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베일 벗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둘러싼 기대와 짐작
2017-09-25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드디어 미래는 도래했다

지난 9월 14일, 캘리포니아 컬버시티에 위치한 소니픽처스 스튜디오에선 기자들을 초청해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미공개 영상을 몇편 공개했다. 모두 더하면 30분 정도 길이의 토막난 영상을 보기 위해 기자들은 휴대전화를 밀봉했고 비밀유지 서약에 서명했다. 그만큼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경비는 삼엄했다. 전편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한 데다 오리지널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가 캐릭터의 30년 뒤를 연기하기 위해 돌아오기도 했으니 이 영화의 혈통을 의심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라라랜드>(2016)로 커리어의 정점에 선 라이언 고슬링의 차기작이라는 점,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콘택트>(2016) 등 내놓는 신작마다 잔혹하면서도 우아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까지, 제작사가 이 영화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손가락으로 꼽기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이날 관람한 영상들을 근거로 영화에 대한 기대와 짐작들을 풀어놓는다. 비록 영화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영상을 본 것에 불과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진심으로 기대되는 영화다. 가능하면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전편으로부터 35년이 지나 만들어진 속편이며, 영화 속 시간의 흐름으로는 30년 뒤를 그리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지나간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짧은 몇줄의 자막으로 대신한다. 복제인간의 반란으로 제조가 금지된 타이렐사가 파산한 뒤, 니앤더 월레스(자레드 레토)의 월레스 인스티튜트가 오직 복종만 가능한 복제인간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통제에서 벗어난 복제인간들을 ‘퇴직’시키는 ‘블레이드 러너’들은 2049년에도 활동 중이다. 영화의 무대인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 소속된 블레이드 러너가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오피서 K다. K는 긴 가죽 코트를 입고 낡은 고철로 만들어진 공중 부양 자동차를 타고 복제인간의 뒤를 쫓는다. 그는 업무 중에 복제인간의 머리카락을 발견하는데, 관련 기록을 찾기 위해 월레스 인스티튜트를 찾아간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와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즘으로 꾸며진 월레스 인스티튜트에서 머리카락을 내미는 K에게 직원은 기록학자들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대사를 말한다. “대정전 이후 남아 있는 건 종이에 기록된 것들뿐이었어요. 모든 것이 사라졌죠.” K가 사건을 발견한 머리카락의 DNA로 꺼낸 기록은 전편인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레이첼(숀 영)과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의 일부분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해 레이첼이 복제인간인지 아닌지 알아냈던 바로 그 대화다. 그리고 이 기록을 열람한 이유로 K는 월레스 인스티튜트의 요주의 인물이 된다.

이렇게 영화는 전편과의 연결을 툭툭 던져놓는다. 아마도 영화가 개봉하면 더 많은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블레이드 러너>를 잇는 가장 견고한 연결고리는 릭 데커드다. 운좋게도 해리슨 포드는 릭 데커드의 30년 뒤를 다시금 연기하게 됐다. 과거의 캐릭터를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난 뒤에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그것도 한편 아닌 두편의 다른 영화에서 말이다. 몇해 전 해리슨 포드가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살아난 것도 그의 행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릭 데커드는 “행운”이라는 한글이 적힌 건물에 몸을 숨긴 채 살아간다. 이런 릭을 K가 찾아내는데 둘이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총격전이 시작된다. 영화정보 사이트의 줄거리에 따르면 “도시 전체를 카오스에 빠뜨릴 수 있는 사실을 알아낸” K는 도시의 군사력을 통제하는 월레스 인스티튜트에 쫓기는 중이다. 월레스 인스티튜트의 수장은 니앤더 월레스지만 실세는 니앤더 월레스의 수족인 복제인간 러브(실비아 혹스)다. 러브는 K를 돕는 듯하지만 실은 K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K가 복제인간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와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도 K와 러브의 대화에서 밝혀진다. 복제인간의 소유주가 블레이드 러너라는 설정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정체성에 관한 영화”라는 라이언 고슬링의 말에 의미를 더한다. 영화 초반에 K가 추적하는 복제인간 새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은 육중한 체격으로 종일 몸 쓰는 일을 하는 하층민처럼 보이지만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책 <권력과 영광>을 친하게 지내는 소녀에게 선물하는 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새퍼를 죽이러 온 K는 그의 허름한 공간에 앉아 그가 일과를 마치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이런 K의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는 새퍼의 얼굴 때문인지 인간과 복제인간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대해 영화가 펼쳐낼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사실 영상 몇편을 통해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알아내는 것은 수면 위의 빙산을 보고 그 아래를 짐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구현해낸 미래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황폐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매혹적인지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가능한 한 큰 스크린에서 관람하고 싶다. <콘택트>에서 우주선이 등장하는 장면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과 경이로움을 이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한 조각상이 버려진 사막 장면이나 바퀴벌레처럼 묘사된 하층민들이 우글거리는 도시 장면이 그러하다.

친절한 <블레이드 러너 2049> 프리퀄 설명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다뤄지는 핵심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프리퀄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전편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49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전제하는 사건들을 설명하는 일종의 팬서비스인 동시에 리들리 스콧이 고 토니 스콧과 함께 준비했던 <블레이드 러너>의 프리퀄 격인 단편 <퓨어폴드>의 실현인 셈이다.

영화의 개봉 전까지 모두 공개될 프리퀄 3편은 중요한 캐릭터가 관련된 세개의 사건들을 각각 보여준다. 9월 17일을 기준으로 단편 3편 중 공개된 건 2편이다. 8월 30일 아이튠즈 트레일러,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2036: 넥서스 던>은 리들리 스콧의 아들인 루크 스콧 감독이 연출한 5분 길이의 단편으로, 법으로 금지된 복제인간을 다시금 제조하려는 니앤더 월레스의 이야기다. 니앤더는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복제인간을 선보인다. 범법행위라며 흥분한 관료들 앞에서 복제인간은 니앤더의 명령에 따라 주저없이 목숨을 끊는다. 역시 루크 스콧이 연출한 두 번째 단편 <2048: 노웨어 투런>은 9월 14일에 공개됐다. 시간적으로 영화 직전의 사건을 다루며, 복제인간인 새퍼 모튼의 이야기다. 도망 중인 복제인간 새퍼는 사막지역에서 애벌레 농장을 운영하며 작물을 팔기 위해 때때로 도시에 나오는데, 어느 날 우연한 다툼에 휘말려 사람을 죽이고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곧 공개될 세 번째 프리퀄은 <블레이드 러너 블랙아웃 2022>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이야기로, 영화 속과 같은 디스토피아가 건설되기 전 모든 기록이 사라진 대정전을 다루는 단편애니메이션이다. <카우보이 비밥>(1998), <마크로스 플러스>(1994)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 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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