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화제작 가이드 ① 논란 속에 첫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옥자> 리뷰
2017-05-31
글 : 이화정
취재지원 : 최현정 (파리 통신원)
봉준호 감독.

<옥자>는 강원도 산골의 어린 소녀 미자(안서현)가 자신이 키우던 ‘슈퍼돼지’ 옥자를 찾아나서는 모험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물이다. 하마와 돼지를 섞은 듯한 거대한 동물인 옥자는 뉴욕의 미란다 주식회사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한 신품종 가축이다. 다국적 기업 미란다 코퍼레이션의 최고경영자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는 친환경 시스템을 내세워 회사를 적극 홍보하고 나선다. 슈퍼돼지는 청정지역인 강원도 산골 같은 농가에서 키워진 ‘싸고 맛 좋은’ 자연산 돼지로 둔갑한다. 교배를 통해 탄생한 26마리의 돼지는 전세계 농가에 보내져서 길러지는데, 옥자도 그중 하나다. 회사는 10년 후, 최고의 품종을 선별하기 위한 콘테스트를 개발하고 옥자를 다시 데려오려 한다.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산골에서 사는 미자에게 슈퍼돼지 옥자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이다. 루시의 위협 앞에서 옥자의 죽음을 막으려는 미자는 탐욕스런 동물학자 조니(제이크 질렌홀)와 제이(폴 다노)를 필두로 한 동물보호단체(ALF) 등과 엮이면서 쫓고 쫓기는 여정을 펼친다.

<이웃집 토토로>와 <E.T.> 그리고 <옥자>

<옥자>에는 많은 작품들이 엿보인다. 온전히 숲에서 살아가는 미자와 옥자의 우정을 통해 자연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이들이 도심으로 나와 고초를 겪는 과정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친환경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거대한 옥자와 뒹굴며 노는 미자의 모습은 <이웃집 토토로>에서 본 귀여운 이미지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돈을 좇는 어른들에게서 옥자를 보호하려는 미자의 모험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대표하는 루시에 맞서는 어린 소녀의 모험은 로알드 달의 동화와도 똑 닮아 있다. 숄더색을 불끈 메며 옥자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리문으로 돌진하는 미자의 액션 신은, 자본의 탐욕으로 오염된 지구상에 마지막 남겨진 순수하고도 강렬한 몸짓으로 읽힌다.

더불어 봉준호 감독의 작품 안에서 <옥자>는 <괴물>(2006)의 할리우드 버전에 가까워 보인다. <괴물>이 블랙코미디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보다 씁쓸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면 <옥자>는 식량, 가축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에 만연해 있는 인간의 욕심, 탐욕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옥자 역시 방사능 실험을 하던 중 독극물의 무단 방출로 태어난 괴물처럼, 인간의 욕심으로 한껏 몸집을 부풀린 변종 생명체다. 옥자가 미란도 일당의 추격을 피해, 동물보호단체와 서울 동대문의 지하상가를 누비는 추격전은 <괴물>의 초반에 등장하는 한강 괴물 습격 장면을 감독이 자기 패러디하고 있는 듯 시종 경쾌하게 구현된다. 옥자를 둘러싼 인간들에게서 봉준호 감독은 무조건의 비난보다는 풍자의 시선을 보탠다. 옥자의 유전자를 이용하려는 루시나 조니, 문도(윤제문) 등의 캐릭터를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우스꽝스럽고 어수룩하게 그리고 있다면, 옥자와 미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동물보호단체 역시 유연하지 못한 꽉 막힌 행동을 부각시켜 비판의 지점을 안겨준다.

한바탕의 난장 끝에 <옥자>는 후반부에 이르러 톤을 달리하는데,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무수한 ‘옥자들’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도축장의 압도적인 풍경은 다리우스 콘지의 촬영을 통해 섬뜩하게 화면에 제시된다. <델리카트슨 사람들>(1992),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1996)에서 보았던 다리우스 콘지 특유의 음울한 기운이 맞물리면서, 전반부의 톤에서 벗어난 영화의 비장미를 한층 더해준다. 인간이 먹고 소비하지만 육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주하는 것은 ‘보기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는 체험이다. 마치 한강에서 <괴물>의 은신처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그러니 채식주의자건 아니건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고기를 먹는 건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 같다. 특히 옥자를 단순히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 인지하는 어린 소녀 미자의 눈으로 이 모든 광경이 목도됨으로써, 처참한 광경은 더 극명하게 표현된다.

<옥자>

‘칸의 결정’은 어떨까

<플란다스의 개>(2000), <괴물>, <설국열차>(2013)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의 코드를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지만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6번째 작품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상당히 낯선 톤의 영화다. 제시하는 주제의 심각성에 비해 코믹, 액션 어드벤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영화의 톤은 다소 경쾌하게 구축되어 있다. 지향점 자체가 모두가 함께 즐길 만한 할리우드 가족 어드벤처에 맞추어져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옥자를 찾아나서기까지 옥자와 미자의 끈끈한 감정선 구축이 다소 헐거운 점, 캐릭터들의 희화화로 인해 설득력이 다소 약한 점 등 드라마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아쉬운 지점을 남기기도 한다.

공개 후 현지반응은 찬반이 엇갈린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황금종려상에 적절치 않다”는 말로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수상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옥자>는 이번 ‘칸의 결정’으로 해석될, 뜨거운 선상 위에 놓여 있다.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솜씨는 사라지지 않았다_<옥자>에 대한 외신 리뷰들

<가디언>_ “어떻게 이 영화의 제작자가 조그마한 스크린용 콘텐츠를 선보이는 넷플릭스인가. 디지털 효과는 장관이고 비주얼은 아름답다. 이 작품을 아이패드용으로 줄이는 건 끔찍한 낭비다. <괴물>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크리처 영화인 동시에 사랑스러운 가족용 액션 어드벤처 영화다.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며 사랑스럽다.”

<르 푸앙>_ “확실한 건 <옥자>가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걸작이라는 말이 아니다. 영화는 분명 단점도 있고, 불만스런 부분도 보인다. 특히 예측 가능하고 끈적끈적한 감성주의에 호소하는 엔딩이 그렇다. 하지만 어린 소녀와 옥자라 불리는 이상한 동물과의 우정을 다룬 이 웃긴 이야기는 감독의 참신함과 자조적 시선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봉준호 감독은 장르의 코드를 능숙하게 차용하고 이들을 전복시켜, 웃기면서도 섬뜩한 동시대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텔레라마>_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솜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장면들이 많고, 무례한 유머도 그대로다. 영화는 동물 학대와 이를 은폐하는 마케팅 방식을 고발한다. 하지만 이 좋은 의도는 등장인물들을 점점 더 싫증나게 하는 뻔한 존재로 변형시킨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관객의 마음에 모두 들 수는 없다. 하물며 이게 독창성을 잃었을 땐 말이다.”

<버라이어티>_ “다리우스 콘지가 촬영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 안에서 그 누구도 옥자를 실제 동물이 아니라고 상상할 수 없다. 훌륭한 CG 기술이 의심을 중단시킨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과는 완전히 다른 크리처 영화다. 그럼에도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독극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나쁘다, 육식은 살인이다, 라고 같은 방식으로 인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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