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도, 교육체육관광위원회 소속도 아니다. 국방위원회 소속인 그가 <씨네21>과 함께 지난 7개월 동안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조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정의당 국정농단조사단장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대규모 정부 예산이 투입된 모태펀드가 지난 정권에서 문제를 드러낸 만큼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는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개월 동안 모태펀드를 조사한 소감이 궁금하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합리적 의심의 중요함이다. 지난해 10월 말, 문화예술계에서는 블랙리스트 문건설이 파다했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의 활동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간섭했을까? 정책 자금을 쥐고 뒤흔들지는 않았을까? 이런 의혹을 갖고 실마리를 찾아가던 중에 모태펀드에 주목했고, 실제로 블랙리스트는 투자를 배제하고, 화이트리스트는 집중적으로 특혜를 줬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는 문화예술계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는 보수단체 인사들을 외부 전문위원으로 활용했다는 사실도 찾았다. 나아가 한국벤처투자의 임원을 교체하거나 없던 직위까지 신설하며 문화계의 헤게모니를 뒤바꾸려 했다. 무심히 보면 모든 건 무심히 놓여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뭔가.
=참여하는 시민이 세상을 바꾸는 원천임을 새삼 확인한 벅찬 시간이었다. 모태펀드 추적은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게 아니다. 광장의 촛불시민이 존재했기에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정책 결정과 집행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언제든지 그 권한을 환수할 수 있다. 주말마다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나와 촛불을 높이 들었다. 사실의 너울 속에서 진실을 찾는 항해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역시 합리적 의심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할 수 있었다.
-모태펀드의 문제점 중 하나는 투자조합의 설립 취지와 무관한 회사(나 콘텐츠)에 투자되는 펀드가 많아 보인다는 건데.
=왜 모태펀드는 이러한 악용에 쉽게 흔들릴 수 있었을까, 근본적으로 취약한 지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또 다른 합리적 의심을 갖고 조사를 해나가던 중, 모태펀드의 중요한 한계를 발견했다.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투자사의 자금도 함께 출자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이라든지 시장에서의 영업 비밀을 사유로 들어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국회에서도 모태펀드가 어디에 얼마나 투입되고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큰 것도 그래서다. 국내 벤처 기업 육성이라는 취지와 달리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사례가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아직 <씨네21>과 함께 취재 중이라 섣불리 공개하긴 어렵지만) 투자사의 부당한 투자 사례나 담합에의 정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투자자의 준칙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 처벌도 가능하지만 한국벤처투자는 자료를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듯이 모태펀드와 한국벤처투자는 감사원의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검열에 따른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공적 자금의 윤리적 투자 준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5월 초 계획됐던 한국벤처투자의 2차 정시 출자 사업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모태펀드가 ‘제이노믹스’에서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나.
=모태펀드는 기업 투자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기기 어렵다는 한계를 발견했기 때문에 생겨난 제도다. 잠재적 가치는 인정되지만 당장의 성과를 보장하기 어려운 신생 벤처 기업은 시장에서 외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먼저 종잣돈을 마련한다면 민간 투자사 입장으로서는 정부가 손실에 대한 완충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해당 벤처 기업 역시 정부 정책에 부합하여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최소한의 이익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블랙리스트 투자 검열에서 드러났듯이 모태펀드는 두가지 근본적 모순에 직면해 있다. 정책 자금이라는 특성상 정부가 개입하면 블랙리스트 검열과 같은 시장 간섭이, 반대로 시장의 논리만 좇으면 해외 기업에 투자가 집중되는 등의 정책 왜곡이 발생한다. 모태펀드를 통한 중소·벤처 기업 육성은 언제나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자금지원 정책을 통해 단기에 성과를 이뤄내겠다는 조급함을 버리라는 거다. 비전은 창대하더라도 현재 드러난 문제점부터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통치의 정도일 것이다.
“종합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모태펀드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나 아이디어는 없나.
=모태펀드의 구조적 한계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지적한 특정 기업에 특혜에 가까울 정도로 투자하는 행태를 살펴보자. 민간 투자사간에 담합 의혹이 제기되지만 중복 투자가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모태펀드를 비롯해 지자체 펀드, 성장사다리 펀드 등 중소기업에 지원되는 정책 자금이 2017년 올해만 1347개 사업에 16조6천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행정부처는 행정부처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각각의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중소기업 정책이 통합적으로 집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즉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만 따르기보다는 예산이 특정 부분에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소외되는 곳은 없는지 등의 현안 파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하다. 아마 그 역할을 새롭게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또한 실패를 인정하는 문화가 폭넓게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시장은 항상 수익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정부가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걸 시장 간섭이라 생각하고 상당히 불편해하는데, 뒤집어보면 시장이 중소·벤처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개발에는 성공하더라도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소수의 기업에만 투자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태펀드 등의 정책 자금이 ‘중소·벤처 기업에 투자를 확대한다’라는 수준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중소·벤처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사업화에 실패했을 때 밟을 수 있는 로드맵이나 연구개발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이드라인, 그리고 연구개발로 확보한 특허기술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될 수 있는 방안 등이 병행 제시되어야 중소·벤처 기업의 양적·질적 성장이 모두 가능할 것이다.
-국방부도 모태펀드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국방 분야에서 모태펀드가 어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나. 그리고 국방위원으로서의 계획은 뭔가.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모태펀드-국방계정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방산육성자금 지원사업’과 ‘국방중소기업 정책 자금 지원사업’과 무엇이 다른지 선명하지 못해 내부에서도 보류 의견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방부에서도 반드시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므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게 급선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5월 25일 목요일에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안(군대 내 이성군인간, 동성군인간 성폭력 및 군인에 의한 성폭력, 공연성 있는 음란행위를 처벌하고 있으나 폭력성과 공연성이 없는 동성간 자유 성행위까지 처벌하고 있으므로 이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한다. 새로운 정부 출범에 맞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간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10명의 국회의원이 어렵게 힘을 모았다. 용기를 내서 발의에 참여해준 의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 국회의원들이 심정적으로는 개정안을 지지하지만 종교단체의 반발 등으로 참여하지 못한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총대를 메겠다. 힘껏 지지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