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2016) 이후 가장 많은 ‘해석 자료’가 쏟아진 영화였다. <곤지암>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자동완성 검색어 상단에 ‘곤지암 해석’이 딸려오고, 유튜브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올린다. “기존 한국 공포영화는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 캐릭터가 죽게 되는지 이유가 제시되는데 <곤지암>에서는 잘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가 재미없다면 관객이 그냥 짜증만 낼 수도 있는데 공포의 정도도 만족스럽고 작품을 좋게 봐줘서 관객이 해설을 덧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정범식 감독은 네티즌의 능동적인 반응에 흡족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네티즌이 제기한 몇 가지 가설에 대해 직접 물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뒀다?
<곤지암>은 작품 전체가 거대한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작품이다. 호러타임즈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로 본격적인 체험 방송을 시작하기 전 물놀이를 갔고, 목욕실 및 샤워실이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방이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초자연적 현상이 펼쳐진다. 때문에 호러타임즈의 대장 위하준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멤버들에게 건물에서 나오지 말 것을 요구하는 대목에서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게 된다. 정범식 감독은 원래 문제의 공간을 402호가 아닌 416호로 설정하려고 했을 만큼 세월호가 중요한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실제 지현 역의 배우의 휴대폰에 세월호 리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입 장면 촬영 당시 앵글 안에 넣어줄 것을 주문하고, 402호 공간에 물을 채워넣는 아이디어를 미술 세팅 단계에서 제안한 이유다. “그 이미지가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본능적으로 물의 이미지를 계속 떠올렸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에 내가 이런 개념이나 상징에 지배받고 있었던 것 같다.”
곤지암 정신병원이 곧 유신정권을 의미한다?
사실 이보다 노골적일 수 없는 수준이다. 곤지암 정신병원은 5월 16일에 개원하고 10월 26일에 폐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과 10·26사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날짜 설정이다. 또한 극중 유튜브 공포 채널 ‘호러타임즈’의 라이브 방송 최종 조회수 503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503과 일치한다. 곤지암 정신병원의 원장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정범식 감독은 “‘박영애’라는 이름의 한자는 ‘대통령의 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그가 탁구를 치는 어떤 사진을 레퍼런스 삼아 라켓 각도까지 똑같이 재현해 영화에 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탁구공 소리는 극중 중요한 시그널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정범식 감독이 영화에서 유신정권을 의미하는 장치를 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담>(2007)에서 진구가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은 박정남으로, 창씨개명 후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는 바를 정에 영웅 웅자를 썼지만, 영화 속 정남의 이름은 바를 정에 사내 남자를 써서 보편성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정남이 안생병원에 들어간 날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토벌대에 들어간 날짜와 일치한다. “<기담>은 유신정권의 기운이 이전 정권에서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었다. <곤지암>은 그 시대의 기운이 사실은 끝나지 않고 계속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만들었다. 호러는 즐거움과 밝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힘들게 하고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스터에그식으로 녹여내게 됐다.”
지현이 귀신이라는 추측은 사실인가?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지현이 나머지 인물들을 곤지암으로 끌어들인 귀신이라는 가설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카페에서 호러타임즈 멤버들이 처음 만남을 가졌을 때 팔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반창고가 사라지고 대신 흉터가 보인다. 단체사진에서 팔을 긁는 인물과 동일인물 같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또한 대부분 지현의 시점에서 영상이 촬영되어 있고, 혼자서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으며, 귀신에 빙의만 될 뿐 죽는 모습이 나오지도 않는다. 정범식 감독은 이 가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며 웃었다. “사실 배우가 반창고를 붙이고 있거나 팔에 흉터가 있는 것은 우연의 결과다. 하지만 해설을 읽으면서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정말 대단하다.”
입구 부근에 걸려 있던 하얀 팬티를 나중에 ‘백숙 귀신’이 입고 있다던데?
“레이스도 달린 여자 팬티인데, 그걸 어떻게 입겠나. (웃음)” 그 해석은 너무 간 것 같다며 정범식 감독이 웃으며 반응했지만, 그냥 웃기려고 넣은 장치만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공포의 표식들은 냄새가 나도록 까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아닌 것처럼 보이던 물건이 호러적인 아이템이 되면 차별화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 네티즌들이 “닭백숙 같다”고 표현하는 귀신은 70년대 명문대를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고문당하고 죽은 학생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오디션을 볼 때도 그 시절에 착하고 진실되게 살았을 것 같은 마스크를 찾았고, 훈련시켜서 그 장면을 연기하게 했다.”
‘샤브샤브 귀신’이 떠드는 내용에 402호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극중 지현이 갑자기 귀신에 빙의해 중얼거리는 말이 ‘샤브샤브’와 비슷하다고 해서 ‘샤브샤브 귀신’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정범식 감독은 “402호 사람들이”로 시작해 지블리시(옹알이, 횡설수설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를 하도록 배우에게 주문했다. “나중에 배우에게 물어보니 배우가 지블리시를 하면서 본인이 원장님 얘기를 넣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주문한 것은 ‘402호 사람들이’로 시작하라는 것 정도였다.”
결국 초반에 ‘썰’로 등장한 인물들이 결국 모두 귀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던데?
감독이 가장 시원하게 “맞다”고 인정한 부분이었다. “‘대한뉴스’에서 상을 받는 인물이 돌보는 환자가 이른바 ‘백숙 귀신’으로 등장하고, <선데이서울> 기사에서 대선 결과를 맞힌 무당 옆에 있던 여고생은 물이 찬 방에서 등장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곤지암 정신병원의 원장은 호러타임즈의 대장 위하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이스터에그가 있다면?
“<곤지암>의 최종 이스터에그가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면 죽기 직전에 얘기해주려고 했다. (웃음)” 특정 장면의 기괴한 사운드를 뒤로 돌리면, 감독이 남긴 어떤 메시지가 나온다. 이에 대한 힌트를 넌지시 주기 위해 <곤지암> 포스터에서 ‘ㅈ’자를 뒤집어놓았다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남긴 멘트다. 나의 <곤지암>은 여기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동의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이 왜 그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다. VOD 서비스가 시작되는 날 확인해보시라. (웃음)”