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⑧ 코미디를 통해 영화적 카타르시스 얻는다 -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
2017-05-15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제대로 골 때린다. 피식 웃다가 빵 터졌다가 일순 멍해진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한 고봉수 감독의 <튼튼이의 모험> 얘기다. 존폐 위기에 놓인 지방의 고교 레슬링부 아이들이 뭔가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야기다. 살아 있는 캐릭터와 대사에 간결하고 정직한 화면이 웃기고 짠한 감정을 만든다. <튼튼이의 모험>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지난해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이현주 감독의 <연애담>과 공동수상)을 수상한 <델타 보이즈>와 뗄 수 없다. 같은 배우들과 비슷한 작업 방식으로, 성공보다 실패의 문턱에 보다 가까이 서 있는 이들과 함께 뛰어가는 영화들이다. 영화제 폐막 이후, 서울에서 고봉수 감독을 만났다. 카페 한쪽에서 그는 6월 8일 개봉하는 <델타 보이즈>의 제작기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두 번째 장편을 만들었다. <델타 보이즈>도 9회차 만에 완성했는데 엄청난 작업 속도다.

=올해 2월 촬영에 들어가 열흘간 11회차로 끝냈다. 배우들과 내가 찰떡호흡이라. 전주국제영화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도 “벌써 만들었냐”며 놀라시더라. (웃음)

-실화에 바탕한 <튼튼이의 모험>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지난해 여름쯤 전남 함평중학교 레슬링 선수단을 소개받았다. 한때는 레슬링으로 굉장히 유명했는데 지금은 레슬링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더라. 농촌에서 비인기 스포츠인 레슬링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감독님께 ‘왜 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십니까’라고 여쭤보니 “레슬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 학교조차 레슬링부 운영을 반대하는데 자비를 들여 레슬링부를 유지하고 계셨다. 또 레슬링부 아이들 대다수가 한부모 가정이거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 그로부터 겪는 어려움도 많을 텐데 치열하게 운동하는 모습에 놀랐다. 그들의 무모함에 이끌렸다.

-단편 작업 때부터 함께해온 배우들이 이번에도 출연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난건가.

=이번 영화에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결국 레슬링을 포기하게 되는 진권 역을 맡은 백승환 배우를 작가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이후 배우의 소개로 신민재 배우를, 또 김충길 배우를 알게 됐다. 서로 절친 사이더라. 어렸을 때부터 주성치 영화를 보고 자랐다고 한다. 유머 코드가 딱 맞았다. 운명적인 만남이랄까.

-극영화인데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때가 있다. 즉흥적인 애드리브, 예기치 못한 인물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내 영화에는 항상 비전문 배우들이 등장했다. 이번에 코치 역은 나의 삼촌이 해주셨다. <델타 보이즈>에도 버스 기사로 나오셨다. 고물상 아저씨, 필리핀 출신의 어머니 역 모두 비전문 배우다. 이들과 배우들의 합을 보는 게 즐겁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리허설할 때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시나리오를 잊으라’고 한다. 배우들과 너무 많은 대화를 하면 되레 배우들이 내 생각에 갇힌다. 감독은 배우들이 놀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면 된다.

-롱테이크 촬영이 상당히 많은 것도 그래서인가.

=비전문 배우들이다 보니 편히 연기하도록 카메라가 숨어 있는 게 좋겠더라. 배우들의 호흡을 그대로 살리기에도 더 좋다. 예산의 압박 때문에 컷을 나눠 가기가 힘들기도 하고.

-10대 이야기인데 배우들은 절대 10대로 안 보인다. 그런 걸 영화는 모른 척 넘기려는 것 같은데 그게 또 웃음을 유발한다.

=코미디니까. 고등학생이지만 힘든 아이들이다 보니 나이보다 늙어 보여도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배우들과 ‘우리 같이 다음 영화 만들자!’고 했는데 나이가 대수인가. (웃음)

-배우들이 공동투자하고 연출부에도 이름을 올렸더라.

=십시일반 프로젝트다. 어차피 우리 모두 무명이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끼리라도 찍어보자는 심정이었으니까.

-한 시퀀스에 비슷한 대사가 정말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듣는 사람이 화가 날 지경이다. (웃음) 대사뿐 아니라 특정 장면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반복이 좋다. <델타 보이즈> 때도 밥 먹는 장면이 계속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는 게 반복적이지 않나.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뭔가를 시도해보려고 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왜 그런지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주성치 영화 마니아이고 코미디에 대한 애정도 대단한 것 같다.

=하하하. 영화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수단이라면 나는 코미디를 보면서 그걸 얻는다. 코미디라면 다 좋다.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10년 이상 습작용 영화만 200여편 넘게 찍었다고.

=10대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소니 PD150 카메라를 들고 혼자 촬영하면서 찍는 재미를 알았다. 200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면서 찍은 단편 <A Cup of Coffee>가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어, 이게 내 길인가?’ 싶어 또 찍었다. 돈 없이 촬영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달까. <델타 보이즈>도 250만원으로 찍었으니까. 이번엔 2천만원으로 찍게 돼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오면서 “네가 되겠냐”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버티면서 하고 싶은 걸 하려는 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애정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델타 보이즈>는 백승환 배우가, <튼튼이의 모험>은 김충길 배우가 서사의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신민재 배우 차례다.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멜로물을 준비하고 있다. 주인공의 직업이 현상금 사냥꾼이고 내가 좋아하는 쿠엔틴 타란티노풍의 영화 같으면 정말 좋겠다.

<튼튼이의 모험>은 어떤 영화?

대풍고 레슬링부의 유일한 선수인 충길(김충길)은 레슬링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다문화 가정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진권(백승환)과 하릴없이 빈둥대는 혁준(신민재)을 꼬드겨 레슬링부 부흥을 노려볼 생각이다. 코치인 상규(고성완)의 지도하에 어쨌든 이들의 연습이 시작됐다. 고봉수 감독을 포함해 제작, 스탭 단 4명, 배우들이 연출부를 자처해가며 만든 일당백의 영화다. 감독이 ‘내 인생 최고의 노래’라고 꼽는 크라잉넛의 <튼튼이의 모험>이 영화의 제목이자 메시지다. 결과야 어찌됐든 상관없다. 우리가 좋으면 가는 거다. 그게 <튼튼이의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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