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Last Child
신동석 / 한국 / 2017년 / 123분 / 뉴 커런츠
고등학생 아들 은찬이 물놀이 중 친구 기현(성유빈)을 구하고 익사한다. 은찬의 부모는 의사자가 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마침 은찬의 아버지 성철(최무성)은 기현이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이 구한 목숨이 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성철은 기현에게 일을 가르친다. 어머니 미숙(김여진)도 차츰 기현에게 마음을 열고 아들같이 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현의 입에서 뜻밖의 진실이 폭로된다. 은찬의 죽음에 대한 기현의 고백은 성철과 미숙을 혼란에 빠뜨린다.
<살아남은 아이>의 영화적 긴장은 전복에서 비롯된다. 진실이 뒤집혔을 때 입장의 전복, 역할의 전복 또한 발생한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 부모의 심정에 집중하던 영화는 은찬이 불미스런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기현이 가해자가 됐을 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진실을 대면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용서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잘 기억하고 잘 추모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처럼 흘러가던 영화는 결국 잘 용서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익사한 고등학생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가 연상되며, 주제나 표현의 측면에선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이 연상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인물의 심리에 밀착한 영화인 만큼 카메라는 배우들에 바짝 다가서는데, 부모 역할을 소화한 최무성과 김여진 두 배우가 영화의 무게를 단단히 지탱한다.
<대불+> The Great Buddha+
후앙신야오 / 대만 / 2017년 / 104분 / 아시아영화의 창
불상을 만드는 공장에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피클은 반백수인 친구 벨리 버튼과 재미로 사장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사실상 그들이 보는 건 달리는 도로 위의 풍경뿐이지만 차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 등 ‘소리’를 통해 내부의 상황을 상상하는 재미가 크다. 그 재미에 맛들인 피클과 벨리 버튼은 옆좌석의 여성이 수시로 바뀌는 사장의 사생활을 미니시리즈 드라마 보듯 시청한다. 그러다 결국엔 보지 말았어야 할 상황을 목격하고, 두 사람은 곤경에 처한다.
흑백으로 흘러가던 영화가 컬러 영상으로 바뀌는 순간은 블랙박스 영상이 재생될 때다. ‘건전한’ 블랙박스 화면 위로 음담패설이 얹히고, 그 영상을 보면서 흥분하거나 감탄하는 피클과 벨리 버튼의 바보 같은 표정이 압권이다.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모습에 포개지는 건 불상을 만들어 큰돈을 벌면서 그 돈으로 불경한 일을 밥 먹듯 저지르는,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이다. 쓸쓸한 장례식 풍경마저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뚝심 있는 유머, 기막힌 풍자가 이 영화의 힘이다. 대만 감독 후앙신야오의 놀라운 장편 데뷔작이다.
<주피터스 문> Jupiter’s Moon
코르넬 문드루초 / 헝가리, 독일 / 2017년 / 123분 / 월드 시네마
시리아 청년 아리안은 국경을 넘던 중 총상을 입고 난민수용소에 수용된다. 뒷돈을 받고 수용소의 난민을 빼내주던 속물적인 의사 스턴은 우연히 아리안의 공중부양 능력을 목격하고 그와 함께 수용소를 빠져나온다. 스턴은 아리안에게 국경을 넘다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약속은 뒷전이고 아리안을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기만 한다. 스턴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아버지를 찾아나서기로 한 아리안은 그러나 테러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쫓기는 신세가 되고, 스턴은 그런 아리안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상황 속으로 뛰어든다.
영화의 오프닝. 국경을 넘기 위해 닭장차에 실려가는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을 보여줄 때만 해도 이 영화가 판타지 장르와 결합하리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곧이어 위기 상황에서 공중부양하는 아리안이 등장하면 예상치 못한 전개와 놀라운 시각효과에 충격을 받게 된다. 버려진 개들의 역습을 그린 전작 <화이트 갓>(2014)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은 이번에도 시리아 난민 문제와 테러 문제를 할리우드 버디무비와 히어로영화의 공식을 차용해 풀어내는 과감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공중부양한 아리안이 마치 천사가 된 듯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숏이나 아리안이 무지몽매한 인간에게 고통받는 신처럼 묘사되는 지점에선 종교적 색채가 두드러지기도 하지만 영화의 전복적 상상력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으로, 호평과 혹평을 고루 받은 문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