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의 광풍이 휩쓸고 간 뒤, 라이언 고슬링의 신작을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단 10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를 위해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서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도 달콤했다. 물론 피아노를 치고 탭댄스를 추는 로맨틱한 세바스찬을 기대한 건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에 맞게 변화된 배우를 보고 싶은 동시에 6살 때부터 할리우드에서 배우로 성장해온 그가 선택한 첫 블록버스터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다. 솔직히 그냥 이토록 핫한 배우를 핫한 순간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게 단 10분이어도 좋았다. 10분동안 마치 스피드 데이트를 하듯 나눈 인터뷰였다. 개인적인 질문도 할 수 없었고, 영화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라이언 고슬링의 말로 듣고 싶었던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9월 14일, 일대일로 진행된 인터뷰를 전한다.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여러 인터뷰에서 표현해왔다. 하지만 새 영화가 기대만큼 좋지 않을 확률도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확신이 있어서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출연했나.
=확신할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멋진 이야기와 캐릭터, 훌륭한 스크립트, 내가 존경하던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
-주저하거나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나.
=없었다. 리들리 스콧과 햄프턴 팬처는 오리지널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만으로도 완벽한데, 해리슨 포드도 함께하니 논쟁할 필요도 없었다.
-해리슨 포드라는 배우계의 레전드와 함께 일하는 건 어땠나.
=해리슨은 경험도 많지만 그만큼 재능도 타고났다. 그런 사람과 함께 연기한다는 건 영광이다. 수십년이 지난 뒤 자신의 나이 든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아직도 그가 촬영장에 나타난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바로 ‘블레이드 러너’이기 때문이다. 릭 데커드 요원을 연기하는 해리슨 포드와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에 출연한 첫날은 최고의 날이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그는 배우의 연기가 좋았을 때 “깊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로 유명하다.
=드니 빌뇌브는 감독에게 배우가 바랄 수 있는 그 자체다. 야망이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다. 협업이 가능한 사람이며 겸손하다. 테이크가 좋았을 때 “당신의 연기를 깊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많이 들었나?) 많이 들었다. 때로는 “깊이, 깊이 사랑한다”고 하기도 했다. (웃음) 그리고 어쩌다 한번쯤 그가 “깊이”를 3번 말할 때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위해 리들리 스콧도 직접 만난 적이 있나.
=물론이다. 정말 운좋게도 리들리 스콧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영화의 스크립트를 읽기 몇년 전이었다. 그때 리들리는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는지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는 그저 <블레이드 러너> 팬으로서 영화의 감독으로부터 업데이트를 들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이른바 초대형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맞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예산이 많다고 해서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닌데. (웃음) 우연히 이 영화가 내 출연작 중 가장 비싼 영화가 됐다.
-<드라이브>(2011), <라라랜드>에 이어 또 한번 로스앤젤레스가 영화의 무대다.
=로스앤젤레스는 자라면서 시간을 보낸 도시다. 내겐 곳곳이 익숙하다. 특히 어려서는 <블레이드 러너>에 심취해 룸메이트와 함께 다운타운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릭 데커드 요원이 된 양 돌아다니곤 했다.
-영화에서 당신의 캐릭터는 ‘오피서 K’다. 이름도 비밀스러운데, 감정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이면서 복제인간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특별히 참고한 영화나 책, 캐릭터가 있나.
=리들리 스콧과 햄프턴 팬처라는 원작의 창작자들이 만든 스크립트 안에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따로 참고할 것은 없었다. 감독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스크립트에 드러난 그의 비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방대한 영화다. 그런 만큼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가 영화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내겐 중요한 과제였다. 그가 본 세상, 그가 느낀 세상을 내가 맡은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예고편과 영상에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영화는 큰 관점에서 볼 때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정체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블레이드 러너> 때부터 캐릭터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이론들은 끊이지 않았다. 릭 데커드가 복제인간인지 아닌지를 두고 리들리 스콧과 해리슨 포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복제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이 영화 안에서 두 가치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다. 인간과 복제인간, 영웅과 악당의 경계가 흐릿했던 오리지널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는 복제인간이 인간보다 더 인간답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는 꿈의 직업은 아니다. K가 블레이드 러너가 된 이유가 있나.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답할 수 없다. 답은 영화에 있다.
-K를 움직이는 감정은 무엇인가? 무엇이 2049년에 K를 블레이드 러너가 되어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모험에 뛰어들게 하나.
=그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다.
-K에게 행복한 순간이 있기는 한가.
=물론이다. 그가 사는 세상은 냉혹하고 잔인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K가 기쁨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고통 속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테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K가 복제인간일 거라는 의혹도 커졌다. 지금 그 답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 의혹에 대해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세계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