그래서다.

-밤섬해적단이 만든 곡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나.

=삽입된 모든 곡들을 추천하지만 그중에서 <똥과 오줌>을 좋아한다. 사실 386으로 대표되는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에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나약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데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정근의 재판에서 용만은 “북한이 똥이라면 남한은 오줌”이라고 대답했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똥과 오줌뿐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나. 한 가지 선택만을 강요했던 현실이 지난날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6년간 주인공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스스로 금기에 도전하는 높은 자존감들이었다. 자존감이 높기에 자신을 “가난뱅이”나 “멍청이”라고 당당하게 호명할 수 있었고, 이러한 단어들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순과 사회적 금기들에 저항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 세대의 새로운 정치성이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지 무척 궁금하다.

-후반부는 사진가 박정근의 트위터 국가보안법 사건(북한을 농담 소재로 삼기 위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멘션을 풍자하는 글을 올렸다가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 대법원은 사진가 박정근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편집자)을 다루는 데 할애한다. 영화의 제작 기간이 길어진 것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나.

=그보다는 중간에 데뷔작 <논픽션 다이어리>도 만들었으니까. (박)정근이가 1심에서 유죄를 받으면서 2심은 분위기가 정말 심각했다. (박)정근이에게 “재판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을 정도니까.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웃긴 걸 왜 웃기다고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변호사는 개인의 행동권이 이념의 잣대로 판단되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왜 좋아하는 걸 했다는 이유로 억압받아야 하나. 트위터에서 하는 농담 또한 표현의 자유가 아닌가. 이 사건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이후에 벌어지는 유사 사건의 판결에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매우 심각하더라. 다행스럽게도 2심, 대법원 판결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다.

-붉은색의 타이포, 과감한 내용의 텍스트, 현란한 모션 그래픽 등 화면을 가득 채우는 다양한 시각적 장치가 노래 가사의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되는데.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세련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 이미지가 이 영화의 미장센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밤섬해적단의 노래를 잘 훔쳐왔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전작 <논픽션 다이어리>와 스타일이 많이 다르더라.

=이 영화를 만들면서 결심한 게 있다. 조금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자. 다음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자기검열이 심했는데 그걸 극복하기 위해 엄청 노력해야 했다.

-다음 작품은 뭔가.

=아직 자세한 내용을 밝히긴 어렵지만,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등 전작이 인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면 다음 영화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어떤 영화?

밤섬해적단은 장성건과 권용만 두명으로 구성된 골 때리는 펑크 자립음악가다. 홍대 두리반 싸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한창이었던 제주 강정마을, FTA 반대 운동 등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사회문제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전반부가 밤섬해적단을 그린 인물다큐멘터리라면, 후반부는 박정근의 트위터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루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놀이의 일환으로 북한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가게 된 박정근 사건은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국가가 개인의 행동권을 어떻게 침해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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