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영화 <곤지암>을 보고 느낀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점을 기술해주십시오.
“오늘 엄마랑 같이 자야지.” “<컨저링>? <애나벨>? 그건 자수 놓으면서 볼 수 있을 듯.” “시사회 기회 감사합니다. 친구들한테 하나도 안 무섭다고 거짓말치고 엿먹일래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너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습니다. ㅠㅠ.”
<곤지암>(2017) 모니터링 시사 관객 설문 13번 문항에 관객이 답한 내용들이다. 1차 모니터링 시사 결과 만족도, 추천도, 공포도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건 공포지수. 정범식 감독은 “만족도와 추천도보다 공포지수가 높게 나온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면서도 관객이 공포영화를 제대로 무서워하며 봤다는 걸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개봉 후에도 무서움을 인증하거나 반대로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는 허세 리뷰들이 등장했다. 무서워서 악력 조절에 실패해 구겨져버린 관람권 인증숏을 올린다거나, 눈 가리며 보느라 지문이 잔뜩 묻은 안경 인증숏을 올린다거나. 거기에 “<곤지암> 하나도 안 무섭다. 기저귀 차고 보길 잘했다”, “<곤지암> 하나도 안 무섭다. 오늘은 불 켜고 자야지”처럼, 안 무섭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언행 불일치의 리뷰들까지. SNS 실시간 관객 반응을 통해 <곤지암>이 무서운 영화라는 입소문은 제대로 퍼졌다.
“<곤지암> 보러 가자”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이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현재 <곤지암>은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누적 관객수 314만6217명)에 이어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를 기록 중이다(4월 18일 영화진흥위원회 KOBIS 통계 기준 260만4359명). <곤지암>은 개봉 5일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고 개봉 11일째 2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 공포영화는 잘돼야 120만명’이라는 제작사·투자사가 일반적으로 상정한 맥시멈 기준치를 개봉한 지 일주일도 안 돼 훌쩍 뛰어넘었다. 808개로 시작해 개봉 첫 주말 1천개를 넘긴 스크린 수도 개봉 둘쨋주까지 비슷하게 유지됐다. 최근하 쇼박스 홍보팀장은 “10~20대 관객이 절실한 극장으로선 <곤지암>이 젊은 관객층을 극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곤지암>에 대한 극장 관계자들의 관심도가 초반부터 높았다”고 말했다. CGV 페이스북 페이지에 처음 공개된 <곤지암> 예고편은 공개 하루 만에 1천만뷰를 달성했다. 긴 호흡의 영상보다 짧은 호흡의 영상에 익숙하고, 극장이라는 공간에 두 시간 동안 매여 있는 것보다 원하는 곳에서 모바일로 영상을 즐기는 것이 익숙한 유튜브 세대가 ‘ㅋㅋㅋ XX야 이거 보러 가자’라는 댓글과 예고편 클릭 수로 <곤지암>에 대한 관심을 증명했다. 극장은 이런 현상에 주의를 기울였고, <곤지암>은 처음부터 꽤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 공포영화가 지독한 침체기를 통과하고 있는 요즘, <곤지암>의 흥행현상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곤지암>은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철저히 10~20대 관객 맞춤형 전략을 세운 영화다. 정범식 감독은 “요즘 젊은 관객은 공포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즐긴다”고 분석했다. 10대 자녀들 덕에 젊은 세대의 특징을 잘 포착할 수 있었다는 정범식 감독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기성세대와 사뭇 다르다는 걸 체감했다고 한다. “한번은 아들이 그러더라. ‘<라이트 아웃>이란 영화가 재밌대요’, ‘누가 그래?’, ‘페북 댓글 보니까 그렇던데요. 극장에서 뒷사람이 팝콘 엎었대요. 친구들이 그 댓글 퍼나르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그들은 영화의 내용을 모른다. 그때 이들 세대가 우리와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느 방송에서 들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자기애가 강한 슈퍼에고의 존재들이라고 하더라. 재밌는 건 그런 슈퍼에고의 존재들이 인터넷상에선 ‘이 옷 평타임?’, ‘이 구두 평타임?’ 하고 물어본다는 거다. 그걸 보면서도 이 세대는 ‘특이하구나’ 싶더라. 2~3년쯤 전인가 할리우드 공포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내 앞에서 10명 정도의 10대들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무서워했다가 무서워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다가 다시 무서워하면서 영화를 보더라. ‘아, 이런 방식으로도 공포영화를 즐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포영화를 일종의 놀이로 즐기는 행위는 극장에 가기 전과 극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이어진다. 이를테면 보기 전에는 예고 인증숏을 남기고, 보고 난 뒤에는 ‘용자’인 척 후기 인증숏을 남긴다. 인증의 포인트는, 무엇이 어떻게 좋았다는 논리정연한 분석과 반응이 아니라 무엇을 ‘봤다’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만약 영화가 재밌을 경우 활기찬 댓글놀이와 새로운 해석이 시작된다.
<곤지암>의 홍보를 맡은 영화사 하늘의 최경미 실장은 “10대들의 특성 중 하나가 또래들끼리의 공유 문화”라면서 그러한 특징이 영화 관람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친구가 하는 건 자기도 하고 싶어 하고 소외되거나 뒤처지기 싫어하는 특성이 강하다. 함께 공유하고 유대감을 느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령대가 10대인데, 그들의 또래 문화가 <곤지암>의 흥행 현상에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실제로 <곤지암>의 관객 비율을 살펴보면 10대 이하가 9%, 20대가 49.5%다. 전체 영화의 연령별 관람객의 경우 10대 이하가 3.8%, 20대가 40.4%다. <곤지암>의 10대 관객 비중은 평균보다 두배 이상 높고, 10~20대 관객 비율은 60%에 육박한다. 더불어 <곤지암>의 1인 관객 비율은 10%, 2인 관객은 61.1%, 3인 이상 관객은 28.8%다. 1인 관객 비율은 전체 영화보다 10% 낮고, 3인 이상 관람 비율은 전체 영화보다 10% 높다(CGV 리서치센터 자료 참고). 실제로 <곤지암>을 보러 가면 방청객 모드로 비명을 지르거나 무서움을 상쇄하기 위해 옆자리 친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서사보다 컨셉과 임팩트에 반응”
<곤지암>은 곤지암의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는 기획에서 출발한 영화다. 곤지암 정신병원 402호의 문을 열려는 자는 모두 실종되거나 죽음에 이른다는 괴담이 있고, 괴담의 진원지로서의 공간이 있다. <곤지암>은 괴담의 실체를 파헤치는 영화가 아니라 괴담의 진원지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케팅 역시 ‘체험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의 목표와 본질이 공간의 체험이었고,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이미 신선한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에 체험 공포라는 네이밍으로 마케팅 컨셉을 잡았다”는 게 최경미 실장의 설명이다. 쇼박스의 최근하 팀장 역시 “당신이 앉아 있는 그곳이 바로 영화 속 폐가라고 느낄 수 있게 체험 공포를 강조했다. 흥미로운 체험담, 공포체험의 생생한 반응이 잘 확산될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주는 게 마케팅팀의 역할이었다”라고 전했다. 체험담의 확산 통로는 두말할 것 없이 SNS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배급 시기 역시 10~20대 관객을 고려해 잡았다. 공포영화는 여름에 즐기는 장르라는 공식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 됐다. “영화의 내용과 본질,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곤지암>은 새학기가 시작되고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인 3~4월, 한창 친구들과 친해지는 그 시기가 적기라고 판단했다.” 최근하 팀장의 설명이다.
10~20대를 타깃으로 삼았지만 지금과 같은 흥행이 가능했던 건 <곤지암>이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도 호평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곤지암>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생략하고, 1인칭 시점숏과 반응숏 위주의 촬영을 통해 실제 곤지암 정신병원을 함께 둘러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생략된 서사, 절제된 시야가 공포의 순도를 높인다. 정범식 감독은 “내러티브와 촬영은 기존의 방식을 배반하지만 서스펜스의 조율은 옛날 방식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사운드, 음악, 시각적 효과 등을 과시하듯 사용하지 않고 “절제”했다는 뜻이다.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가 보여준 것들을 반복, 재생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뭔가 다르네, 그래서 쫄깃하네라고 느끼는 것 같다.” 설명을 생략하고 하나의 컨셉을 끝까지 밀고 가는 방식은 최근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정범식 감독은 과거의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한권의 책”이었다면 최근의 할리우드 공포영화는 “두런두런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 같다고 했다. 풀이하면, 최근의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하나의 흥미로운 주제를 놓고 이야기 꼬리 물기를 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범식 감독의 얘기처럼 최근의 할리우드 공포영화는 ‘~하면 ~한다’는 하나의 명징한 컨셉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라이트 아웃>은 ‘불이 꺼지면 귀신이 보이고 불이 켜지면 귀신이 안 보인다’는 설정이 전부인 영화라 할 수 있고, <콰이어트 플레이스> 역시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컨셉을 밀어붙인 영화다. “요즘 관객은 서사보다 컨셉과 임팩트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게 관객에게 훅을 거는 것 같다. 나 역시 <곤지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본능적으로 ‘이런 설명은 지루해’하면서 사족을 걷어냈다. 그것이 곧 차별화였다고 생각한다.”
젊은 관객을 부르는 장르
공포영화를 즐기는 관객층은 한정적이다.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은 웬만해선 자발적으로 극장에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포영화의 관객층은 언제나 존재한다. 더불어 공포영화의 관객은 노화하지 않는다. 10~20대 관객이 언제나 새롭게 유입되기 때문이다. 최근하 팀장은 “엄연히 존재하는 공포영화 시장을 최근의 한국영화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장르영화 관객은 노화한다. 20대 때 <미션 임파서블> 1편을 보고 열광했던 관객은 어느새 30~40대가 되어 시리즈를 즐긴다. 시리즈물의 타깃 연령은 사선으로 상승한다. 그런데 공포영화의 주요 관객은 10~20대에 머물러 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장르라는 뜻이다.” 새롭고 강한 자극을 원하는 10~20대에게 공포영화는 언제나 소구되어왔다. 정범식 감독 또한 잠재적인 호러 관객층이 한국에도 충분히 존재한다며 한국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호러 콘텐츠를 즐기는 10대는 예전보다 많아졌다. 심지어 요즘은 초등학생들까지 호러 콘텐츠를 즐긴다. 내용이 어렵지 않은데 자극은 제대로 오니까 전세계 젊은 세대가 호러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걸 증명하듯 <컨저링> 시리즈와 <겟 아웃>은 국내에서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곤지암>의 순제작비는 11억원,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24억원이다. 안타까운 건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흥행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에 제작비 역시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사례를 답습하는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공포영화가 줄줄이 실패하고, 흥행하지 못하니 예산이 줄어들고, 예산이 적으니 스타 캐스팅을 할 수 없고, 그러면 투자받기가 어려워지고, 저예산으로 고퀄리티 영화를 만들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최근 한국 공포영화 산업의 현주소였다. 이런 상황에서 <곤지암>의 성공사례는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곤지암>의 흥행이 단순히 수치적 의미(역대 흥행 순위라거나 제작비의 몇배를 벌었다거나)를 넘어서는 이유도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