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1990년
2018-04-19
글 : 권김현영 (여성학자)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일러스트레이션)

50년 전 한국 정부는 인구폭발을 근심했다. 1970년대, 정부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다.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음에도 남아선호라는 구습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를 발표한다. 두고두고 회자된, 대성공을 거둔 홍보 문안이었다. 하지만 남아선호는 꺾이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늘 남아선호란 말 뒤에 ‘사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웃긴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상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법을 어겨가며 남아선호를 지속했다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더이상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남아선호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신념체계를 지배했다. 독재 정부의 개입이 무력했던 거의 유일무이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급기야 1987년 의료법 20조 2항이 제정되어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고지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990년, 성비불균형은 (여아 100명당 남아 수) 116.5로 역대 최악의 수치를 기록한다.

1990년대의 새로운 인구정책 포스터는 이런 상황에 놓였던 당시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고심을 잘 보여준다. 정부의 인구정책을 최전선에서 홍보하는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아들만 바라다가 정작 그 아들이 짝도 못 구하는 세상이 되는 부모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며 여자 짝을 원하는 남자 초등학생의 일기장을 배경으로, “선생님! 착한 일 하면 여자짝꿍 시켜주나요?”라고 글씨를 크게 써놓았다. 이 포스터와 함께 발표된 표어는 다음과 같다.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없는 우리세대.”

이같은 내용의 광고는 반복적으로 전파를 탔다. 당시 여자짝꿍이 없어 울상이 된 남자아이들의 얼굴은 뉴스에 종종 나왔다. 어린나이에도 무척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여자짝꿍이 없다고 울상 짓는 남자아이도 별로 없었고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와 짝꿍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 어른들은 왜 저렇게 벌써부터 짝을 지어주지 못해 안달인 걸까. 정작 학교에서 이성교제는 금지시키면서. 애초에 남자애들이 짝이 없는 이유는 성감별 낙태 때문에 여자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여자아이들의 비극이 짝꿍이 없는 남자아이의 쓸쓸한 얼굴로 덮이다니, 뭐 하나 말이 되는 일이 없었다. 착한 일을 한다면 여자짝꿍을 상품으로 주겠다는 발상도 놀라웠다. 아이들의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른들의 세상에 불신을 가지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과 관련한 일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너무나 거짓말 같은 현실. 끔찍하게도 웃기지 않은 농담. 1990년의 포스터에서 지금은 얼마나 멀리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