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아서 더 좋은 것들이 있다. <맨헌트>는 오우삼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 멋들어진 액션과 낭만의 귀환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아니, 귀환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고, 70이 넘은 지금도 한결같이 흰 비둘기의 날갯짓으로 스크린을 장식 중이다. 부산을 찾은 오우삼 감독의 외양은 어느덧 칠순이 넘어 이제 세월의 흔적이 완연히 묻어났지만 영화를 향한 에너지는 여전했다.이번엔 아예 흰 비둘기를 포스터 중앙에 내세운 <맨헌트>는 다카쿠라 겐의 대표작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를 리메이크했다. 전설은 현재진행 중이다.
-일본영화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를 리메이크했다. 2014년 세상을 떠난 다카쿠라 겐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들었다.
=60, 70년대 일본영화를 비롯한 예전 영화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영화가 훨씬 좋고 재미있었다.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도 기회가 되면 만들고 싶다고 늘 생각했지만 영화사에서 판권을 팔지 않았다. 그럼 아예 원작 소설로 접근하면 되겠다고 판단해서 소설을 봤더니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누명을 쓰고 도망간 형사가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인류를 위협할 신약에 대한 진실들을 알게 되는 내용이 있는데, 1976년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용들이 나의 액션과 결합하면 재미가 더해질 거라 생각했다. <미션 임파서블 2>(2000) 때 악성 바이러스를 활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대여, 분노의 강의 건너라>의 어떤 점을 살리고 싶었나.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전작과 비교해서 남기고 싶었던 첫 번째는 정의에 관한 메시지다. 악이 징벌받고 정의가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진리. 달라진 게 있다면 캐릭터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연기한 야무라 형사는 원래 냉철하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캐릭터였는데 나는 좀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고 싶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태도로 사건을 대하는 사람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인간의 모습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냉혹하지 않나. 경찰이란 직무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더구나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연기자가 연기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반 하지원 배우가 “요즘엔 옛날영화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하면 “너무 기니까 그렇지”라고 답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요즘 영화들을 잘 안 본다. 기교야 다양할 수 있지만 요즘 영화들은 너무 함부로 그걸 남용하다 보니 영화 같지가 않다. 영화는 영화 본연의 리듬이 있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문장을 대하는 기법과 그간 쌓여온 문법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영화들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유일하게 그런 지점을 지켜나가는 영화가 한국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영화는 꾸준히 찾아본다.
-장면 전환의 편집이 고풍스럽다고 할까, 특이한 장면 전환이 종종 나온다. 빠르게 전환되거나 생략되다가 느려지기도 하고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음악, 리듬, 편집 등에서 70년대 영화의 느낌을 되살리려 했다. 스토리 라인에 따라 호흡을 조절했는데, 감정을 보여줘야 할 땐 조금 지루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간다. 더 중요한 건 배우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을 때다. 자신의 연기를 열심히 펼치고 있는 배우들에 대한 존중이다. 그럴 땐 조금 더 느리게 가려고 의식한다.
-다카쿠라 겐은 어떤 배우인가.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
=한마디로 나의 우상이자 영웅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독감과 함께 뭘 해도 믿을 수 있는 신뢰를 주는 사람이다. 악역이라 해도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사람. 내 영화 속 주윤발 캐릭터는 모두 다카쿠라 겐에 대한 오마주다. 이번에도 재현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누구도 다카쿠라 겐이 될 수 없다. 대신 장한위는 장한위만의 매력이 있다. 절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믿고 따르는 남자의 모습을 살렸다.
-과거 쇼브러더스 영화에서 활약했던 구라다 야스키가 노숙자로 출연해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 함께했던 구니무라 준도 악역 보스로 만만치 않은 활약을 선보인다.
=구니무라 준은 30년 전 홍콩에서 함께 영화를 많이 찍었다. 당시 어려울 때라 종종 출연료를 주지 못했는데 흔쾌히 함께해줬다.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래된 친구다. 30년 만에 이렇게 영화로 다시 만날 줄 몰랐는데,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늙음을 축하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웃음) <첩혈속집>(1992)에 그의 총격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이번에 살려보고 싶었다. 구라다 야스키는 이번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멋진 그의 액션을 보여주고 싶어 특별한 장면을 마련했다. 구라다 야스키를 좋아했던 분들은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