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①] <죄 많은 소녀> <쪽빛 하늘> <미래로 걸어가다>
2017-10-09
글 : 김현수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

김의석 / 한국 / 2017년 / 113분 / 뉴 커런츠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자살사건의 의문을 파헤치던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의 근원과 마주하게 된다. 경민(전소니)의 자살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경민의 친구인 영희(전여빈)와 한솔(고원희) 사이에 말 못할 사연이 있음을 눈치채고 두 사람을 추궁한다. 경민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던 엄마(서영화)는 딸의 친구들을 한명씩 찾아가 진실을 토해내라며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를 견딜 수 없던 영희는 경민의 장례식날, 자신의 결백을 단박에 이해시킬 사건을 모의한다. 영희는 자신의 행동이 예상과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에 당황하고 아이들은 또 다른 주모자 혹은 희생양을 찾아내야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직감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통념과 질서를 벗어난 아이들만의 세계를 결코 인정하지 못하고 뭐든 양보할 생각도 없다. 이에 상처받은 소녀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더 큰 상처를 내는 악수를 두면서 세대간의 아픔이 충돌하고 만다. <죄 많은 소녀>는 교실이라는 소우주 안에서 세상과 동떨어져 안전하다고 여기던 아이들의 세계가 무너져버리는 순간에 벌어지는 비극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 전체의 호흡과 정서를 팽팽하게 나눠지고 가야 했을 영희 역의 전여빈과 엄마 역의 서영화 배우의 표독스러운 연기가 매 순간 감탄을 자아낸다.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상처 입은 아이들이 필사의 반격을 도모하는 결말은 지난 몇년 동안의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비운의 정서를 담고 있다. <죄 많은 소녀>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10기 작품으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출부로 활동했던 김의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쪽빛 하늘> Somewhere Beyond the Mist

청킹와이 / 홍콩, 중국 / 2017년 / 86분 / 뉴 커런츠

17살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홍콩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사건 용의자 코니는 자신의 학교 친구인 에릭과 함께 인근 댐에 사체를 유기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그녀를 조사하던 수사관 안젤라(등려흔)는 태연하게 범죄 사실을 시인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소녀의 얼굴을 보며 뭔가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런데 수사관 안젤라에게도 말 못할 집안 사정이 있다. 평생 의사로 살아왔던 아버지가 심각한 치매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증상이 너무 심각해 가족들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직장에서는 심각한 사건 수사에 의한 스트레스로, 집에서는 치매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매 순간 미쳐 버릴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는 소녀 코니의 눈빛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2013년 홍콩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는 <소년 KJ>(2008), <하나의 국가, 두개의 도시>(2011) 등의 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던 청킹와이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다. 영화는 코니의 상세한 진술을 통해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과 안젤라의 갑갑한 일상을 교차시키면서 다른 듯 같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홍콩 사람들의 현실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부모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아이들을 연기한 두 신인배우의 연기가 무시무시하다.

<미래로 걸어가다> Walking Past the Future

리뤼준 / 홍콩, 중국 / 2017년 / 128분 / 아시아영화의 창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가족의 생계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미래를 보장해줄 돈을 간절히 원하지만 도시의 자본은 결코 그들에게 미래를 내다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부모와 함께 고향 간쑤성을 떠나 경제특구인 선전에서 어렵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야오팅(양자산)에게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몸을 다쳐 당장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매일 값이 치솟고 있는 아파트 분양 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짧은 기간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임상실험 아르바이트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야오팅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점점 위험한 선택을 자초한다. 당장 내일의 일거리도 보장되지 않은 팍팍한 노동자의 삶을 사는 도시 청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미래가 없다. 리뤼준 감독은 눈부시게 성장하는 중국의 경제 발전 속에서 점점 망가져가는 기성세대의 삶을 다룬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미래로 걸어가다>는 도시라는 미래에 볼모로 잡힌 채 결국에는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삶의 무게에 집중한다. 중국이 내다보는 미래가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에게 보장된 시간인지를 따져 묻는 영화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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