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③] <뽀빠이> <오케스트라 클래스> <그림자들이 지는 곳>
2017-10-09
글 : 김소미

<뽀빠이> Pop Aye

커스텐 탄 / 싱가포르, 대만 / 2017년 / 104분 / 아시아영화의 창

어린 시절에 우정을 나눴던 코끼리 뽀빠이를 방콕 도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중년 남성 타나는 코끼리와 함께 삼촌의 시골집으로 떠난다. 전반부에선 유랑하는 현재와 떠나기 직전의 불행한 상황들을 교차하는데, 꽤 경쾌한 코미디의 리듬에 가깝다. 한때는 잘나가는 건축가였지만 어느새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 타나는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뎌진 감각들에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마치 관문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는 특징적인 인물의 출현도 흥미롭지만, 사실 이 로드무비의 성격을 더욱 크게 지배하는 것은 코끼리라는 거대한 동물 그 자체다. 거의 맨몸에 가까운 상황에서 코끼리와의 동행이 주는 불편함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지나치게 느리고 육중한 도보 여행의 피로감이 눅진하게 이어진다.

세대 교체, 도시 개발과 같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 앞에서 방황하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영화는 TV광고나 건설 홍보 영상 등을 과감하게 삽입한다. 이 부분에선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가 성글게 대구를 잇는 점을 눈여겨봐도 좋겠다. 영상 매체의 놀랍고 섬뜩한 변화가 곧 타나에게 요구되는 적응의 강도를 대변한다. 그럼에도 <뽀빠이>가 시간에 응답하는 방식은 애잔한 향수나 감상에 젖는 대신 뽀빠이처럼 굳센 힘을 다짐하는 쪽이다. 종종 화면을 가득 메우는 코끼리의 얼굴이 기묘한 비현실감과 함께 뭉클하게 마음을 잡아 끈다. 커스텐 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33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극영화 부문 각본상을 수상했다.

<오케스트라 클래스> Orchestra Class

라시드 하미 / 프랑스 / 2017년 / 102분 / 월드 시네마

알제리인 아버지를 둔 바이올리니스트 시몽(카드 므라드)이 이민자 사회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을 전파하는 과정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학생들 각자의 재능이나 자기 계발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특히 언제나 묵묵히 연습하고 선생님 대신 아이들을 이끄는 뛰어난 소년 아르노의 등장이 극에 온기를 더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소통의 은유로서 강조된다. 그래서인지 점차 연주 실력이 향상될 때 느낄 수 있는 음악영화 특유의 카타르시스 대신 때때로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아이들의 대화가 더욱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영화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인물들의 얼굴이다. 영화는 바이올린 선율이 이끌어내는 반응, 대화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장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림자들이 지는 곳> Where the Shadows Fall

발렌티나 페디치니 / 이탈리아 / 2017년 / 100분 / 플래시 포워드

스위스를 배경으로 ‘예니셰’라 불리는 방랑 민족의 박해를 다룬 작품. 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예니셰족 아이들을 병원에 감금, 교육시키고 스위스의 일반 가정에 입양 보냈던 정책의 피해자들을 비춘다. 안나는 자신이 자라온 병원이 요양원으로 바뀌면서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안나가 그 공간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정작 안나를 찾아온 것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 속의 한 여인이다. 폐쇄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지닌 안나의 성격을 비롯해 그가 요양원에서 새로운 억압이나 권위를 만들어내고 있는 점 등이 캐릭터의 심리적 깊이를 더한다. 숨겨져 있던 정보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서사의 전개가 주는 긴장감도 주요하게 작용한다. 하나의 공간을 관통해온 긴 시간을 유려한 미장센으로 엮어내고, 영화를 지배하는 무거운 공기를 엄격히 유지하는 연출력 또한 돋보인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데이즈 섹션에 소개된 발렌티나 페디치니 감독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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