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가 사랑한 영화들⑥]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선셋대로> <윌로씨의 휴가> 外
2018-04-16
글 : 송경원
<씨네21> 23주년 특집. 레퍼런스 100 2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1959년

“첩보스릴러 장르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히치콕이 있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인터뷰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독으로 인지한 사람이 앨프리드 히치콕이었다고 고백했다. 브래드 버드는 그 기억을 되살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추격 장면을 두바이 사막의 모래폭풍 속으로 옮겨와 헌사를 바쳤다. 사실 첩보액션영화에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히치콕의 첫 번째 007 영화’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007 시리즈를 비롯한 숱한 첩보액션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빚지고 있다. 평원에서의 쌍엽기 추격 장면은 <007 위기일발>(1963), <레이더스>(1981)에 오마주되기도 했다. 히치콕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감독 중 한명이다. 물론 히치콕이 스튜디오의 압력을 창작욕으로 전환시킨 유일한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시도했던 장면들이 곧 장르의 교과서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고스란히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히치콕은 독보적이다. 평범한 남자가 스파이로 오인받아 도망다니는 과정을 따라가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맥거핀이라 할 만하다. 긴장감을 주는 장면, 그 상황과 아이디어가 영화의 핵심이자 본질에 가깝다. 대낮의 개방된 공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옥수수밭 시퀀스나 러시모어국립공원의 거대한 돌산에서의 격투 장면은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그것만으로도 충족되는 순간을 제공한다.

<선셋대로>

Sunset Boulevard / 감독 빌리 와일더 / 1950년

이야기란 근본적으로 지나간 것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 미래를 상상할 때조차 일말의 회한을 담아 주변을 되짚는다.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는 무성영화 시대의 영광, 나아가 할리우드 산업의 그늘을 애상하는 영화다. 1950년은 필름누아르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창조적인 표현주의 스타일들이 구축된 시기인데 빌리 와일더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노마의 광기 어린 집착을 빌려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충돌을 일으킨다. ‘꿈의 공장’의 이면을 그린 <선셋대로>를 두고 마틴 스코시즈는 “몰락의 나선에 대한 은유와도 같다. 내겐 공포영화나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로 인해 LA와 할리우드는 불안을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선셋대로>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제인의 말로>(1962)에서 그로테스크함이 한층 강화되며 호러의 일부로 흡수되기도 한다. 미셸 하나자비시우스의 경우 <아티스트>(2011)를 통해 무성영화에 대한 향수와 애틋함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되살렸다. <선셋대로>를 적극적으로 오마주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브랜단 앤 트루디>(2000)가 있다. 고지식한 교사 브랜단과 귀여운 도둑 트루디의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브랜단은 영화광으로 나오는데 그런만큼 각종 고전영화들을 차용한다. 그중에서도 <선셋대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뒤돌아보는 시점, 내레이션과 플래시백을 활용한 회상의 구조다. 마틴 스코시즈 역시 <카지노>(1996)에서 이러한 내레이션을 활용하는데,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경로를 거치든 <선셋대로>를 우회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윌로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onsieur Hulot / 감독 자크 타티 / 1953년

큰 키에 구부정한 어깨의 실루엣, 파이프 하나를 입에 문 남성. 자크 타티의 분신이자 캐릭터 코미디의 아이콘 윌로씨가 본격적으로 형태를 드러낸 건 <윌로씨의 휴가>부터다. 예의바르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윌로씨는 정신없는 세상의 조용한 훼방꾼이다. 이 맑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의 미덕을 계승하면서도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웃음과 평온을 전파한다. <윌로씨의 휴가>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침묵을 활용함으로써 이후 ‘미스터 빈’ 등 캐릭터 코미디의 폭을 확연히 넓혔다. 특히 여느 코미디보다 여유 있는 박자, 멜랑콜리한 정서를 통해 웃음과 우울, 소란과 침묵 사이 균형을 잡는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앙투안 드와넬’연작에서 윌로씨를 카메오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배우 로완 앳킨슨의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2007), 실뱅 쇼메 감독의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2010) 등 직접적인 헌사를 바친 영화를 통해 그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더티 더즌>

The Dirty Dozen / 감독 로버트 알드리치 / 1967년

“장군들 죽이는 걸 취미로 할까봐.” 조셉(찰스 브론슨)은 레이즈만 소령을 향해 뼈 있는 일침을 날린다. 나치 장군들을 제거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특공대로 조직해 침투하는 내용을 담은 <더티 더즌>은 파격적인 설정에 코믹한 분위기까지 더한 이른바 마카로니 전쟁물이다. 리 마빈, 찰스 브론슨 등 당대 잘나가는 배우들을 대거 포진시키고 거친 농담과 폭력을 유희하는 B급 오락영화의 전형이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시대정신과 풍자도 담고 있다. 1967년 MGM에서 제작한 영화 중 최고의 수익을 거두었고 이에 힘입어 특유의 코믹한 터치가 <코만도 전략>(1968) 등 일련의 전쟁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B무비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의 손을 거쳐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로 리메이크되며 새삼 그 진가를 증명했다. “로버트 알드리치야말로 전세계 영화광의 패스워드”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영화라는 허용 아래 가능한 폭력과 유희의 정수를 선보인다.

<3인의 사무라이>

三匹の侍 / 감독 고샤 히데오 / 1964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의 라이언 존슨 감독은 클래식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전투기 공중전 장면에 <정오의 출격>(1949), 장엄한 로맨스에 <나는 결백하다>(1955) 그리고 검술 장면과 유머 코드는 고샤 히데오 감독의 <3인의 사무라이>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고샤 히데오의 대표작을 꼽자면 아마도 <고요킨>(1969)이 앞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끝난 뒤 여운만큼은 <3인의 사무라이>도 그에 못지않다. <3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와 달리 억눌린 농민들의 의식 변화까지는 이끌어내지 않고 사건을 해결한 뒤 휘적휘적 사라지는 간명한 구조를 취한다. 관점에 따라서 바로 이 자유로움이 핵심이기도 하다. <요짐보>(1961)나 <쓰바키 산주로>(1962) 등과 같이 다소 과장된 사무라이 액션 활극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2년 뒤 장철 감독이 <변성삼협>(1966)에서 뼈대를 가져와 변주하기도 했다.

<드라큘라>

Dracula / 감독 토드 브라우닝 / 1931년

드라큘라만큼 영화가 사랑해왔고 다종다양하게 변주된 몬스터도 드물다. 여러 버전으로 분화된 숱한 갈래를 지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에 다다른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중 한편인 이 작품은 최초의 장편 흡혈귀 영화지만 오늘날 널리 알려진 흡혈귀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실제로 브람 스토커의 소설 속 드라큘라는 박쥐보다는 병을 옮기는 쥐의 이미지에 가까웠고 <노스페라투> 속 흡혈귀는 대머리에 창백한 얼굴, 짐승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으로 묘사된다. 지금의 귀족적인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구축한 건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드라큘라>다. 벨라 루고시는 큰 키에 창백한 피부, 뒤로 빗어 넘긴 머리와 턱시도 차림의 외견으로 드라큘라를 완성시켰다. 유니버설의 흑백 드라큘라는 1950년대 영국 해머사를 거치며 한차례 변화를 맞는다. 테렌스 피셔 감독의 <드라큘라>(1958)는 브람 스토커 원작을 적극적으로 해석했고 주연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는 신사와 야수의 이중성을 동시에 보여줬다. 1922년 <노스페라투>와 1931년 <드라큘라>를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라 해도 좋겠다. 특히 드라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피를 노출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종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테렌스 피셔의 <드라큘라, 어둠의 왕자>(1965), 로맨스를 결합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1992), 액션 블록버스터로 변한 게리 쇼어 감독의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2014)까지 모두 벨라 루고시의 그림자 아래 있다.

<제너럴>

The General / 감독 클라이드 브러크먼, 버스터 키튼 / 1926년

무성영화의 아름다움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대신 율동과 움직임을 필름에 새겼다는 데 있다. 어쩌면 무성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슬랩스틱 코미디이고, 슬랩스틱의 대표 캐릭터는 버스터 키튼일 것이다. 막대기(Stick)로 때린다(slap)는 의미의 슬랩스틱은 과장된 율동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다. 찰리 채플린이 아기자기한 드라마와 상황극에 초점을 맞춘다면 버스터 키튼은 공간과 타이밍을 통제하는 고난도의 스턴트 연기에 뿌리를 둔다. 움직임 자체가 주는 역동성, 아슬아슬한 타이밍에서 오는 긴장은 목소리나 서술을 허락지 않는 무성영화이기에 가능한 매혹이었다. 버스터 키튼은 관객을 오롯이 화면의 움직임에 집중시키기 위해 플롯을 단순화했고 일부러 표정조차 짓지 않는 이른바 ‘스톤 페이스’를 완성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슬랩스틱의 전승자는 코미디가 아니라 스턴트라 해도 무방하다. 버스터 키튼의 율동과 리듬의 일부를 자크 타티가 이어받았다면 키튼의 역동성은 성룡의 액션 스턴트를 통해 복원됐다. <폴리스 스토리>(1985)에서 차에 매달리는 장면은 <경찰>(1922)에서 따왔고, <프로젝트A2: A계획 속집>(1987) 중 무너진 건물 외벽 가운데 홀로 안전하게 서 있는 장면은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버스터 키튼의 역작이자 최대 제작비가 들어간 <제너럴>은 슬랩스틱 총집합이라 해도 좋을 다종다양한 스턴트 연기가 등장한다. 성룡은 <용형호제>(1986)를 통해 <제너럴>의 스펙터클한 상황들을 변주한다. 키튼의 열렬한 팬임을 수차례 밝힌 고어 버번스키 감독 역시 <론 레인저>(2013)의 기차 추격 장면을 통해 <제너럴>에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더 클락>

The Clock / 감독 빈센트 미넬리 / 1945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영화를 언급할 때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섬 컴러닝>(1958)을 빼놓지 않는다. “빈센트 미넬리의 감수성은 아름다운 크레셴도가 찍힌 음표와 같다. 50년대 멜로드라마에는 영화가 바라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뮤지컬을 찍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링클레이터는 빈센트 미넬리 영화의 감성과 편집이 하나의 음악처럼 사용된다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선택된 영화는 주디 갈런드가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이 아닌 <더 클락>이다. 링클레이터는 ‘비포 시리즈’를 찍기 전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에게 이 영화를 먼저 보여주었다. <비포 선라이즈>(1995),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으로 이어지는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의 여정은 <더 클락>의 주디 갈런드와 제임스 글리슨의 만남을 연상시킨다. 이틀간 휴가 나온 군인과 귀여운 여인이 짧은 시간 동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구조는 물론 상영 시간 내내 지속되는 설렘이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 형식이 닮았다. 음악이 없어도 충분히 음악적인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외계의 침입자>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 감독 돈 시겔 / 1956년

내 편이라 여겼던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인간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돈 시겔 감독의 <외계의 침입자>는 불신에 의한 공포를 활용한 SF 호러물이다. 잭 피니의 소설 <신체강탈자>(the Body Snatchers)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외계인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불안을 증폭시켜나간다. 외계생명체에 신체를 빼앗겨가는 마을 사람들, 이를 의심스럽게 지켜보는 주인공 마일즈, 그리고 마일즈를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는 카우프만 박사의 대립을 통해 공포의 근원을 되짚는 것이다. 욕망, 고통, 분노 등 히스테릭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적인 특질임을 부각한다는 면에서 존재의 본질을 되짚는 영화이기도 하다. 필립 카우프먼의 <우주의 침입자>(1978), 아벨 페라라의 <보디 에일리언>(1993),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2007) 등 수차례 리메이크됐을 뿐 아니라 ‘신체강탈자’라는 외계 침략의 한 유형을 창조해냈다.

<벌집의 정령>

El Espiritu De La Colmena / 감독 빅토르 에리세 / 1973년

아이들의 눈은 진실을 본다. 그들의 시점은 현실과 환상 너머 모두가 놓치고 있는 본질에 맺혀 있다. 아이들의 눈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이유다.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은 프랑코 독재정권하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파시즘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다. 정령의 존재를 믿는 소녀 이사벨과 아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어둠을 자신들만의 모험과 환상으로 메워나간다. 환상의 힘을 빌려 현실의 부조리를 조명하는 이른바 어른동화 또는 다크 판타지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에서 소녀들이 보리스 칼로프 주연의 <프랑켄슈타인>(1931)을 보는 장면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고. 소녀 아나는 질문한다. “왜 착하던 괴물이 불쌍한 여자아이를 죽였나요?” 진실에 이르는 어두운 상상의 출발이다. <디 아더스>(2001),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2006)가 <벌집의 정령>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솔라리스>

Solyaris /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1972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대한 화답. 명상에 잠기는 이미지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는 우주에 관한 한편의 시다. 흥미로운 건 우주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바꾼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다. 스타니슬라브 렘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솔라리스>는 과학을 근간으로 인간의 연약한 정신을 두드린다. 영화 속 가상의 혹성 솔라리스는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쳐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특수효과나 스펙터클한 이미지 없이도 우주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우주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토대 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다음을 이야기하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2000)가 나왔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5)의 이미지를 차용한 <인터스텔라>(2014)가 탄생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2002년 동명의 리메이크작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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